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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Dec 12. 2023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

위기는 어쩌면 기회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늘 궁금했다. 나에게 과연 운이라는 것이 있을까? 남들은 취업도 운으로, 좋은 사람과의 연애도 우연히 하고, 심지어 같은 장소에서 여럿이 사고가 나도 다치지 않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억세게 운 좋은 사람들만 내 주변에 있는 것인지 뭔지 알 수 없지만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는 왜 그들만큼 운이 없는 것일지 조금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 때 유난히 다치는 횟수가 많았다. 라면국물을 다리에 엎어서 몇 달간 화상 물집과 싸워야 했다. 또 한 번은 라면 국물을 가슴팍에 엎어서 늑골모양대로 시커멓게 줄이 가는 이상한 상처를 한참 달고 다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다쳤으니 라면을 작작 먹었으면 좋았으련만. 어릴 적부터 글루텐에 미쳐 있던지라 피를 보고도 끊지를 못한 모양이다.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을 믿지 못한다. 위기는 그냥 위기일 뿐이지 다른 기회로 연결되는 건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산에서 조난 아닌 조난을 당하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을 겪고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고통은 두 배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친 어깨는 두어 달간 어깨를 고정하는 지지대를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그걸 차고 집 이외의 생활반경을 넓히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집 근처에만 나가도 오만 신경을 다 쓰고 나가야 했다. 지지대를 착용하고 버스를 타는 일도 불가피했는데 어떤 시민도 나를 안쓰럽게 보지 않았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한 손으로 위태로운 균형을 잡아가면서 애석한 나의 현실을 비난하고 또 비난했다.


다친 것은 다친 것이고 당장 먹고살 궁리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코로나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고 있었다. 일자리가 없음은 물론이요, 있다한들 멀리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나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이 팔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나 싶다. 그렇다고 맨날 울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재택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눈이 빨개지도록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사연작가 구합니다.'라는 문구였다. 무슨 사연을 쓰는 일인가? 살펴보았다. 어르신들이 들으시는 사연을 작성하는 일을 구하는 것이었다. 세상엔 보이지 않는 직업들이 많이 있다고 하지만 이런 장르의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건 무조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지원을 했고 테스트 원고를 받아보겠다 하여 다친 어깨에 힘을 주고 글을 써 내려갔다. 되면 땡큐고 안 되면 니들이 얼마나 잘되나 보자라는 심보로 테스트를 받았다. 합격하고 싶은 마음에 눈에 불을 켜고 공들여 써나갔다. 운이 좋은 것인지 뭔지 곧바로 합격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작가라고 불리며 처음으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각 잡고 긴 호흡의 글을 쓰려고 하니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머리를 쥐어짜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매일 10000자가 넘는 글을 써 내려갔다. 나중엔 약간의 공식 같은 것이 생겼다. 몇 글자부터 몇 글자 까지는 이 정도의 이야기를 쓰고 여기부터는 어떤 이야기를 넣고 등등 나만의 루틴 같은 것이 생긴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재미가 붙었다. 물론 처음 글감을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쓰기에도 재미있고 남들이 보기에도 괜찮은 정도의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글감을 떠올려야 하는 스트레스 또한 일종의 재미처럼 다가왔다.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나면 키보드와 내가 물아일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춤을 추는 순간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렇게 글쓰기에 집중을 하다 보니 하루가 홀랑 지나가 있었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계속 일기를 써왔다. 지금도 어릴 적에 써둔 일기를 가끔씩 들춰보곤 하는데 그럴 때면 어린것이 어쩜 이런 요망한 생각을 했는지 웃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엔 너무 안쓰러워서 당장 달려가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나에게 글 쓰는 일은 유일한 돌파구이자 탈출구였다. 한참을 토해내듯 써 내려가면 마음의 짐이 훅하고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나를 계속 글 쓰게 만든 힘이었다. 어떤 종류가 되었건 간에 글쓰기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겐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나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하던, 어떤 자리에 놓여 있든 간에 펜은 손에서 놓치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위기 속에서 기회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들은 어떤 식으로 위기 안에서 기회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만들지 않았는데 그냥 찾아온 것일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위기로 인해 눈을 좀 더 넓힐 수 있었고 그 일로 하여금 지금의 정체성 확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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