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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Dec 15. 2023

타로야 내 미래를 알려줘

타로의 오류

사람의 심리가 참 묘하다. 나를 어딘가에 꼭 한정지어서 당신은 OOO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경향성이 있다. 이런 심리를 기반으로 MBTI가 큰 인기를 얻었고 퍼스널 컬러, 사주, 타로 같은 것들이 호황을 누린 것은 변하지 않은 사실일 것이다. 나 역시 인기의 시류에 함께 올라타 있었다. 왜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한 문장으로 요약받고 싶어 하는 것일까?


mbti에 한창 미쳐있을 때가 있었다. 간단한 테스트로 인간 유형을 16가지로 분류한다는 게 재미있었다. ENFP와 INFP가 번갈아가면서 나오는 걸 보면서 어떨 때는 내가 외향적이었다가 어떨 때는 내향적이었구나 하며 스스로를 잣대질 해보기도 했다. 나에게 맞는 직업은 무엇이며, 나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하나 대입을 해보며 판가름을 해보기도 했다. 초반에는 꽤나 재미가 있었는데 MBTI가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으며 흥미가 뚝 떨어졌다. 남들이 너도나도 미쳐있으니 더 이상 알고 싶은 욕구가 사라진 것이다. 거기에 인기가 높아지니 뇌절에 뇌절까지 심각해졌다. 심지어는 알바를 뽑는데 MBTI를 기재해야만 하는 기형적인 일도 생겼으니 말 다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나는 MBTI라고 불리는 그것이 유행을 하기 전에 이미 재미를 볼만큼 본 뒤 치고 빠졌었다.


그 이전에 빠졌던 것은 퍼스널 컬러였다. 내게 더 잘 어울리는 화장과 액세서리, 옷의 컬러 같은 것을 알 수 있다고 하니 퍼스널 컬러를 아는 것 만이 좀 더 신여성이 되는 길이라고 여겼었다. 나한테 이런 컬러는 어울리지 않아, 나는 이런 염색은 하면 안 돼. 내 퍼스널컬러인 '여름뮤트'는 화장과 못의 컬러가 까다로운 편이다. 그래서 어지간한 브랜드의 여름뮤트가 소화할 수 있는 립컬러는 줄줄이 꾀고 있었다. 반드시 여름뮤트에게 어울리는 색상의 컬러만 구매를 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철저하게 배제를 하며 지냈다.


사주에도 관심이 많았다. 사주팔자라는 것은 확실히 통계학이야! 언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주를 잘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의 죽는 날도 대충 알 수 있다고 하니 이거야말로 과학이 아니란 말인가. 다른 사람의 사주를 봐주는 것은 무리이되 내 사주 정도는 분석할 정도의 겉핥기식의 공부를 했었다. 오늘 기분이 좀 처지는데? 사주 어플을 켜본다. 음. 역시 토기운이 잔뜩 들어왔구나. 사주가 토 밭인 내가 감당하긴 오늘 조금 힘들었구나. 역시 과학이야.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빠진 것은 타로였다. 78장의 타로카드가 내 앞 날을 알려주는 메커니즘이 너무 신기했다. 처음엔 인터넷에서 무료로 봐준다고 하는 타로를 볼 수 있는 대로 다 봤다. 그러다 관심이 옮겨간 것은 유튜브 타로였다. 유튜브의 타로 술사가 미리 뽑아 놓은 타로카드들을 4장 혹은 5장 정도 나열해 놓는다. 그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서 그에 맞는 리딩을 들으면 되는데 여러 채널의 여러 술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같은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있다. 어? 이거 아까 들었던 이야기인데. 다시 이 전의 채널로 가서 들었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다. 이거 같은 맥락이잖아? 이러면 정말 나한테 이 일이 일어난다는 소리인가? 오 맞는 것 같아. 어쩜 좋지? 타로는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였다.


타인의 입에서 나를 판가름할 수 있는 오만 콘텐츠들은 전부 섭렵을 해보았다. 결과적으로는 삶의 재미 지수가 좀 더 올라가긴 했지만 삶에 의아한 일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나는 분명 P인데 왜 이렇게 이런 일에는 계획적으로 움직이지? 내가 J였나? 스스로를 의심하는 일도 왕왕 생겼다. 분명 여름뮤트 인생템 이랬는데 내 얼굴에서는 그 색이 안 나오는 거지? 퍼스널컬러 진단이 잘못된 거였나? 그러나 여름뮤트의 컬러가 아닌 것들이 나의 안색을 빛나게 해주기도 했다. 토기운이 잔뜩 들어오는 어떤 날엔 좋은 일만 생기기도 했다. 타로카드는 너무 재미가 있어서 실제로 카드를 구매해 직접 리딩을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78장의 카드가 미처 내다보지 못하는 일들이 더 많았다.


이 모든 일들은 나를 작은 상자 안에 가두는 것이라는 걸 직접 겪으며 깨닫게 되었다. 사주와 타로 MBTI와 퍼스널컬러를 모두 거치며 내가 내린 결론은 '제발 나를 그만 알아가자'이다. 나를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볼 필요가 없다. 사람은 매우 유동적이다. 어느 날은 내가 F일 수도 있고 T일 수도 있는 것이며 사주가 아무리 과학적이라고 한들 매일의 변수까지 예측을 할 수는 없다. 스스로를 좀 더 명쾌하게 알고 싶고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하고 싶은 그 마음을 내려놓아도 된 다는 것이다. 외향인인 내가 어느 날은 내향인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나를 해하거나 욕하지 않는다. 나를 알아가는 데 지표 정도로 생각을 하고 그저 재미로 넘기면 그만이지만 거기에 매몰되어 있으면 눈앞의 가능성까지 놓쳐버리는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내가 그랬다. 타로를 배운 뒤에 가끔 지인들에게 재미 삼아 타로를 봐주고 있다. 아이스브레이킹 용으로 타로만 한 것이 없다. 여자 지인들 중에 아직까지는 타로를 재미없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도 하다. 잔뜩 무르익어가는 분위기에 속에서 그들에게 말한다.


'타로의 마지막 카드는 네가 만들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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