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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Dec 18. 2023

어쩌다 프라하,

해외에 나를 던지기 프로젝트 1

해외여행을 해야 보는 눈이 깊어지는 것일까? 여행은 정말 우리에게 어떤 특별한 경험 혹은 기억을 선물해 주는 게 맞는 걸까? 의문이 깊어지던 때가 있었다. 바야흐로 8년 전, 가장 창창하고 아름답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남들 다 가는데 살면서 유럽여행 한 번은 다녀와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에 무작정 표먼저 끊고 들이받았던 여행이 있었다. 표만 끊으면 나머지 일정들은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한 달간의 장기 여행이었다. 국내 도시 어디에도 장박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역만리 타국에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를 던져버리는 것은 내 인생에서 겪어본 적 없는 중차대한 프로젝트였다. 겁이 없는 척을 하지만 겁이 은근히 많은 나라서 처음엔 일주일 해외여행으로 간만 봤었다.


시작은 프라하였다. 당시엔 일에 너무 치여서 살고 있었다. 눈을 뜨면 바로 일, 눈을 감으면 잠깐 휴식인 일상이었다. 과부하가 제대로 걸렸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다가 몸이 바스러질 것만 같았다. 여행을 떠나자. 그렇게 생각했던 곳은 체코 프라하였다. 일주일간의 프라하 여행을 계획했다. 남들은 유럽여행 중에 1박에서 길어야 3박 정도 머무는 프라하인데 그것도 일주일이나? 그리고 왜 프라하였는가? 20대 초반 회사에서 만난 언니가 있었다. 언니와의 나이차이는 8-9살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20대 초반의 찌끄래기 시절에 8-9살 많은 언니는 대단한 어른 같아 보였다. 그 언니는 나를 포함한 직원들에게 한 달간의 유럽여행에 다녀온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았었다. 여자 혼자 한 달씩이나 해외에 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어린 마음에 나는 유럽여행이라는 게 너무 궁금했다. 언니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까지 다녀온 곳 중에 어디가 가장 좋았어요?"


"무조건 프라하였어. 프라하성을 보면서 마시는 맥주맛이 정말 기가 막혔거든."


그렇구나. 유럽 중에 가장 멋진 곳은 프라하구나. 그때부터 내게 가장 이상적인 유럽 여행지는 프라하였다. 그래 무조건 프라하로 가자. 곧바로 휴직신청을 하고 프라하행 표를 끊었다. 프라하가 그렇게 좋다고 하니 일주일은 구석구석 봐야지! 각오에 각오를 하고 있었다. 중간에 근교 여행도 한 번 가야 하니 호텔 예약도 미리 해두었다. 유럽여행은 배낭 하나 메고 가는 로망 아니겠어? 메고 갈 크고 예쁜 배낭도 하나 샀다. 4월의 꽃이 만개한 프라하를 상상했다. 벌써부터 행복에 겨웠다. 그렇게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생에서 처음 타보는 비행기였다. 비행기가 원래 이렇게 빈 좌석이 많은 것인가? 프라하로 가는 비행기는 유독 빈좌석이 많았다. 내 옆자리에 배낭을 앉혀 주었다. 이게 얼마짜리 좌석인 줄 알아? 주인 잘 만나서 호강한다 배낭아. 기내식도 싹싹 긁어먹었다. 비행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이 콩알만큼 있었는데 놀라우리만큼 잘 먹고 잘 잤다. 오후 8시 즈음 프라하에 도착을 했다.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한 9시가 되었고 밤의 프라하는 좀 낯설고 무서웠다. 내가 느낀 첫 감상과는 달리 버스를 찾지 못해 헤매는 나에게 현지인들은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겨우겨우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는 외곽에서 점점 시내로 들어갔다. 유럽의 야경이 눈앞에 보이는데 그때의 마음은 다시 생각해도 도파민이 폭발을 한다. 내가 지금 이 야경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니! 약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장거리 비행에 길을 헤매느라 진이 빠져 있었는데 모든 것을 잊게 한 야경이었다. 이걸 보기 위해 그 먼 길을 날아왔구나! 나에게 첫 유럽여행은 설렘 그 자체였다.


다음 날부터 하루에 8시간 이상 걸어 다니며 프라하를 탐색했다. 워낙 작은 도시다 보니 장기 여행자들은 길게 머무는 곳이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겐 프라하의 모든 곳이 신기하고 또 색달랐다. 다리 아픈 줄도 모른 채 8시간, 9시간을 걷고 또 걸었다. 구급맵 하나 켜고 다니니 못 갈 곳이 없구나. 나는 뭐가 그렇게 겁이 났었던 것일까? 그러나 한 가지 체크하지 못한 게 있었다. 프라하의 4월은 아직 많이 추웠다. 야구잠바 하나 걸치고 갔던 나는 여행 내내 오들오들 떨면서 있었다. 왜 거기서 외투를 하나 살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초보여행자의 실수였다. 벚꽃이 만개한 프라하를 상상했지만 아직 꽃은 피지 않았었다. 낭만만을 생각하고 왔는데 너무 추워서 혼이 났었다.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있어도 추운기는 가시지 않았다. 날이 춥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프라하에 있고 구글맵 하나면 내가 원하는 어디든 갈 수 있는데 뭐가 겁이 나겠는가? 첫 여행으로 해외여행에 대한 자신감이 100% 붙었다. 그렇게 나는 장기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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