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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Dec 19. 2023

운전이 알려준 것

아빠의 황혼육아

살아가는데 경쟁력이 되어 주는 어떤 것들이 있다. 그중 1번은 단언컨대 체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음으로는 사회성, 마지막으로 기동성이 아닐까 싶다. 체력과 사회성은 돈을 들이지 않고 나름의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맨손 체조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볼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기동성은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기동성의 주축에는 '자동차'라는 어마어마한 돈덩어리가 우뚝 서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기동성을 포기하고 살았다. 


특히나 서울보다 대중교통이 낙후된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차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뼈가 아리도록 공감을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당장에 멋들어진 차를 한 대 뽑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그러나 무턱대고 차를 사기에는 너무 많은 위험요소들이 있다. 우선은 자동차라는 기계는 너무 값이 비싸다. 자잘하게 나가는 유지비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남의 손을 타지 않은 걸 사려고 하면 천만 원이 넘는 돈이 뚝딱이다. 그러다 보면 남의 손을 탄 것 중에서 절충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끊임없는 고민을 해야 한다. 키로수, 연식, 디자인, 색깔, 모델 등등 포기할 것들의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 가장 무서운 건 한문철 티비가 아닐까 싶다. 한문철티비를 보고 있으면 없던 트라우마도 생길 판이었다. 이런 것들이 겁이 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일까? 차를 산다고 해도 내가 차주로서의 자격이 있을 것인가? 나는 여기서부터 쫄아 있었다. 


20대에 들어서자마자 운전은 빨리 배울수록 좋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엄청나게 많이 들었지만 25살이 되어서야 운전면허를 겨우겨우 땄고 이후 쭉 장롱면허 신세였다. 언젠가는 사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에게 그 언젠가는 오지 않았다. 서른이 넘은 지금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 싶어 나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으로 차를 뽑아버렸다. 10년도 넘은 중고이지만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좁았다. 


차를 뽑고 아빠에게 연수를 받았다. 시동을 거는 것부터 차의 기본적인 원리, 각종 기능 들을 하나씩 일러 주셨다. 걸음마를 배우는 기분이었다. 내가 걸음마를 배우던 때를 기억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아마도 걸음마를 배울 때 아빠는 나에게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보았다. 동석 하에 도로 주행을 나왔다. 조수석에 앉아 있을 때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매일 지나가던 길도 낯설게 느껴지고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나기 시작했다. 한참을 쫄아있는 나에게 아빠는 말했다. 


"배짱 있게 해! 겁먹을 거 없어."


"겁먹은 적 없어!"


아빠는 배짱 있게 하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여기서 얼마나 더 배짱이 있어야 하는데! 국물 없는 짜파게티처럼 쫄아있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쫄지 않았다고 우겨보았다. 돌이켜보면 아빠는 어릴 적부터 내게 배짱 있게 굴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막내 딸내미가 겁먹어서 쫄아 있는 모습을 보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배포 있게 살아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운전을 배우다 생각했다. 아빠는 늘 나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고 있었는데 난 뭐가 그렇게 겁이 났던 것일까? 움츠러들어 살던 지난 시간들이 공명했다. 


자식농사는 스무 살까지만 키워주면 된다는 이야기들을 왕왕한다. 그 말은 다 뻥이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아빠에게 키워지고 있었다. 아빠의 황혼 육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도 한참 혼나고 깨지면서 도로 위의 금쪽이를 다듬어주었다. 아빠는 기동성뿐만 아닌 딸내미가 잊고 있는지도 모를 자신의 가르침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도 배짱 있게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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