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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Nov 01. 2023

이상한 극복병

이 여자가 수영을 배우고 싶었던 이유.

깊은 물에 둥둥 떠올라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는 기분은 어떨까?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어릴 적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로망 같은 것. 나에겐 그게 수영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모습 중에 그게 가장 폼이 나보였다. 수영을 잘하는 여자 어른, 여행지에 놀러 가서 시크한 수영복 하나 툭 걸치고 물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 크으- 말도 못 하게 섹시한 느낌이다.


스무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인가 문득 수영이 너무 배우고 싶었다. 가만있어보자,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수영장이 어디 있더라? 버스를 타고 20분, 버스 타는 곳까지 15분, 기다리는 시간 10분 정도 고려 하면.. 오가는데 길에서 버리는 시간만 2시간이 좀 안 되겠구나. 아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딱 달라붙는 수영복을 입으면 내 뱃살은 어쩌란 말이지? 미루자. 나를 위해서 미루는 쪽이 나을 것 같다.


수영을 배우고 싶었던 이유가 단순히 섹시해 보여서만은 아니었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고 피하고 싶은 존재가 물이었기에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릴 적에 깊은 물에서 빠져 죽을 뻔한 적이 두 번이나 있었다. 처음은 계속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인데 너무 어려서 기억이 생생하진 않지만 엄마는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시곤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11살의 여름 방학, 서해바다에 놀러 갔을 때였다. 그때도 우리 집은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이 바빴다. 엄마는 공장에서 일을 다니셨고, 아빠는 우리 집에서 007 가방이라고 불리는 작은 트렁크 하나에 짐을 싣고 전국을 누비며 인테리어 일을 하는 완벽한 블루칼라 노동자였자. 엄마의 공장이 성수기라 우리 자매와 여름방학이라고 여행을 갈 짬이 나지 않았다. 아빠와 언니 그리고 나 세 식구가 ’ 전국전도‘ 하나를 펼치고 서해바다로 떠났다.


우리가 갔던 서해바다는 한적했다. 어느 해변이었는지, 무슨 이름의 바다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조그만 텐트를 하나 쳐두고 언니와 나는 해변을 오가며 놀다 쉬다를 반복했다. 엄마 없이 잘도 놀았다. 아빠는 바닷가에서 튜브에 바람을 넣어주는 아저씨와 금세 친구가 되어 있었다. 잘 놀고 있는 우리를 뒤로하고 아저씨와 소주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아니 자식들을 내팽개치고 술을 마시다니! 어린 나는 아빠가 정말 막무가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에 가기 전 마지막 밤이었다. 아빠는 술에 취해 나에게 튜브 타고 멀리 나가보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이 아저씨가 왜 이러는 걸까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물놀이를 한 번 더 하고 싶은 마음에 아빠의 손을 잡고 커다란 튜브 위에 아빠와 나란히 앉아서 우리는 지평선 멀리 나갔다. 내 키를 훌쩍 넘는 수심에 점점 무서워졌고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말을 하던 그 찰나였다. 내가 튜브 안쪽 구멍으로 쏙 빠져버린 것이다. 아뿔싸, 짧은 순간이었지만 눈앞에 뿌연 부유물 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발은 닿지 않았고 팔만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나는 이제 내일 뉴스에 나오겠구나. 나는 이렇게 중학교도 가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구나. 그 순간 손 하나가 내 겨드랑이를 탁하고 잡았다. 아빠였다. 긴 팔로 나를 잡아낸 것이다. 그때의 마음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살려준 것에 대한 감사와 왜 이런 위험한 장난을 하는 건지에 대한 원망, 그리고 여행 와서 이게 무슨 못 볼 꼴인가 싶은 복잡한 마음에 돌아오는 바다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아빠가 왜 그런 건지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막내 딸내미한테 무슨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걸까?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다른 말로 하자면 트라우마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되는 동안 물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었다.


나에게는 이상한 극복병이 있다. 이걸 넘기면 내가 좀 더 강해질 거야. 이걸 넘어서면 이제 더 이상 무서운 게 없을 거야. 하는 류의 이상한 병이다. 그냥 좀 안고 살아가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도 꼭 그걸 이겨내려 발악을 한다. 그런 것들 중에 가장  강렬했던 것은 당연 물이었다. 내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물이었다. 피서철에 친구들과 물가에 놀러 가서 혼자만 기겁을 하다 오기 일쑤였고 그런 내 모습이 조금 쪽팔렸다. 그래. 이걸 이겨내면 앞으로 못하는 것이 없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두려움을 100% 안고  나를 믿지 못한 채 물에 뛰어들기로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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