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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Nov 01. 2023

물에 발을 담갔다.

이 여자가 수영장으로 갔다.

하고 후회, 하지 않고 후회 중에 두 말할 것 도 없이 무조건 하고 후회인 편이다. 저지른 뒤의 후회는 후회로 남지만 하지 않은 후회는 가슴에 사무치는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수영에 대한 미련과 갈망은 커져만 간 채, 스물아홉이 될 때까지 나의 로망은 점점 미뤄져만 가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하지 않고 후회였다. 가슴에 사무칠 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 사이에 이런저런 류의 운동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거의 대부분 잠깐씩 스쳐가는 인연으로 헬스장의 자본에 보템이 되는 수준이었다.


본격적으로 수영장에 등록을 하게 된 건 퇴사를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고 당시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수영장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네에서 엄청나게 큰 체육관이었고 사람이 항상 바글바글했다. 샤워실은 전쟁통이 아닌가 싶을 만큼 샤워기를 차지하는 일이 어려웠다. 줄을 서서 씻을 차례를 대기라는 와중에 새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대보다는 걱정과 나에 대한 불신만 한가득 안고 수영장에 들어갔다. 많은 수강생들 사이에서 처음 온 사람은 나 포함 세 명이 전부였다. 세 명만 따로 모아놓고 가장 처음 배운 것은 태아자세였다. 아니.. 태아자세요?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린 자세로 뱃속의 태아처럼 물 위에 뜨라는 강사의 말은 혼돈 그 자체였다. 지금 킥판을 잡고 뜨는 것도 못하는 사람한테 맨몸으로 뭘 하라고요? 이걸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어떻게든 태아처럼 흉내를 내려고 해 봤다. 하지만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물 위에 맨 몸으로 뜨는 것이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애석하게도 함께 수업을 듣는 동기들은 나와 달랐다. 처음 해보는 태아자세를 척척 해내더니 이내 강사에게 칭찬을 듣는 것이다.


처음 배우는 입장이라고 나와 똑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동기들에게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다들 나만 빼고 잘하기 있냐고. 태아자세는 도저히 겁이 나서 못하겠다고 하니 이번엔 수평 뜨기 자세를 시키는 것이다. 물 위에 몸을 곧게 뻗는 자세인데 이게 될 리가 만무했다. 강사는 나에게 짜증 섞인 조로 저 쪽에 가서 연습을 하라고 하는데 내가 여기서 무슨 꼴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 강사의 불친절함에 냈던 수강료가 아까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게 그 수영장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별을 했다. 물 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에게 어쩜 그렇게나 매몰찬 것인지. 다시 생각해도 수치스러움만 남은 것 같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뒤 새로운 수영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한 번 데인 게 있으니 자신감은 배로 깎여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수영장이었다. 주 고객층이 아파트 입주민들 그중에서도 엄마 나잇대의 분들이 대부분이셨다. 어느 수영장이던 텃세가 장난 아니라는 소문을 들었다. 어른들 사이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 눈덩이처럼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옮긴 수영장은 만족스러웠다. 붐비지 않았고 중년 여성들은 하나 같이 젠틀하셨다. 가장 만족스러운 건 강사의 섬세함이었다. 강사는 처음부터 자세 잡아주고 킥판을 잡고 조금씩 움직이는 연습을 시켰다. 충격적 이게도 발과 다리를 죽어라 움직이는데 전진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제자리에서만 맴도는 게 가능하다고? 앞으로 나가지를 못하니 나를 믿을 수 없었다. 강사는 계속해서 자세 봐주고 아직은 이러이러한 자세는 어려울 수 있다는 코멘트도 해줬다. 그분의 독려에 편안하게 연습을 했다. 놀랍게도 그거 한 시간 했다고 몸이 개운한 경험을 했다. 고질병이던 어깨가 확실히 덜 아팠다. 수영은 정말 좋은 운동인가 보다 하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상하게 물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해졌다. 물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인지 더 이상은 가슴에 사무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한 채 아무런 수확 없이 첫 수업이 끝났다. 그리고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가슴에 사무치지 않아도 된다는 감정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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