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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Dec 22. 2023

어쩌다 파리,

도둑놈과 은인이 공존하는 도시.

하루에 10km 이상을 걸어도 힘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걸 아는가? 다리에 감각이 사라진 건지 뭐인지 피곤하지도, 지치지도 않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바로 여행이다. 물론 이건 내가 20대 한창때, 아무런 노력 없이도 체력이 나름 쓸만하던 시절이기에 허용 가능한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내 여행의 루트는 서유럽을 중심으로 짜여 이었다. 장기유럽여행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서유럽을 제외하고 여행하는 경우가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서쪽으로 너무 치우쳐있고 대단한 마음을 먹은 게 아닌 이상 서유럽을 도는 것이 번거로울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반면 독일로 들어가서 아래로 쭉쭉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여행은 조금 쉬운 편이다. 그 대신 재미없다고 여겼었다. 나이가 들어서 조금 쉽게(?) 갈 수 있는 루트이니 이번엔 서유럽으로 가자!라고 마음먹었다. 중간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오늘은 파리에서 겪었던 도둑놈과 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도둑놈"과 은인


파리의 겨울은 굉장히 우중충했다. 비가 올 거만 같은 구름이 잔뜩 낀,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한 달간의 일정 중 마지막이 파리였다. 파리에 대한 로망이 대단하게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파리는 기대 이하의 이하였다. 먹구름 낀 날씨, 도시에서 나는 악취,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시민들(이건 내가 만난 사람만 그런 것일 수 있다.)까지. 뭐 하나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게 없다. 그중 가장 최고는 도둑놈이었다. 도둑들이 들끓는다고 하는 유럽에서 한 달 동안 단 한 번도 소매치기를 당한 적도, 당할 뻔한 적도 없었다. 내 눈에 달린 이상한 레이더가 열일을 했었다. 도둑 같아 보이는 사람은 눈에 밟혔다. 그럴 때마다 잠깐씩 조심을 해주니 내내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다. 유럽의 모든 도시는 나에게 안전 100%였다. 그 도둑놈을 만나기 전까지.


노트르담 대성당을 갔던 날이다. 그날은 여행 내내 동행을 하던 언니와 잠시 각자 일정을 보내고 저녁에 만나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노트르담으로 가는 내내 날이 너무 춥고 궂었다. 배가 고파서 점심 먹을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Are you Korean?"


파리 현지인이었다. 내게 한국인이냐며 말을 걸더니 이내 자기가 한국 여행을 했던 이야기와 한국에 있는 친구들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다. 같이 점심을 먹자고 제안하는데 비가 오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도둑은 그 틈을 노린 것이었다. 나는 점심 제안을 얼떨결에 수락해 버렸다. 이 놈은 나에게 안심을 시킬 요량으로 한국의 도시들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광주, 부산, 충주 등 한국에 대해 공부를 많이도 한 놈이었다. 광주, 부산을 얘기하는데 나도 모르게 경계를 완전히 풀어버렸던 것 같다. 저 시점의 나에게 가서 인터스텔라처럼 외쳐보지만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비를 피해 어느 테라스에 나를 앉혀 놓고 돈을 주면 음식을 주문해오겠다고 한다. 주머니 안에 50유로 말고는 다른 지폐가 없었다. 그대로 50유로를 덥석 내어준 것이다. 주목하세요 여러분. 눈뜨고 코베이는 현장입니다. 상등신이 제 손으로 돈을 주고 있는 돈 주고 못 볼 현장이었다. 내가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한 5분이 지나도 도둑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야 내가 당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가 훔쳐간 것도 아니고 내 손으로 7만 원가량의 돈을 덥석 쥐어 준 것이다. 이 보세요, 올 겨울 많이 춥죠? 제가 적선하는 7만 원으로 친구들이랑 술도 한 잔 하고 그러세요. 한 꼴이었다. 


차라리 어디서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하면 덜 억울했을 것 같았다. 내 손으로 돈을 쥐어주었다는 사실이 뼈에 아리게 억울했다. 비가 오는 파리 한복판에서 눈물을 찔찔 흘리면서 동행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도둑놈과 "은인"


언니는 나에게 울지 말라며 일단 만나자고 했다. 적선 아닌 적선을 해버린 내가 안쓰러워 언니는 밥을 사주었다. 오늘 루브르 투어를 들은 것을 가이드해주겠다며 함께 루브르로 향했다. 하지만 한 번 들은 이야기를 가이드처럼 해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루브르로 들어가긴 했는데 너무 넓고 방대해서 헤매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또다시 내게 말을 걸어왔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가이드를 좀 해드려도 될까요?"


젊은 한국인 여성이었다. 우리에게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한 그녀는 유명 투어회사의 가이드였던 것이다. 상황 설명이 조금 필요한 부분이다. 내가 여행하던 중 파리에서 테러가 일어났었다. 나는 테러가 2주 정도 지난 시점에 파리에 도착을 했고 여행 중 만난 이들이게 그날의 긴박하고 숨 막히는 상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아무튼 그녀는 한국에서 휴가를 마치고 파리로 돌아왔는데 테러 때문에 일감이 뚝 끊겨버렸다는 것이다. 입으로 먹고사는 일을 하는데 입이 굳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집에서 놀고 있어 봤자 감만 떨어져 가니 우리에게 무료로 루브르 투어를 해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와- 오늘의 일은 이 순간을 위한 밑밥이었구나! 도둑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날은 내가 루브르에 갈 일정이 없었는데 도둑놈 때문에 루브르에 가게 되었고 거기서 가이드님을 만나게 되었으니 신의 장난 안에서 춤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1 투어는 고객만족 1000%였다. 이래서 사람들이 소규모 투어를 듣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다. 유명 작품을 배경 설명과 함께 직관하는 황홀함이 무엇인지도 처음 알았다. 가이드님과는 다음날 오르세도 함께 투어 하기로 약속을 했다. 밥 한 끼만 사주면 투어를 해주겠다고 흔쾌히 얘기하신 거였다. 다음 날 오르세 투어를 하고 몽마르트르까지 둘러보았다. 그대로 보존된 여러 예술가들의 생가가 지나면서 파리는 완벽한 낭만의 도시로 변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에릭 사티의 집 앞에서 그의 음악을 들었던 것이다. 눈물 나게 낭만 그 자체였다. 


가이드님과 함께했던 1박 2일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파리를 낭만의 도시로 기억하게 만들어 주었다. 도둑이 없었다면 낭만도 존재하지 않았겠지. 이제는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이제는 믿는다. 나쁜일이 있으면 더 좋은일이 오려고 밑밥을 까는 중이구나-라고 여겨버린다. 50유로로 얻은 깨달음이다. 내게 파리는 도둑놈과 은인이 공존하며 찌린내나는 낭만이 있는 도시로 가슴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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