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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Dec 23. 2023

함박눈과 고시원

서울에 사는 특권

지금까지 수많은 겨울을 지나오면서 12월까지 모기를 만난 적은 없었다. 올해 처음인 것 같다. 잠들만하면 날아다니는 모기 탓에 섬뜩함마저 느껴졌었다. 지구온난화를 옛말이 되었다고 하던데, 정말 지구가 끓고 있긴 한가보다. 이듬해 여름에는 어떻게 버텨야 할까. 이런 고민이 드는 시기가 도래했다. 초겨울부터 무서울 만큼 날이 푹하더니 요 며칠은 다시 동태모드이다. 그래서인지 근래의 추위가 이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날이 추위 지면 처음 서울에 상경했던 때가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예나 지금이나 취업의 씨가 말라 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싶었던 순간이 왔다. 여기 남아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두려움이 컸다. 사람이 살면서 한 번은 한양에 살아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포부도 약간은 있었다. 겁도 없이 서울에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서울에서 살아남아 보리라! 배짱이 넘쳤다.


서울엔 일자리가 지천에 깔려 있었다. 그중 급여나 근무 환경 같은 건 천차만별이겠지만 그래도 선택의 폭이 넓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숨통이 조금 트였다. 그래, 사람이 큰 물에서 놀아야지! 일자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린 나이, 약간의 경력, 자신감 넘치는 면접까지 거를 타선이 없던 시기였다. 문제는 주거지였다.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서울이었다. 가지고 있던 소액의 돈은 정기적금에 묶여 있어서 수중에 융통할 수 있는 현금이 없었다. 급한 대로 고시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입사일은 잡혀있고 잘 곳은 없는 상황이니 발등에 불이 제대로 떨어졌다. 출퇴근할 버스비를 아껴야 하기 때문에 직장에서 가까운 곳으로 알아봤다. 서울 바닥에는 고시원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중 직장과 가까우며, 고시원 주인이 약간의 친절함을 가지고 있고, 방 안에 각자의 화장실이 있는 곳으로 알아봤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최강 한파가 몰아치는 날이었다. 핫팩을 목 뒤에 하나 넣어두고, 양 주머니에 하나씩 총 3개를 돌려가면서 손과 목을 데우고 있었다.  그런데도 날이 너무 추웠다. 그 와중에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500원짜리 동전만 한 눈이 쏟아져 내렸다. 눈이 너무 굵고 커서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물론 나의 이명이었겠지만 말이다. 어깨 위로 쉼 없이 눈이 쌓여갔다. 걷다 보니 이순신 장군 옆을 지나고 있었다. 광화문이었다. 티브이로만 보던 광화문을 직접 보는구나. 함박눈이 내리는 날에.


서울 사람들 깍쟁이라고 하더니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주 약간의 친절을 가지고 있는 주인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주인이 더 많았다. 그 함박눈을 맞고 왔는데도 따듯한 물 한잔 권하는 사람이 없음에 서울 인심 팍팍하구먼. 하고 혀를 쯧 찼다. 실물로 영접한 고시원은 생각 이상으로 작았다. 박스 같은 공간에서 그나마 손바닥만 한 창문이 있으면 값이 더 비쌌다. 저걸 창문이라고 달아놓고 창문 값을 받는구나. 어이가 없었다. 심지어 키가 작은 사람은 바깥공기를 마실 수도 없는 구조였다. 숨 쉬는 것도 돈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딱이었다. 바깥공기 마시고 싶으면 5만 원 더네! 하는 꼴이었으니. 그 와중에 나는 창문값을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5만 원을 아끼느냐, 5만 원으로 바깥공기를 마시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결국 나는 외창보다는 값이 조금 저렴한 복도 쪽으로 창문이 나있는 방을 선택했다. 그나마 복도 쪽의 창문조차 없으면 조금 큰 관짝 같이 느껴졌다. 내 선에서는 최선의 합의였다. 


고시원을 여러 군데 돌아다니다 결국엔 주인이 가장 친절하고, 방에 작은 창문도 있으며, 개별 화장실인 곳으로 계약을 했다. 계약이랄 것도 없이 그냥 선금을 지불하고 짐 싸들고 오면 된다. 머물 곳을 정하고 근처에 저렴한 콩나물 국밥집에 가서 언 몸을 녹였다. 국밥을 먹으면서 눈앞의 으리으리한 아파트를 보고 생각했다. '저런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대체 누가 살고 있는 걸까.'


서울에서 만난 동료가 있었다. 그는 광화문 토박이라고 했다. 광화문에서 가장 멋들어진 아파트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부럽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그때 봤던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바로 앞에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서울의 '중심가'에서 토박이로 사는 기분은 어떤지 묻고 싶었다. 다만 나의 질문이 너무 촌년스러운 질문 같아 보일까 봐 차마 묻진 못했다. 아마 그는 평생 모르고 살지 않을까 싶다. 최강의 한파와 함께 함박눈을 털어가며 창문값으로 저울질하는 인생을.


씨알이 굵은 눈과 함께한 고시원 찾기 여정에 어찌어찌 성공을 하긴 했다. 작지만 누일 곳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너무 작아서 문제 이긴 했지만. 서울에 왔다는 사실만으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작은 방에 들어가면 다시 숨통이 막혔다. 그럴 때면 값비싼 복도 공기라도 마시며 다시 나를 다독였다.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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