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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Jan 11. 2024

예민함의 두 얼굴

기민함 혹은 화가 많은 사람

작년 이맘때 즈음 강점검사에 반쯤 정신이 나가있던 시절이 있었다. MBTI, 사주팔자, 타로 등으로 나를 한 마디로 정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졌을 법한 분야이다. 타이틀부터 사람의 심장을 뒤집어지게 만든다. 강점 검사라니. 이거 뭐야, 내 강점을 알려준다고 하는 거야? 돈을 내고 알 수 있는 거라면 당장에 해봐야지!! 강점 검사가 무엇인지 이 잡듯 정보를 캐내보았다.


인간의 강점을 34가지로 분류해서 이걸 한 줄 세우기 하는 테스트란다. 오호라,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첫 번째 강점은 뭔데? 숨 쉬는 모든 것이 유료인 세상, 당연 강점 검사가 무료일리 만무했다. 검색을 해보니 top5 강점만 보는 것은 3만 원 남짓이고 서른네 가지 모든 강점을 줄 세우기를 하려면 8만 원이 넘는 돈을 내야 하는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나는 돈을 아끼고 아껴 이와 관련된 도서를 구매해서 3만 원이 되지 않는 금액으로 top5 결과만 받아 보는 쪽으로 검사를 했다.


나의 강점 중에는 공감 테마가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었다. MBTI를 맹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검사를 하면 줄곧 F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긴 했는데 공감 테마가 상위로 나와서 적잖이 놀랐다. 나한테 가지고 있는 능력이 공감이구나. 그래, 내가 생각한 게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 공감이라는 테마에는 양날의 칼이 있다. '누군가가 무엇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어느 정도 읽어내는 능력'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설명답게 나는 타인의 감정을 빠르게 알아차리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공감 능력이 좋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한 편이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예민함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정말 그냥 살다 보니 이렇게 되어 있었다. 나는 나의 이런 예민성을 좋아한다. 되려 타인의 감정에 무딘 사람은 매력 없다고 느낀다. 일종의 동족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나와 다른 사람을 내 바운더리 안에 끼워주지 못하는 그런 것이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이다. 타인이 나를 보았을 때는 그냥 남들보다 많이 예민한 사람 혹은 저 사람은 화가 많아서 그래. 하고 생각해도 뭐 할 말이 없다. 그들의 말처럼 내가 기민한 것 일수도, 화가 많은 인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틀린 말이 없다는 소리다.


예민한 사람은 그래서 항상 두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요에 따라서 언젠가는 예민한 나를 꺼낼 수도 있고 언젠가는 진짜 얼굴을 싹 숨기고 상대가 보고 싶은 모습을 연기하기도 하니까. 나 역시 양자의 모습을 함께 갖추고 있던 때가 있었다. 웃기게도 내 모습을 숨긴 채 그들이 원하는 모습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던 순간이 있었으니. 예민한 나쁜 것일까? 기민한 어떤 것일까. 극 F의 예민한 성정을 지닌 나는 고민한다. 나의 예민함을 어떻게 포장해서 풀어낼 것인가. 오늘도 어디에선가 나는 나를 포장하려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내가 싫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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