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능력
칼바람에 오들오들 떨면서 다리와 팔을 힘차게 앞뒤로 움직이다 보면 금세 열이 오른다. 봄이라더니 날이 다시 추워졌다. 머리가 복잡하면 밖으로 나가 뛰고 싶어 진다. 잘 뛰지도 못하는데 그런 마음이 든다. 뛴다고 해서 생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힘든 게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뛸 때도 생각이 많아서 그렇다. 그래도 숨이 아주 가빠질 때까지 뛰다 보면 내가 어디까지 뛸 수 있나, 오늘 정한 목표량을 채울 수는 있나 그런 생각에 점점 집중하게 된다. 다 뛰고 나면 약간의 뿌듯함이 발끝부터 나를 감싼다. 무릎도 아프지 않고 갈비뼈 통증도 없을 때는 신기하기까지 하다. 오늘 달리기는 그랬다. 늘 느리게 뛰지만 오늘은 속도도 잘 났고, 아픈 곳도 없었다. 그간 조금씩 뛴 것과 꾸준히 한 요가, 걷기 운동으로 쌓아온 몸이 달리기에 도움이 된 것도 같다.
P와 헤어지고서 다시 만나자고 연락했을 때였다. 그 애가 준 해결책은 재결합이 아니라 뜀박질이었다. 나더러 힘들면 나가서 뛰라고 했다. 자기는 기분이 울적해질 때면 뛴다면서. P는 운동을 잘했다. 머리와 몸을 같이 써야 하는 일을 했다. 지구력도, 근력도, 자신감도 있었다. 나는 아직 그 애를 좋아할 때였고 걔가 하는 말은 전부 옳았다. 내게 하는 충고를 좋다고 받아들이곤, 네 말대로 해 볼게 하면서 뛰러 다녔다. 진짜 뛰고 싶은 마음보다는 약간의 오기 때문이었다. P가 마음에서 멀어질수록 그 오기는 커졌다. 네가 뭔데 나한테 뛰라고 충고를 하냐. 너만 뛸 수 있냐, 나도 뛸 수 있다. 걔 생각이 날 때면 밖으로 나가 하루에 몇 킬로 건 꾸준히 뛰곤 했다. 처음엔 살던 동네만 뛰어도 숨이 가쁘더니 나중에는 숲으로 산으로 멀어졌다. 식사량도 줄었거니와 그렇게 운동한 덕인지 얼굴도 몸도 많이 탄탄해졌다. 달리기의 시간 후에 P가 내게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뛰는 시간은 오롯이 내 몸에 축적됐다. 힘들면 뜀박질이라도 하면 나아진다는 건 P에게 배운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방법이었다.
기분이 영 가라앉아 오늘은 그냥 늘어지게 있어야지 생각했다가, 무엇에 홀린 듯 억지로 몸을 일으켜 뛰러 나갔다. 마스크를 끼고서도 사람들은 운동을 하러 나온다. 날이 이렇게 추운데 강물은 얼지도 않고 푸르게 일렁인다. 지는 해를 등지고 찬바람이 땀을 식히니 금세 개운해졌다. 잡념은 여전했지만 잠식되어있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는 게 스스로 위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