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종종 수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wad Mar 13. 2020

후천적 체력 1

국토대장정

지인들은 내 체력이 좋은 줄 안다. 산티아고 순례길, 자전거 종주나 자잘한 등산을 즐기고 무엇보다 대학 시절  방학마다 참가한 국토대장정을 보고 하는 소리다. 하지만 틀렸다. 내 체력은 저질이다. 학창 시절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체육이었다. 체육복을 갈아입고 나가 뜀박질, 제자리 뛰기, 피구, 배구, 발야구, 철봉, 뜀틀 같은 걸 해야 할 때면 나는 어디든지 아프고 싶었고 오십 분이 정말이지 너무 길었다. 체육 시간만큼은 승부욕도 없어져서 체력 평가 시간에는 하기 싫어 흉내만 내다가 낮은 등급을 받아도 아무렇지 않았다.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좋은 내신이 필요했다. 망친 실기는 필기가 메꿔줬다. 한 번은 뜀틀에서 앞구르기를 연습하다가 처음으로 성공하자마자 발가락이 찢어져 꼬매고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 실기 평가는 물론 못 쳤다. 체육은 내게서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런데 스포츠 경기를 보는 건 나를 즐겁게 했다. 특히 축구에 관심이 있었다. 2002년 월드컵 때 대한민국이 준결승까지 올라간 덕에 나는 축구팬이 되었다. 고등학생 때 진로 고민을 한참 할 때, 교내 상담 선생님에게 좋아하는 게 사진과 축구와 글이라고 했더니 ‘스포츠 사진 기자’는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듣는 순간 맘에 쏙 들었다. 해외 경기가 있을 때는 비행기도 맘껏 탈 수 있다는 것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내 꿈은 스포츠 사진 기자가 되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열일곱 겨울 방학을 맞아 나는 국토대장정에 참가했다. 청소년 인솔 단체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 체력을 믿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그걸 참가했는가 싶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간 거다. 준비 없이도 잘 걸을 줄만 알았는데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길을 내가 너무 만만하게 봤다. 결론은 최악이었다. 나는 잘 걷지도 못하고 가져간 작은 카메라는 잃어버렸다. 고집이 세서 단체 생활과 맞지도 않았고 인솔자들과 부딪히는 일이 허다했다. 자원봉사자 중에서는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인솔자도 있었고 그 덕분에 국토대장정이 끝난 후 성인이 되어서도 오래 연을 쌓아온 사람이 있지만, 몇몇은 제 멋대로, 내키는 대로 우리를 부려 먹기도 했는데 나는 그들과 매일 싸웠다. 같이 지내는 사람이 싫으니 그곳에 있는 것도 싫었고, 안 그래도 잘 못 걷는데 그 얼굴을 보면서 같이 걸어야 하는 게 고역이었다. 안 가겠다고 버티는 날도 있었고 질질 끌려가면서 우는 날도 있었다. 그때 나는 아픈 채 제대로 된 치료도 없이 계속 걸은 탓에 아킬레스건을 심하게 다쳤다. 목발을 짚고, 붕대는 반년 넘게 했다. 병원을 수 없이 다녀도 의사들은 병명을 알지 못했고 나의 통증은 그렇게 일 년을 갔다. 그러다 우습게도 어느 순간 나아 버렸다.

스포츠 사진기자의 꿈은 떠나보내야만 했다. 운동은 역시 나의 길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찾은 건 보도 사진기자였다. 열심히 한 보답으로 나는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고, 사진기자가 되고자 학보사에서 기자 활동을 하며 글을 쓰기도 했다. 학보사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보도 전문 기자’는 내 길이 아니구나 했다. 사람의 언행을 따져 비판적인 글을 쓰는 데는 재주가 없었다.

아무튼 취업 걱정이 덜한 우리 학과 애들은 방학 때 대외활동 같은 걸 잘 찾아 하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된 여름, 나는 왜 다시 국토대장정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아직도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어떤 끌림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멋지게 완주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었는지, 그렇게 다쳐놓고도 다시 그 국토대장정에 갔다. 그때처럼 다치지 않으려고 좋은 등산화를 하나 마련해 한 달간 열심히 집 앞 산도 돌았다. 사진 대장이라는 이름으로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강릉에서 서울까지 걸었다. 노력 덕인지 부상도 어려움도 없이 잘 해내고야 말았다. 그때부터 나는 방학마다 중독처럼 국토대장정에 갔다. 이 악물고 또 한 번 해내고 나면 마음에 뭔가 차곡차곡 쌓여 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친구들은 나를 보며 대단한 체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빈약한 체력과 대단한 고집으로 그걸 해냈다고 말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나만 하기 연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