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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월 Dec 29. 2020

4. 병원 엘리베이터를 독점한 학생

우리는 누구나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생각보다 까마득한, 내가 처음으로 실습을 갔을 때의 이야기다. 갑작스레 한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더니 심장이 멈췄다. 발견한 의료진은 즉시 도움 요청을 하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모든 의료진이 즉시 모여들었다. 환자를 처치실(간호사실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응급물품이 비치된 공간)로 옮기고 각자의 자리에서 필요한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본인의 역할을 모두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당시 의료진의 이동에 방해가 안 되는 곳을 찾아 가만히 서서 관찰하는 것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는 실습생이었는데, 처음으로 아주 작은 미션을 받았다. 수간호사가 환자를 곧 중환자실로 이송할 거니까, 즉시 이동해서 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어렵지 않은 미션이었다.


학생이 병원 엘리베이터를 독점한 이유

 대형병원들은 대부분 응급 상황에 이송용으로 쓸 환자용 엘리베이터와 일반 엘리베이터를 구분해놓는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당시 그 병원도 그랬다. 엘리베이터는 그 건물에 딱 네 대가 있었고, 내가 있는 층에 서는 건 두 대뿐이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 곧 문이 열렸고, 그 안에는 수액을 맞고 있는 환자 한 명과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열림 스위치를 누른 채로, 그들에게 응급 환자 이송이 필요하니 죄송하지만 내려서 옆에 다른 엘리베이터를 이용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직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에 응급환자가 도착하기 전이었다. 예상 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그 둘은 잠시 상황을 파악하는듯하더니 '응급 환자가 어디 있냐.', '나도 환자다.'며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몇 차례 실랑이가 오가고서야 결국 그들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쌍욕을 들었다. 당시에는 속상할 정신도 없었다. 얼마 안 가 응급환자의 병상이 간호사실을 통과하여 빠르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날 집에 갈 때가 되어서야 마음이 불편하고 속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무언가에 깊이 실망했는데, 그 대상은 아마 인간이었던 것 같다.


언제 응급상황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이 바로 병원이다.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그 즉시 조치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CPR(code blue) 방송이다. 심정지가 발생하면 CPR이 필요한 상황이 된다. CPR 상황에선 즉시 해야 할 처치가 매우 많다. 손이 많이 필요하다. 아무리 노련한 의료인이라도 혼자 CPR상황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심폐소생술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큰 소리를 내거나 콜벨을 눌러서 도움을 요청한다. CPR방송을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즉시 중환자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의료진들 혹은 도움 요청하는 소리를 못 들었을 수도 있는, 가까이에 있는 의료진들이 즉시 CPR이 발생한 위치를 알고 달려올 수 있도록, 병원 곳곳에 즉시 방송한다. 병원 방송실은 새벽에도 불이 꺼지는 일이 없다.


생명을 살리는 시끄러운 방송과 시간을 지키지 않는 의료진

 "왜 이 시간에 방송을 울리는 거야?"

 야간 근무를 연속으로 하던 때였다. 그저께 새벽 1시쯤 CPR방송이 있었고, 바로 전날에도 새벽 3시쯤 방송이 있었다. 내 병동은 아니었지만, 다른 어느 병동에서는 환자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는 것이라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도 또 새벽 2시쯤 되자 또 다른 병동에서 CPR의 발생을 알리는 방송이 울렸다. 그땐 이미 경험이 좀 쌓였던 터라 CPR 상황이 한 번 발생하면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료진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는지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더 불편했다. 근데 어려운 일이 하나 더 생겼다. 한 환자가 나와서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삼일 내내 저 방송 때문에 잠을 못 잤다는 것이었다. 나는 방송의 필요성에 대해 한참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대화는 도돌이표였다. 본인의 숙면을 위해 방송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곤란했다. 왜냐하면 그 방송은 의료진이 어디에 있어도 분명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였기 때문이다.

 "왜 약을 아직도 안 주는 거야!"

 이것은 내가 첫 CPR 상황을 겪었을 때의 이야기다. 그때 나는 근무를 시작한 지 6개월도 안 된 신출내기였다. 나는 병동 복도의 가장 끝에 있는 병실에서 수술 환자의 배액관(상처가 난 공간 속에 있는 액체나 삼출물을 쉽게 배출하거나 제거하기 위하여 넣는 관)을 비우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병실 밖 어디선가 살려달라며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황급히 뛰어갔다. 내 담당 환자는 아니었지만 같은 병동의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진 것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담당 간호사가 먼저 도착하여 CPR을 시작한 상태였고, 곧 다수의 의료진이 모여들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응급처치에 집중하고 있는데, 복도에서 어떤 환자가 큰 소리로 이곳에 모여있는 의료진들에게 성을 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다른 급한 일이 생긴 걸까 싶어 하던 처치를 마무리하고 응대하러 나갔다. 놀랍게도 그 환자는 7시에 줄 약을 왜 아직도 주지 않느냐며 화를 냈다. 나는 손목을 들어 시계를 봤다. 분침이 이제 막 7시 5분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처방을 확인했다. 7시에 그 환자에게 주도록 처방된 약은 경구용 소화제였다. 나는 도리어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물론 표현할 수 없었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

 어쩌면 좋은 장비와 시설, 충분한 인력을 갖추면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내가 첫 CPR상황을 겪었던 그날 나는 혼자 16명의 암환자를 간호하고 있었다.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며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갈길이 멀다. 제도적 측면의 변화는 매우! 느리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선 차후에 자세히 다루고 싶다.) 그렇기에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급하지 않다면 더 필요한, 더 절실한 사람에게 부족한 의료진을 아주 잠시만 양보하는 것이다. 어쩌면 의료진이 한 명당 더 적은 수의 환자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제도적 측면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도 또 다른 최선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구나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는데 마침 근처에 의료진이 있어서 구사일생' 하는 기사들을 가끔 접한다. 그런 기사를 보며 사람들은 '운이 좋았네.' 같은 생각은 하지만 내가 혹은 내 가족이, 내 친구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잘 안 한다. 그런데 의료진으로 수많은 환자를 경험하며 느낀 것은 그것이다. 누구나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언제나 질병의 가능성(혹은 위협)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 모두가 CPR이 필요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것은 당장 가까운 곳에 의료진이 없으면 당사자가 그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심지어는 의료진이 아무리 노력해도 삶을 되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엘리베이터를 조금 더 오래 기다리는 것도, 시끄러워서 잠을 조금 설치더라도, 소화제를 조금 늦게 먹게 되더라도, 그 대신에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견딜만한 일이 되지 않을까? 치료는 의료진과 환자가 협력해야 한다. 이런 부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병원을 떠나왔지만, 여전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간곡하게 부탁하고 싶다. 조금만 더 기다리고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그 기다림과 인내는 생각보다 금방 끝날 거고, 그 대가로 얻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생(生)은 훨씬 더 값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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