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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월 Dec 29. 2020

3. 내 회복이 옆사람보다 더딘 이유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

 내가 있는 병원은 6인실에 TV가 없었다. 젊은 환자는 노트북이나 핸드폰으로 적당히 시간을 때우곤 했지만 (암센터에는 주로 나이가 지긋한 환자분이 많으므로), 그렇지 않은 환자가 더 많았다. 무료함을 느낄 새가 많은 병실에서, 본인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과 고락을 함께하게 되니 쉽게 대화를 트고 금방 친해지는 경우가 많았다.(때로는 그들 사이에 서열(?)이 생기거나 분란이 생기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나중에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상상해보라. '암수술을 하면 얼마나 힘들까'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처음 병실에 도착한다. 모든 게 다 낯설다. 첫날 옆자리 환자가 먼저 인사하며 대화가 시작된다. 알고 보니 나와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다! 했다는 수술도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할 수술이랑 비슷한 것 같다. 그 환자가 이렇게 덧붙인다. "생각보다 괜찮았어. 자네도 별문제 없이 잘 치료하고 퇴원할 거야." 빠른 속도로 긴장이 풀리고 당신은 그의 경험에 대해 보다 상세히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안을 덮는 큰 위안을 얻는다. 이것은 실제로도 종종 일어나는, 정말 좋은 예시다. 그렇지만 가끔 의료진에게는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환자의 시야에서는 모두가 같은 질병을 앓고 같은 치료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료진의 시야에서는 개개인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비교에 대한 고찰

1. "왜 저 환자는 저보다 늦게 수술했는데 벌써 식사를 하는 거죠?"

 금식을 하고 있는 환자가 간호사에게 묻는다. 간호사는 생각한다. 둘의 진단명 및 수술명은 비슷했지만 조금씩 차이가 있고 치료 과정도 내원 기간도 다르다. 설명하기 시작한다.

2. "왜 저 환자랑 저는 식사메뉴가 다르죠?"

 내 식판과 옆 식판을 비교하니 메뉴가 다르다. 옆 사람 식이가 더 풍성하고 맛있는 것 같다. 간호사에게 묻는다. 간호사는 또 생각한다.

 치료식은 종류가 굉장히 많다. 유동식, 연식부터 시작해서 당뇨식, 저염식, 구강외과식, 각종 수술 후식 등 너무 많아서 나도 내 근무지에서 자주 처방되는 식사가 아닌 이상 못 외운다. 처음에 환자가 입원하면 의료진은 환자가 갖고 있는 질병과 현재 상태를 면밀히 확인한다. 그리고 의사가 알맞은 식이를 처방하면, 영양사와 간호사가 확인하고 발행한다. 만일 환자가 특정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거나, 여타 다른 이유로 못 먹는 음식이 있다면(예를 들면, 채식주의자 같은 경우) 그에 맞춰서 메뉴를 결정하여 식사를 제조한다.

간호사는 또 설명한다.

3. "왜 저 환자는 매일 소독해주시는데 저는 안 해주시나요?"

 소독 재료에 따라 소독 주기가 다르기도 하고, 상처의 상태에 따라서도 소독 주기는 바뀔 수 있다.

간호사는 한번 더 설명한다.

4. "왜 저 환자는 수액을 저보다 많이 맞나요?"

 수액은 환자의 영양상태나 몸무게 등 다양한 지표를 바탕으로 종류와 양을 결정한다.

간호사는 다시 한번 더 설명한다.

5. "저 환자랑 같은 날 수술을 했는데 왜 저만 이렇게 아플까요?"

 수술한 지 삼일째 되는 날에 받은 질문이다. 환자 말대로 옆자리의 환자는 수술 후 이틀째 되는 날부터 추가 진통제 없이도 일상생활이 가능했고, 질문한 환자는 삼일째임에도 추가 진통제를 벌써 여러 차례 맞고 있었다. 환자가 보기에 그들은 같은 진단명(소화기암)을 갖고 같은 날 같은 수술을 하고 같은 종류의 무통주사를 맞고 있지만 통증의 정도는 달랐던 것이다. 간호사는 머릿속에 두 환자의 상태(모두 내 담당 환자였다.)와 질문의 답변을 떠올린다.   

진단명은 같으나 암이 있는 위치와 크기와 종류가 다르다.

같은 수술명처럼 보이지만 수술 방법이 다르고(같은 수술이어도 다양한 방법이 있다.) 절개의 정도가 다르다.

무통주사에 대한 효과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지는 않다.

같은 통증이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근거는 알지만 설명을 하려니 복잡하게 느껴진다. 결국 늘어지는 설명 끝에 반복하게 되는 말은 "서로 비교하지 마세요."라는 말이다.


우리는 서로를 비교하고 그 사이에 공통점 찾으며 친밀해진다. 차이를 발견하는 순간 문제는 시작된다.

 다인실의 장점은 서로 친해지면 치료과정을 공유하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사이가 안 좋으면 병원 생활의 또 다른 스트레스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단점이 이것이다. 사람들은 여럿이 모이면 끊임없이 비교한다. 본능이다.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지만, 사소한데서부터 비교하기 시작하면 우리를 스스로 갉아먹는 결과를 낼 수도 있다.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는 쉽게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확률의 배신

 흡연이 폐암의 발생률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이 비흡연자는 폐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흡연자가 폐암을 진단받았을 때 보다 더 큰 분노와 절망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이런 경우를 자주 접했다. '나는 항상 건강한 식단을 추구했는데 왜 위암에 걸린 거죠?' 우리는 확률을 쉽게 믿는 만큼 '높은 확률'에서 소외되었을 때 더 쉽게 절망한다. 비슷하게 우리는 '평균'이라는 말을 쉽게 믿는다. 암 수술을 위해서 처음 입원하면 의료진은 치료과정을 설명하면서 예측되는 입원기간을 알려준다. 수술 후 회복하는데 '평균적'으로 소요되는 기간을 알려주는 것이다. 평균 1주일이라는 것은, 더 빨리 회복하여 5일 만에 퇴원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열흘이 넘는 기간이 걸려서야 겨우 퇴원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합병증이 생기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선 훨씬 더 길어지는 경우도 있다.(몇 개월 동안 입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평균 일주일이라고 이야기하면(수술의 종류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철석같이 자신도 일주일이면 퇴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그 시기가 늦어지는 것 같으면 당황한다. 남들보다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 내가 제일 늦게 퇴원하는 거지? 왜 나만 이렇게 더딘 걸까?"

 외과 병동에서 일하며 정말 많이 들었던 말이다. 어떤 사람은 5일째에, 어떤 사람은 1주일이 지나자마자, 또 어떤 사람은 한 달째에 이 말을 했다. 축적된 경험이 가르쳐준 사실은, 우울감 섞인 이 한탄은 대부분 비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5일째 이 말을 했던 사람은,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3일 이내에 퇴원했다. 사실 그 환자는 평균 입원 기간이 그들보다 긴 수술(더 큰 수술)을 했고, 실제로 같은 수술을 한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보다 빠르게 회복한 편인인데도 불구하고, 본인이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한 달째에 저 말을 꺼낸 환자는 반대로 같은 병실에 본인처럼 입원기간이 지연된 환자, 즉 회복하는데 2-3주 이상 걸린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그들이 먼저 퇴원하고 병실에 혼자 남았을 때가 되어서야, 본인의 회복 속도가 더디다는 것을 '체감'한 것 같았다.(본인과 같은 수술을 할 경우 평균 입원기간이 1주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

 인간은 자기 자신을 평가하기 위해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한다.(리온 페스팅어의 사회비교이론에 따르면 그렇다.)  그러나 병원에서 환자는 '올바른' 비교를 하기가 매우 어렵다.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성격이 사람마다 다 다른 것처럼 우리의 몸도 각자 다 다르기 때문이다. 올바르지 못한 비교는 불행을 만들어낼 뿐 치료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인실 안에서 대화를 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위안을 얻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현상이다. 그렇지만 서로 비교하고, 스스로가 뒤처진다는 생각에 잠식되면, 그것은 빠른 속도로 우리의 마음을 갉아먹는다. 마음이 그렇게 닳기 전에, 우리는 비교를 멈춰야 한다. 가로로 놓인 일직선 위에 타인과 나를 세우지 말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달라질 내일의 나를 일직선상에 세워야 한다.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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