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미션 : 덜 아프게 주사 놓기
질병이 수반하는 통증을 조절하는 것은 의료진의 의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통증을 수반하는 치료도 있다. 이를 조절하는 것 역시 의료진의 의무지만, 어려운 문제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괴로웠다. 왜냐면 모든 침습적인(살을 파고드는) 처치는 필연적으로 통증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침습적인 시술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마취를 하기도 하는데, 그 마취제는 주사를 통해 주입된다. 그 주사도 어쨌든 아프다.) 불가능한 요구를 받는데 또 그 마음이 이해가 되니까 마음이 괴로웠던 것이다. 타인의 치료에 존재의 가치를 두는 사람이 불가피하게 타인에게 통증을 줘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우리는 통증을 줄이려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한다. 주사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얇은 바늘을 사용한다.
병원에서 쓸 수 있는 바늘의 크기는 다양하다. 그 정도를 'G(gauge)'로 표현하는데, 앞에 붙는 숫자 값이 커질수록 바늘의 크기는 작아진다. 용도에 따라서 바늘 크기는 달라진다. 단순한 수액 주입이 목적이라면 24G도 충분하지만 응급실에 방문했거나 수술이나 침습적인 시술을 하는 등 응급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는 그보다 훨씬 두꺼운 18G의 정맥주사가 필요하다. 대량 수혈이나 빠른 약물의 투입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늘의 크기에 따라 약물의 주입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18G로 주입하면 1분에 75~120ml까지도 주입 가능하지만 24G의 경우 1분에 최대 35ml밖에 주입하지 못한다.) 18G는 쇠로 된 비스듬한 원통형 바늘의 지름이 1.27mm 정도고 길이는 3.8~4cm쯤 된다. 4cm 길이의 쇠가 내 살 사이를 뚫고 들어온다고 생각해보라. 안 아플 수가 없다. 필자도 응급실에서 한 번 겪어봤는데 너무 아파서 뜨겁게 달군 바늘 같다고 생각했다.(나중에 바늘을 제거하고 나서도 멍이 큼지막하게 들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간호사도 가능하다면 통증이 적고, 단번에 성공할 확률이 높은 얇은 바늘을 사용하고 싶어 한다.
2. 단번에 성공하려고 노력한다.
핑계 같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보다 어렵다. 주사를 놓는 이론적인 방법을 말하는 것은 쉽지만 '기술'이라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다. 주사를 놓는다는 것은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라, 공부나 운동처럼 (슬프게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있다. 실패 확률이 극도로 낮은, 아주 숙련된 기술을 왼쪽 끝점에 놓고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은, 숙련되지 못한 기술을 오른쪽 끝점에 놓는다면, 두 점을 이은 직선 사이에서 나는 불행히도 의료진으로 종사하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중간지점보다 약간 오른편에 있었다. 이것도 사실 많이 나아진 것이다. 일하기 시작한 초반에는 정말 못했다. (사실 몇 번 안 해봤는데 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못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심지어 규모가 있고 재정 상황이 그래도 괜찮은 병원은 정맥주사 전담팀을 운영하기 때문에, 그 팀에 속하지 않은 다른 간호사들은 실제로 주사를 직접 놓을 일이 거의 없으니 초반에 실력이 늘기가 어렵기도 했다.(나 역시 첫 1년간 주사를 직접 놓아야 하는 상황이 5번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주사의 성공 여부에 한 가지 더 영향을 미치는 게 있다. 바로 주사가 들어갈 혈관의 상태이다. 항암제나 항생제처럼 혈관에 자극을 주는 약물들이 있는데, 이런 약제를 주기적으로 장기간 투여하다 보면 혈관의 상태가 나빠지게 된다. 보통은 가역적인(회복될 수 있는) 변화인 경우도 있지만, 반복되다 보면 회복이 더뎌진다. 위에 언급했듯 18G라면 4cm 길이의 카테터가 혈관에 들어가야 한다. 밀어 넣다 보면 약해진 혈관벽이 바늘을 압박을 못 이기고 아예 터져버리고 만다. 그럼 당연히 주사는 유지될 수 없으니 빼고 다른 부위에 다시 넣어야 한다. 심지어 혈관이 터지면 금세 멍이 든다. 그래서 간호사들은 애초에 가장 튼튼하고 곧은 혈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사람에 따라 혈관이 잘 보이기도, 안 보이기도 하고 더 두껍고 탄력적인 혈관을 가진 경우도, 얇고 쉽게 터지는 혈관을 가진 경우도 있다. 혈관 상태가 안 좋으면 숙련된 기술을 가진 간호사도 한참의 시간을 쏟아야 겨우 혈관을 찾는 경우도 더러 있다.
3. 주사제 투여에 대한 정보를 미리 설명한다.
주사로 투여될 약물의 필요성, 효능, 발생 가능한 부작용 등 기본적인 정보를 미리 제공한다. 투약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정맥주사 시 환자가 느끼는 통증이 경감된다는 결과를 확인한 연구가 있다. (논문:정맥주사 투여 시 대상자가 인지하는 통증, 우울 및 불안과의 관계 - 통증 관련 요인을 중심으로)
4. 정맥주사 전담팀의 운영
잘하는 사람이 그 일을 도맡아 할 수 있게 하는 퍽 효율적인 전략이다. 많은 병원들이 이 정책을 하고 싶어 하지만, 비용과 인력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할 수 있어서 국내에서 시행하는 병원이 많지는 않다.
5. 도구를 사용한다.(혈관을 볼 수 있는 초음파, 통증을 줄여주는 약물 스프레이 등)
주사 성공률을 높이고 통증을 줄여주지만, 도구가 미리 구비되어있지 않으면 사용하기 쉽지 않은 방법이다. 내가 근무한 곳이 국내 '빅5'라고 불리는 초대형 병원임에도 일부 파트만 구비하고 있었다.
안 아프게 놓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하기 위해 의료진은 이렇게 다방면으로 노력한다. 앞서 말한 적 있지만, 치료는 환자와 의료진이 적절히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다. 함께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일궈내는, 일종의 팀전인 것이다. 그렇다면 환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쉬운 방법은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다. 환자가 의료진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면 그 불안은 의료진에게까지 전달된다.(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믿지 못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의료진을 믿지만 불안한 본인의 상황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괜찮다. 그러면 의료진도 그 마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결국 가장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닐까? 나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병원에서 지내면서 그 믿음이 흔들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