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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월 Dec 29. 2020

1. 환자로서의 권리

병원에서 알 권리 행사하기

 이전에도 말했지만 사람은 모르면 불안해한다. 환자는 당연하게 본인의 상태를 궁금해한다. 그리고 환자는 본인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 권리가 있다. 치료를 할지 말지, 어떤 치료를 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도 결국 환자의 몫이다. 그런데 그런 중대한 선택에 선행하여 적절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게 우리의 현실이다.


병원에서의 언어

 '사짜 직업'이라고 불리는 전문직의 일종(그 외에도 전문직의 범주에 포함되는 직업이 실제로는 더 많다.)의 특징이 있다. 각자 자신들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법조인이 아니면 법전을 펴도 까막눈이나 다름없다. 의료인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학부를 졸업할 때쯤부터 교과서는 가능하면 한글로 바뀌기 시작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의료진들은 여전히 영어로 된 의학용어를 쓴다. 그렇기에 의사나 간호사는 학부생 시절부터 의학용어를 달달 외운다. 그중에는 그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은어나 줄임말도 굉장히 많다. 그렇게 배우고 마침내 의료인이 되면, 한 가지 큰 어려움에 봉착한다. 환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는 것이다. 환자는 의료용어를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으므로,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를 쓰지 않고서 정확하게 상태를 설명해야 하는 새로운 미션이 주어지는 것이다.

 또 한 번 당신이 수술을 하여 입원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입원을 하고 나면 하루에 한 번(물론 교수 개개인이나 병원 방침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같은 병원이어도 하루에 두 번 세 번씩 오는 교수도 있고, 자주 와야 3일에 한 번인 교수도 있다.) 회진을 명목으로 의사를 만난다. 큰 병원에 가면 회진을 돌 때 한 번에 여러 명의 서로 다른 직급을 가진 의사들이 떼를 지어 온다. 환자를 앞에 두고 그중 낮은 직급으로 여겨지는 한 사람이 환자 상태에 대한 브리핑을 한다. 환자는 세심하게 듣지만 알아듣기 어렵다. 본인 상태에 대한 이야기구나 하고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의사들은 자기들끼리 또 알기 어려운 단어들을 써가며 이야기하다가 자리를 떠나기 전 환자에게 한 마디 던진다.

 "잘 회복하고 있네요."


 이것은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정'이지만, 실제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많다. 물론 묻기 전에 성심성의껏 환자의 상태를 쉬운 말로 설명해주는 섬세한 의료진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상급종합병원의 의료진들은 매우 바쁘고, 환자들은 궁금하지만 그 궁금함을 해소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따돌린 사람이 없어도 우리는 가끔 소외당한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에 이사를 세 번이나 했는데, 6학년이 끝날 즈음 이사를 하고 나니 혼자 친구들과 같은 중학교를 못 가게 되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보니 다른 동급생들은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가 많았고, 학교 안에서 그들만이 아는 이야기들을 잔뜩 늘어놓는데 나는 그런 자리에 쉬이 낄 수 없었다. 그들이 끼지 못하게 한 것도 아니고, 나를 따돌리려고 의도한 것도 아니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소외감을 느꼈던 것 같다.

환자, 보호자는 병원에서 그런 상황을 종종 겪기 쉽다. 의료는 전문적인 영역이니까, 섬세한 배려가 없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외당한다. 소외하려고 의도하지 않아도 사람은 상황에 따라 소외감을 느낀다. 이런 감정은 물론 치료에 하등 도움되지 않는다. 그런 걸 막으려면 먼저 의료진의 섬세한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환자나 보호자도 의료진이 다 알아서 하겠지라는 방임적 태도보다는, 본인의 치료과정에 충분히 관심을 갖고 어느 정도는 개입해야 좋은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본인을 제일 잘 아는 것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다시 나의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서, 그 시절 나의 최대 고민은 친구들을 어떻게 사귀냐는 것이었다. 당시 조그만 머리로 박 터지게 고민하고 나온 해답은 일단 말을 걸자는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말을 걸지? 그다음은 간단했다. 질문하기였다.


절대 인터넷에 증상 검색하지 마

 유튜브에서 조회수 400만을 넘긴 유명한 영상이자 노래 제목이다. 스웨덴 의사가 직접 가사를 썼는데, 국적 불문하고 많은 의료진들이 공감할 것이다. 다음은 가사의 일부다.


Never google your symptoms 

The hit list is never awesome 

Pain in your left arm? Heart attack alarm! 

Do you feel a little weak? Yes, You’ve got ALS! 

If you have a slight anemia You’ve got leukemia! 

Are you a little crazy? You’ve got ADHD 

So never, ever google Your symptoms!

절대 인터넷에 증상 검색하지 마, 서치 결과는 끔찍할 테니까

왼팔이 아프니? 심장마비의 경고 신호란다.

기운이 없어? 그래 루게릭 병이구나

빈혈기가 있다고? 백혈병입니다.

네가 좀 사차원이라고? ADHD란다

그러니까 제발 절대로 인터넷에 증상 검색하지 마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으면 환자나 보호자는 자연스럽게 다른 수단을 찾게 된다. 가장 쉬운 방법이 인터넷일 것이다. 그곳엔 놀랍게도(?) 잘못되거나 분별력 없는 정보들이 넘쳐난다. 올바른 정보를 찾는 경우도 있겠지만, 가끔 의료 관련한 잘못된 정보들은 한 사람의 치료과정에 재앙을 낳기도 한다. 환자의 상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환자 본인과 담당 의료진이다. 그것은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약속된 가장 기본적인 명제이다. 본인의 상태가 궁금하면 담당의에게 가야 한다.


메모의 중요성

 "아! 그걸 못 물어봤네."

 병동의 간호사로 일하면서 회진이 끝난 뒤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환자, 보호자는 궁금한 것이 많다. 의료진이 먼저 가장 중요한, 몰라서는 안 될만한 정보들은 먼저 알려주지만 그걸로는 부족한 경우가 더 많다. 그렇게 물어보고 싶은 것을 마음에 꼭 눌러 담아둔 채로 회진(혹은 진료)을 기다린다. 회진이 시작되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오기 때문에 정신이 없다. 교수의 발언이 시작되면 주의 깊게 듣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마음속 질문은 어디론가 잠시 사라진다. 회진이 끝나고 나면, 그제야 질문들이 기억난다. 그런 경위로, 교수에게 하려던 질문을 차선책으로 담당 간호사에게 물어보는 경우도 많다. 간호사와 의사가 다루는 정보는 보통 맥락을 같이하지만, 환자에게 말해줄 수 있는 영역은 명확하게 구분된다. 또 실제로 간호사가 다루지 않는(의사만이 다루는) 영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면 질문을 받은 간호사는 담당 의사에게 가서, 다시 한번 물어보고 전달하는 방식의 의사소통을 취할 수밖에 없다. 비효율적이고 정확도가 떨어진다.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래 진료도 비슷하다. 본인의 이름이 불리고 들어가면 담당 교수, 그리고 옆에 또 다른 의사나 혹은 보조인력이 있고 간호사가 같이 있다. 본인이 가진 기본적인 문제들은 접수할 때 말했으므로 의사는 추가적인 정보 몇 가지를 먼저 묻고, 상태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한다. 주의 깊게 듣다 보면 또 궁금했던 질문들은 기억 속 어디론가 사라져 있다. 진료가 끝나고 나서야 여러 질문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외래 진료는 끝나고 나면 어디 물어볼 차선책도 딱히 없다.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는 사람들도 대부분 최소 며칠에서 몇 주 간격을 두고 오므로, 꼼짝없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로 그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참지 못하는 분들이 외래나 병동으로 전화를 걸기도 한다.

 "교수님 계시면 통화 한 번만 할 수 있을까요?"

 가끔 의료진 개인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연락도 받는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당연히 절대 안 된다. 그러므로 미리 저런 상황을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 예방하는 법은 어렵지 않다. 적는 것이다. 메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궁금한 게 생각날 때마다 적어놓고 의사를 만나서 대화하는 자리에서 꺼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본인의 치료에 정말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 의료진의 답변을 듣고 적는 것도 괜찮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답변을 까먹고 같은 것을 재차 질문하는 일을 예방할 수 있다.


모두를 위한 것

 "너무 많은 것을 물어봐서 바쁜 의료진의 시간을 많이 뺐는 건 아닐까요?"

 앞서 말했듯이 환자가 본인의 상태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의료진의 의무이다. 그리고 사실 의료진 입장에서도 개인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는 것보다 치료적으로 '진짜 필요한' 의사소통에 시간을 쓰는 게 더 기쁘다. 환자가 진심으로 의지를 갖고 협조적인 태도로 치료에 임하는 것을 알게 되면 의료진도 더 강한 에너지와 추진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두를 위해, 환자들이 당당하게 본인에게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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