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쪽의 이야기>
<반쪽의 이야기>는 하이틴을 통해 사랑에 대한 고찰을 나누는 영화입니다. 완벽한 자신의 영혼의 반쪽을 찾는 일이 사실은 환상에 불과한 것임을 강렬하게 외치는 영화이기도 해요. 아시안계 고등학생 레즈비언이라는 기존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이야기를 담담하게 진행해나가기 때문에 기존의 하이틴 영화에서는 찾기 어려웠던 진중함이 보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세 청춘의 사랑과 우정이 한 군데에서 얽히고 설키면서도 이를 촌스럽지 않게 풀어내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수 있어요.
영화는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는데요, 특히 중점이 되는 세 고등학생들의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그려져서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주워듣는 듯한 생생함을 선사합니다. 다만 영화 속에서 '엘리'의 아버지의 존재는 좀 아쉬웠는데요, '엘리' 아버지의 무능함 때문에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가장이나 다름없어 '엘리'가 또래보다 성숙하게 그려지는 것이 좀 안타깝더라고요. 그러나 결국 하이틴 성장 영화답게, '엘리'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모두가 함께 성장하기 때문에 영화가 끝난 뒤에 남는 여운이 씁쓸하지는 않습니다.
<반쪽의 이야기>는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영화이면서, 인물들 간의 갈등과 애정을 섬세하게 전달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을 헷갈리게 하지 않는 매우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특히 하이틴 영화의 주인공이 아시아계 여성인 것만으로도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킬링타임용 하이틴 로맨스 영화를 찾으신다면 <반쪽의 이야기>를 매우 추천합니다.
<반쪽의 이야기>는 레아 루이스를 주인공 '엘리 추' 역에 캐스팅하여 하이틴 로맨스 장르를 이끌어갑니다. 하이틴 장르를 이끌어가는 아시아계 여성의 이야기는 흔하게 접할 수 없는 소재인 만큼 이 영화가 특별하기 느껴질 수밖에 없는데요, 이는 이 영화의 감독 엘리스 우가 각본과 감독을 모두 맡아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작품 속에 녹여냈기 때문에 가능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하이틴 장르를 이끌어가는 아시아계 여성의 이야기라는 특이점에 더해 '엘리 추'는 백인들뿐인 고등학교의 유일한 유색 인종이자 레즈비언으로서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 영화에 특별함을 더해줍니다.
<반쪽의 이야기>는 하이틴들을 소재로 '진짜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은 완전함에 대한 추구와 갈망에 붙인 이름이다"라는 플라톤의 '향연' 인용을 필두로, 영화는 초반 자신의 영혼의 반쪽을 찾아 헤매는 사랑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초반부에 제시된 '반쪽의 이야기'에 맞게 영화 <반쪽의 이야기>는 세 주인공들에게 공평하게 서로가 서로에게 완벽한 반쪽이 맞는지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줍니다. '엘리'와 '애스터', '애스터'와 '폴', '폴'과 '엘리'에게 모두 공평하게 탐색의 시간을 선사해요. 각 탐색의 시간이 서로에게 갖는 의미는 다를지더라도 이 시간을 통해 각각의 관계는 조금씩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발전해갑니다.
<반쪽의 이야기>는 '엘리', '애스터', '폴' 세 사람의 오묘한 삼각관계를 통해 완벽한 반쪽에 대한 사랑의 환상에 대해 반박합니다. 이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애스터'와 '엘리'가 함께 한 시간인데요, 물속에 가만히 떠 있는 두 사람의 모습 아래로 각자의 얼굴이 비칩니다. 이는 영화 초반 '반쪽의 이야기'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완전한 인간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완벽한 자신이 반쪽은 본인일 수밖에 없으며 타인에게서 완벽한 반쪽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임을 의미하는 장면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이러한 시각은 영화 후반부 '엘리'가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에 대해 외치는 장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요, '엘리'는 사랑은 엉망진창에 끔찍하고, 이기적이고, 대담한 것이며 완벽한 반쪽을 찾는 게 아니라 노력하고, 손을 내밀고, 실패하는 것이라고 외칩니다. 누군가와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반쪽임을 기대하고 꿈꾸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노력하고 실패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해요.
영화가 가진 사랑에 대한 시각 때문에 세 등장인물 모두 반쪽을 찾는 탐색의 시간에서 벗어나 각자의 길을 찾아가는 영화의 결말이 이 영화의 주제 의식과 매우 잘 어울립니다. 각자 사랑에 대해 기대하고 꿈꿨던 것을 뒤로하고 일단 자기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아 떠난 것이라고 결말을 해석할 수 있어요. '애스터'의 말처럼 몇 년 뒤에는 이들이 각자 가진 사랑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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