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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 Oct 18. 2021

뱀의 머리라도

매일 지옥이었던 고등학교

가서 뱀의 머리라도 되는 게 낫지 않겠나?


중3 담임 선생님의 마음은 그랬을 것이다.

제자가 잘못되길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랑 철천지원수를 진 것도 아니고.

택시운전에 공장일 하는 부모님에 가정형편을 뻔히 아는데 현실적인 선택을 하도록 한 것일 것이다.

시험을 칠 수 있었네 마네 하는 건 사실 나의 구차한 핑계고 변명일 뿐.

더 힘든 환경 속에서 호롱불에도 코피 흘려가며 공부해서 우등생인 사람들도 있는데 집안 분위기 핑계로 공부에 집중도 못하고 제대로 안 한 내 잘못이지.

누굴 탓할 것이 없다.

다 나 스스로 만든 길로 가는 것이다.

조금 더 노력했다면 애초에 오고 싶지 않은 학교로 진학하는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중간하게 처신해 온 내가 문제지.

그래도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면 우등생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선생님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뱀의 머리라도 할 줄 알았지만 상업과목에 흥미도 없고 하기도 싫어서 결국 뱀의 꼬리로 전락했다.

담임선생님이 첫 성적표를 나눠주며 내게 했던 "실망했어요."라는 말처럼 나는 나에게 아무런 기대도 흥미도 없어지고 있었다.




내가 중2가 됐을 때, 우리 가족은 정신이 아픈 주인 아주머니를 피해 새로 지은 아파트로 도망을 갔다.

정말 적은 금액을 걸고 살 수 있는 영구임대아파트.

영구임대아파트로 갈 만큼 형편이 형편없어졌다.

11평, 실평수 7평에 불과한 그 작디작은 곳에서 외할머니까지 5명이 살게 되었다.

더 심한 건 그나마도 큰 방은 부모님이 쓰게 되었고, 비좁은 방에 외할머니까지 3명이서 지내게 되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작은 방에 책상 2개도 놓을 자리가 없어서 접었다 폈다 하는 밥상에서 공부하는 것으로 바꿨고 우리 둘은 어깨를 딱 붙이고 자야 했으며 외할머니는 발 밑에 자리 잡고 주무셔야 했다.

정말이지 사는 게 왜 이런가 싶었다.

외할머니 몸집이 얼마나 작은데 그런 작은 몸까지 누울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작은 방이라니...

3명이 몸을 욱여넣어 자야 하는 방, 공부할 공간조차 없는 이곳에서 나의 꿈도 그만큼 작아졌다.


한 번은 큰 이모가 집에 오셨다가 외할머니 사는 모양새를 보시고는 화가 나셔서 그만 엄마께 하지 말아야 할 말씀을 하셨다.

엄마를 이렇게 밖에 못 모시냐고.

그런 말을 들은 엄마가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여태 엄마 모시고 사는데 돈을 보내본 적이 있나, 집 구하는데 보태라고 도와준 적이 있나. 아무것도 한 거 없이 나한테 책임만 전가해놓고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나? 그럼 언니가 모셔라."


안 그래도 좁은 집에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게 돼서 엄마 마음도 편치가 않았는데 큰 이모의 공격적인 말에 화가 나서 그날 바로 이모 댁으로 외할머니를 데려다 드렸다고 했다.

그러나 큰 이모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계셔서 사실 외할머니까지 모시기는 힘든 상황이다 보니 이모 댁 근처에 작은 집을 하나 구해서 외할머니를 모시게 되었다고 했다.

결국 외할머니는 또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거지.

본인께서 그저 짐일 뿐이라고 여기시는 마음에 한번 더 못을 박은 일.

그리고 이 일이 엄마에게도 마음에 못을 박은 일이 된다.




너무 작아진 방에서 도저히 불편함이 감당이 되지 않았는데 외할머니라도 따로 나가시게 되어 나와 동생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함께 지내던 외할머니가 갑자기 안 계시니 마음은 허전했다.

정말 몸이 작으셔서 누워계신들 표도 안 나셨지만 작은 방 드나드는 문 앞에 계셨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었다고 할 순 없었으니까.

나와 동생은 점점 자라고 있고, 심심하면 투닥거리고 싸우곤 했으니 외할머니도 따로 사는 편이 낫다고 여기셨을 것이다.


내가 예민한 사춘기를 지나고 있고, 공부할 공간이 없어 학교 공부도 다시 챙길 수가 없는 와중에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엄마가 큰 결정을 내리셨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갔더니 우리 방에 뭔가가 들어와 있었다.

바로 2층 침대.

동생과 내가 누워 잘 공간도 작고, 무엇보다 책상을 제대로 놓을 수가 없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2층 침대였다.

우린 처음 가져보는 침대가 마냥 좋았다.

나는 1층, 동생이 2층을 사용하기로 하고 아주 조금 남은 공간에는 1인용 책상을 2개 놨다.

그렇게 놓고 나니 더 이상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는 방이 됐지만 그래도 각자 편안하게 누울 공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2층 침대 가격도 비싼데 엄마가 무리하셨네.

엄마의 결단 덕분에 우리는 같은 방이지만 서로 다른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각자의 책상에 앉아서 공부도 할 수 있었고.




학교는 정말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다녔다.

입학하는 순간부터 너무나 싫었다.

중학교 성적으로 등수를 매겼는지 나와 소꿉친구는 진학반으로 선정되었다.

아침에 1시간 더 일찍 와서 대학 갈 공부하는 진학반.

웃기다.

취업 일찍 하라고 들어온 학교에서 진학 공부라니.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난 또 시키는 대로 일찍 와서 공부했다.

그리고 시험만 치면 항상 웃긴 결과가 나왔다.

인문과목 성적은 모두 우등생, 상업과목 성적은 완전 열등생.

인문과목 선생님들은 내가 공부 잘하는 학생인 줄 알고 계셨고, 상업과목 선생님들께는 내가 완전 꼴통 중에 꼴통이었다.

어느 날 우리 반 친구도 나에게 말했다.


"대체 이 학교에 온 이유가 뭔데? 인문과목을 잘하는데 굳이 상고로 왔노? 인문과목만 가르치는 학교 갔으면 성적 좋았을 거 아냐?"


웃고 말았다.

인문과목만 가르치는 학교에 갔으면 거기서는 인문과목으로 꼴찌 했을 거야.

됐다. 이미 벌어진 일.


나는 내 성격상 그냥 또 받아들였다.

억지로.

별도리가 없으니까.

전학을 갈 방법도 찾아보고, 자퇴를 할까 궁리도 해봤지만 만약 자퇴라도 하는 날엔 다시는 학교를 못 다니게 될 것 같아서 그만두지 못했다.

아마 학교 그만두면 공장이나 다니라며 매몰차게 내쫓길 테니까.

배부른 소리는 그만하고 잠자코 학교나 다녀야 했다.


항상 귀에는 이어폰만 끼고 매일 같은 음악을 무한 반복하며 반 친구들에게도 곁을 주지 않았다.

짝지로 옆에 앉은 친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고 계속 모른 체 하다가 입학하고도 한 달 넘게만에 처음으로 뒷자리 친구들에게 뭘 빌리려고 돌아보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앉은 친구들은 그제야 너무 답답했다며 내게 힘들었음을 토로했다.

뭘 말 걸면 되지? 하며 웃었지만, 나도 안다.

내가 너무 어둡다는 것을.

말 붙이기도 어려울 만큼 냉랭함이 뿜어져 나온다는 것을.

내 표정이 너무 부담스럽다는 것을.

미안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집에도 학교에도 모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1년을 겨우 버티고 버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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