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가세가 기울어지고, 힘들어진다고 '내 인생 잠깐 일시 정지해주세요'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게 마련이고, 파도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둥둥 떠갈 뿐.
학교에서 단 한 번도 말썽을 피우거나, 교우 간에 문제가 있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점심시간이면 오징어 땅콩(오징어 게임)을 하느라 운동장에서 땀을 빼고 신나게 놀기도 했고, 학교 건물 뒤편 공터에서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기도 했고, 사촌오빠에게 얻은 테니스채 덕분에 테니스부에서 열심히 활동하기도 했다.
방과 후 합창단 연습에 매진하고 시에서 주최하는 합창대회에 나가기도 했었다.
그 나이에 딱 맞게 활기찬 학교생활을 해나갔다.
성적은 중상위권 정도로 유지하면서 나름의 학교 생활에 최선을 다한 것 같다.
성실한 학교 생활은 세월을 지나 어느덧 진학을 얘기하는 중3의 시간이 다가왔다.
중3.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돌이켜볼 때,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관문을 넘어야 하는 나이.
난 저 시간을 잘못 건너와서 후회하고 방황했던 시간이 길었다.
내가 고등학교 진학을 할 땐 인문계 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서 시험을 쳤었다.
당연하게 나도 그걸 준비하고 있었고.
원서접수를 해두고 시험공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날 불렀다.
"니 성적이 애매한데, 인문계 말고 실업계는 어떤데?"
"실업계요? 전 생각한 적 없는데요."
"잘 생각해야 돼. 만약에 진학시험 쳤는데 떨어지면 완전 안 좋은 학교로 가게 되는 수가 있어. 이런 학교가 있는데 잘 한번 생각해봐."
"아뇨. 어차피 시험성적만 커트라인 넘으면 되니까 시험 칠 거예요."
생각지도 않은 얘기다.
담임 선생님의 말에 불쾌감부터 올라왔다.
내게 실업계 고등학교의 이미지는 나빴고, 당연히 인문계로 갈 생각을 했기 때문에 괜한 소릴 들은 듯 기분만 상했다.
원서접수 마감일.
난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시험 얘길 하며 하교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담임 선생님이 다시 나를 불렀다.
부를 일이 없는데 왜 부르는 걸까 하며 교무실로 갔는데 덩그러니 내 원서가 그대로 있었다.
접수되어 없어야 할 내 원서가.
담임 선생님이 말하길
"네 어머니가 오셔서 원서접수를 취소했다. 어차피 대학 진학은 힘들 거니까 실업계로 진학해서 빨리 사회생활 시작하는 게 나으니까 나랑 얘기 끝에 그렇게 결정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난 실업계 고등학교를 갈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당사자인 내가 시험을 보겠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내 원서를 마음대로 접수에서 제외시키다니.
너무 속상했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교실에 엎드려 있으니 별별 말들이 다 귀에 들어왔다.
"몇 반에 그 애 있잖아? 맨날 노는 걔. 성적이 바닥인데 이번에 인문계 원서 접수했다던데? 걔 엄마가 무슨 사장인가 그렇다고 하면서 죽어도 실업계는 안 간다고 땡깡 부려가지고 인문계 원서 접수했다더라. 시험 떨어지면 알아서 할 거니까 일단 시험만이라도 치게 해달라고 했다고."
"학원 선생님이 말하던데 고등학교 진학 시즌 되면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엄청 찾아오나 보던데 학교마다 보내야 하는 인원이 있나 보더라. 하긴 인문계 진학 가능한 인원이 정해져 있으니까 나머지는 다른 학교로 다 배정해서 보내야 될 거니까."
나와 함께 동네에서 자란 소꿉친구도 실업계 고등학교 진학으로 결정했다고 했다.
내 친구도 성적이 나쁘지 않았는데 애매하게 걸쳐져 있으니까 사는 것도 그저 그런 우리들은 애초에 실업계 고등학교 배정 인원으로 분류해둔 것 같았다.
그땐 가정환경 조사도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했었으니까.
하지만 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같은 반 내 주변 친구들은 모두 다 연합고사 얘길 하고 나에게 시험 준비 잘하고 있냐고 묻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난 끝났으니까.
그리고 며칠 째 진학할 고등학교를 결정하지 않는 나에게 담임 선생님은 새로 생긴 외고가 있는데 거길 넣어보는 건 어떠냐고도 했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외고 같은 곳은 기숙사비도 필요하고 학비도 많이 비싸다는 것을.
그런 곳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이라는 걸 당연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데 나만 받아들이지 않을 뿐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중퇴로 학업을 마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결정은 해야 했고, 결국 소꿉친구와 학교를 상의해서 같은 학교를 가기로 결정을 했다.
아직 학교를 입학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가기 싫었다.
마음으로는 죽어도 가기 싫다고 하는데 결정은 나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이건 너무나 큰 타격이었다.
과연 나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후에 엄마에게 여쭤보니 담임 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했었다고 한다.
진학 문제 때문에 학교에 한번 방문해달라며.
공장일 때문에 시간 내기가 힘들었던 엄마는 겨우 시간을 빼서 학교를 찾아갔다.
당연히 처음 만난 담임선생은 엄마에게 성적이 간당간당해서 진학시험 잘 못 보면 떨어질 수 있으니까 그러지 말고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고 한다.
엄마는 시험 못 봐서 안 좋은 학교로 갈 수 있다고도 하고, 안될 얘기만 해대고, 대학 진학시킬 상황이 안되기 때문에 인문계 가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단다.
그냥 고등학교 졸업하면 사회생활 시작하는 게 낫지 싶어서.
그렇게 나의 미래가 일단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