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진 Oct 20. 2021

사진은 사진으로만

매일 지옥이었던 고등학교

나는 원래가 어떤 단체나 모임에 소속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건 학교도 예외가 없었는데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업 외 활동을 위한 클럽 활동할 부서를 정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지시가 있었다.

뭐가 좋을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침 집에 있는 카메라가 생각이 나서 사진부로 결정했다.

친구들 말로는 사진부는 일반 클럽활동 부서라 그저 동아리일 뿐 일명 서클과는 관계없는 곳이라고 하기에 덥석 선택을 했다.

이름만 들어도 악명 높은 서클 부서는 아니지 않은가?

흔히 말 많던 RCY 같은 봉사활동 동아리를 빙자한 불량서클 류는 당연히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

여하튼 티끌만큼의 애정도 없는 학교 생활에 적을 두려면 카메라를 통한 세상보기가 좋을 거라 생각했다.

현실의 전부를 볼 필요가 없는 뷰파인더 속 세상을 들여다보다 보면 나의 지끈거리는 머리도 좀 잦아들거라 믿으면서.

17살, 삶에서 가장 예쁠 나이에 겪고 있는 아픔은 살을 파고드는 생채기로 온통 몸부림만 치고 있었으니까 벗어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나의 50원짜리 핫도그와 역사를 함께 한 소꿉친구와 사진부로 결정하고 CA 시간이 되자 처음 해당 동아리 부원들이 모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우리를 제외하고 10명 남짓한 인원이 같은 부서를 선택하여 모였고, 담당 선생님의 소개와 인사 이후에 선배들의 간략한 부서 브리핑 시간이 있었다.

보통의 사진부와 다름없는 주말의 출사 계획과 매년 가을 축제에 하는 전시회 계획까지 동아리 전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2학년 선배라며 2명이 있었고, 3학년 선배라며 몇 명이 소개되었다.

특별활동 수업은 선배들도 같이 하는 건가 의아한 마음이 들 때쯤 첫 수업의 말미에 마침내 진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사진부는 일반적인 특별활동을 위한 부서가 아닌 서클 부서였고, 불량서클까지는 아니지만 선배들의 위계질서를 챙겨야만 하는 귀찮은 곳이라는 사실을.

당장 옮겨야겠다 마음을 먹었으나 이미 모든 결정이 종료된 이후라 변경은 불가하다는 담임 선생님의 절망적인 답변에 나는 마음의 돌덩이만 하나 더 얹은 셈이 되었다.




친구들과 카메라를 들고 출사를 나가는 건 나름 재미가 있었다.

봄이 되면 파스텔 색으로 물든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을 하며 사진을 찍었고, 싱그러운 여름과 짙은 단풍이 주는 스산한 가을을 사진 속으로 담아내며 흥미를 느꼈다.

사진 이론 수업이 어렵기도 했지만 이론을 바탕으로 숨죽여 사진 찍은 결과물이 작품이 되었을 때의 희열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좋은 점이 있으면 항상 나쁜 점은 그림자처럼 들러붙곤 하지.

나는 소위 말하는 선배 봉양 따위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었다.

다 각자 사는 세상에 선배니 후배니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소위 말하는 아메리칸 스타일인 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짙은 사람이기 때문에 위계질서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니, 대체 언제 봤다고?'


그런 마음가짐에 보태진 건 난시가 심한 시력이었다.

90도 인사를 요구하는 선배들의 강압적인 지시에 나는 몇 번 제대로 인사하지 않는 일이 생겼었다.

매도 아니고, 그 먼 거리에서 어떻게 사람을 알아보고 인사하라는 건지.

인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챙겨보는 선배는 또 눈이 엄청 좋은 사람이었는지 그걸 문제 삼아서 정신교육을 시키도록 2학년 선배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쉬는 시간에 굳이 반으로 찾아와서 나를 호출하는 선배에게 불려 가 교실 뒷 구역에서 전방 45도 따위를 시키는 부당한 기합을 받았고, 그 일이 여러 번 지속되자 나 또한 좋은 태도로만 대할 수가 없었다.

보란 듯이 불량한 태도로 기합에 제대로 임하지 않았고 그 일은 선배 전체들에게 미움을 사는 일이 되었다.

나는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누구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

내 마음이 지옥인데 선배라는 사람들의 비위까지 맞춰줄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다.

결국 2학년 선배는 나에게 축제 때까지 작품 못 찍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엄포를 놨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섭지 않았다.

난 끝을 모르는 어두운 터널 속을 걷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귀찮고 하찮은 일 일뿐이었다.


미움을 샀건 인사를 안하건 기합을 받던 작품만 내면 되는 거지라는 반발 심리로 결국 무기명으로 제출한 사진 작품 중 3개의 사진이 내 작품이 되어 축제 전시회에 내걸렸다.

그 결과물을 내놓고 나니 비로소 선배들은 입을 다물었다.

90도 인사에만 목숨을 걸고,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쌤통이다 싶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같잖지도 않은 경험.

다른 불량서클에서 자행되던 체벌 소문들.

나쁜 행동을 대대로 물들이려고 했던 악행의 대물림까지.

돌아보면 학교는 썩은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학교란 곳에 억지로 묶여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나란 인간.

이전 15화 뱀의 머리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