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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 Oct 13. 2021

창밖 그 집과 성당 그리고 기타

중학생

내가 바라는 우리 집은 창밖 그 집에 있었네.


잠깐의 행복은 그저 꿈이었던 걸까.

더 나은 삶을 꿈꾸던 엄마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다시 예전 동네 근처로 숨어들 듯 이사를 갔다.

전세보증금으로 걸었던 돈의 대부분은 잃어서 얼마 되지 않는 금액으로 이사 갈 집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나와 동생은 부모님이 무거운 마음으로 구한 집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됐지만.

없는 돈으로 겨우 구해서 이사 간 곳은 2층 단독주택이었다.

1층에는 주인집이 있었고, 2층인 그곳은 다행히 우리만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집안의 구조는 아주 작은 방 하나와 제법 큰 방 하나, 부엌으로 되어 있었다.

제법 큰 방에 외할머니와 나와 동생이 다시 함께 지내고, 아주 작은 방에는 엄마와 아빠가 지내게 되었다.

작은 방에 딸린 아주 작은 부엌이 씻기도 해야 하는 공간이어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파트에 잠시 살면서 그렇게 좋을 수 없었던 화장실이 밖으로 쫓겨나다 못해 이번엔 1층까지 가야만 했다.

오죽하면 외할머니를 위해 요강까지 다시 소환했을까.

예전 주택이라 어쩔 수 없이 불편한 구조였지만 다행히 2층 마당이라고 해야 할까 그 공간이 아주 커서 달을 보기엔 좋았다.

커다란 평상을 하나 둬서 아주 볕이 좋고 따뜻한 봄이나 산들산들한 바람이 불던 가을이 되면 우리 가족은 평상 위에서 가끔 과일이나 간식을 먹기도 했다. 아주 드물었지만.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좋아했던 것이 있다.

우리 방 창문에서 바라보면 멀리 떨어진 곳에 멋들어진 집이 한 채 있었다.

커다란 통창으로 따뜻한 주광색 불빛이 쏟아지고 있는 그 집은 정원이 있었고, 고급스러운 외관처럼 아주 멋진 집이었다.

그 집의 가족들이 거실에서 오가는 모습은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는 한 폭의 따뜻한 그림으로 각인이 되어 있다.

달빛이 비치는 밤에 그 집을 보면서 마음으로 부럽다고 수도 없이 말했던 것 같다.

비단 멋진 외관만 보고 부럽다고 한 건 아니었다.

따뜻한 불빛에 비친 그 집 가족들의 평온함이 너무나 좋았기에 지금도 마음 한편에 로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창 밖 풍경에서 눈을 돌려 우리 집으로 향하면 차갑게 깔린 어둠과 불안함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우리 집 분위기도 그렇지만 나는 나대로 마음이 아팠는데, 아팠다는 것을 지금 돌이켜보고서야 느낀다.

나름대로 유지하던 성적은 집의 흔들림과 함께 흔들렸고, 한참 학원과 과외로 학교 공부를 보충하던 친구들과는 다르게 집에서조차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형편이다 보니 마음처럼 만족할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공부도 쉽지 않고, 집은 어수선하고, 사춘기가 온대다 마음도 둘 곳이 없었다.

그때 내가 시간을 버틴 건 기타와 성당이었다.


나는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듣는 것은 말할 것 없었고, 악기를 얻게 되면 터득할 때까지 혼자 독학을 하는 타입이었다.

물론 복잡하고 어려운 악기는 다룬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간단한 악기는 무조건 될 때까지 쉬지 않고 연습하는 편이었다.

그런 와중에 동네에 누가 버린 기타를 우연히 줍게 되었는데 그게 내 친구가 되었다.

그땐 지금처럼 소음 문제에 대해 심하게 예민하지 않았던 터라 자주 기타를 연습했다.

그리고 단독주택인 덕분에 그러기도 했고.

기타 운지법 책을 서점에서 하나 구하고, 연한 노란색의 악보집을 몇 개 사들고 와서 작은 마루 끝 내 책상에 앉아 뚱땅뚱땅 연습했다.

막 인기를 얻었던 노래들로 구매한 악보집은 박상민의 멀어져 간 사람아, 부활의 사랑할수록, 김현철의 달의 몰락 같은 음악들이었다.


내게 사랑한다는 말하고, 멀어져 간 사람아.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는 그대여.
한참 동안을 찾아가지 않은 저 언덕 너머 거리엔 오래전 그 모습 그대로 넌 서있을 것 같아.


겨우 중학생밖에 안 되는, 이제 막 어린이를 지난 꼬꼬마일 뿐이었지만 저 때 연습했던 저 곡들은 지금도 가슴에 슬프게 박혀있다.

그리고 내가 기타 연습을 즐겁게 한 이유는 또 있었는데 성당에 다녔기 때문이다.

남녀공학이었던 우리 학교에서 우연하게 성당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누가 소개해준 것도 아니고, 알려준 적도 없었지만 내 발로 성당을 찾아가서 수녀님께 다니겠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찾아갔던 시기가 아직 아파트에 살고 있었을 때였는데 집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쉽게 갈 수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사는 것이 어두워지니 마음 둘 곳을 찾아 더 열심히 성당을 다녔다.

또래들과 어울리기도 하는 것이 즐겁기도 했고, 성가를 부르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제일 좋았다.

성가 연습을 위해 청년 미사팀 오빠, 언니들, 친구들과 기타 합을 맞추고 노래 연습을 했던 것도 좋았다.

여름이면 캠프를 갔는데 엉덩이 아래밖에 안되지만 물에 빠져 큰일 날 뻔했던 기억조차 나쁜 기억이 아닐 정도로 모든 것이 좋았다.

대표로 마이크 잡고 성가를 불렀고, 노래 잘한다는 칭찬을 듣기도 해서 그런 칭찬이 쌓여 학교에서 합창단에 뽑히기도 했다.

그런 좋은 기억들 덕분에 나는 잘 버틸 수 있었고, 학교 생활도 그럭저럭 잘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바닥으로 가라앉더라도 그렇게 잘 적응해갔다.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그 집에서도 조금씩 잘 이어갔다.

계절이 바뀌어 찬바람이 불 즈음, 이상한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날 아침.

엄마께서 잠시 나갔다 오시더니 별 일이 다 있다며 말씀을 하셨다.


"아니,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누가 물을 잔뜩 뿌려놔서 밤새 꽝꽝 얼었드라. 모르고 내려가다 큰일 날 뻔했다. 느그들은 함부로 내려가지 마라. 엄마가 연탄재 좀 뿌려야겠다. 엄마도 집에서 나가지 마요. 넘어지면 진짜 큰일 난다."


우리 집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모조리 얼음이 얼었다니...

비가 온 것도 아니고, 눈이 귀한 부산이라 눈은 더더욱 올 일이 없는데...

이상하다 싶었다.

그리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지, 나의 귀가 시간이 늦어져서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쯤 마을 어귀에 들어섰던 것 같다.

옅은 가로등 불빛만 비추는 골목길 중간에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어두컴컴한 골목길로 막 발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대문 앞에 시커먼 그림자가 보였고, 날 노려보는 희번득한 눈만 보였다.

너무 놀라 쳐다보니 어떤 아주머니였고, 대문 앞에서 계속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그러고 있거나 말거나 나는 일단 집으로 들어가야 했기에 대문을 열고 얼른 올라갔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엄마를 부르지 그랬냐며 말씀하셨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나 지나서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또 다른 일로 우리 가족이 불안해진 일이 생겼고, 그 문제의 아주머니가 아랫집 주인아주머니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그 일을 묻기 위해 아랫집에 찾아갔다가 주인아주머니가 찬바람 부는 계절이면 정신이 조금 아파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걸 알고 있으면 가만히 있을게 아니라 치료하시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가 되려 싸움만 날 뻔했다며 집으로 오셨었다.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어쩐지... 이상하게 보증금이며 월세며 싸다고 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니까 아무도 세를 안 들어오려고 했네. 우리만 몰라서 여길 이사 왔고. 여기서도 오래 못살겠다. 이사 갈 준비를 해야지."

아직 나와 동생이 어렸고, 연로한 외할머니가 계셨으니 그 집에서 더 사는 건 불안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이사를 준비하게 되었고, 뒷 동네에 들어서고 있던 한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그 아파트로...



(에필로그)

저는 요즘에도 힘든 순간이 생길 때면 아주 가끔 염치없이 성당을 찾아가곤 합니다.

세례까지 받았지만 솔직히 지금도 신앙심 같은 건 자라지 않았어요.

다만 저를 내려놓고 마음을 다독이고, 반성하고,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이 좋아서 가끔 갑니다.

그리고 저의 힘듦을 잘 이겨낼 수 있게 해 달라며 뻔뻔하게 기도를 합니다.

마음이 요동칠 땐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기도 하구요.

이기적이지만 살겠다고 그런 치사스러운 짓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불성실한 신자는 신자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한들 어쩌겠습니까...

또 마음을 기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니까 신께서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치유받은 마음으로 계속 글을 쓰고 살아가고 싶으니 용서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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