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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 Nov 25. 2021

파국 II

엄마의 시간 속으로

날카롭게 깨지지 않은 병 덕분에 하마터면 뉴스 사회면을 장식할 뻔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올라 참을 수 없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공장 사정으로 일을 못하다 보니 집에는 먹을 것조차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쌀조차 바닥을 보이고 있어서 내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이런 걱정을 왜 나만 하는 건데 싶어 당장 전화했다.


"니 대체 어디고? 쌀 한 톨도 없으니까 당장 쌀 팔아온나. 애들 굶길 거가?"


그 난리를 하고 대체 어디서 몇 날 며칠을 지낸 건지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쌀팔아오라는 소리는 무시하지 않더라.

쥐새끼마냥 집에 쌀만 조용히 갖다 놓고는 곧장 도망가버렸다.

냉전의 시작이었다.

그냥 갈 곳이 없어서 이 집에 찾아오는 것일 뿐, 이미 부부의 연은 끊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애들도 이미 알만큼은 다 알고 있었다.

눈치가 뻔했으니까.

7평 집에서 비밀이 있으려야 있을 수가 있나.

모두 각자 할 일을 하기 바빴다.

나 개인으로도, 우리 가족도 소용돌이의 맨 밑바닥까지 내려가 올라갈 수 없었는데 나라 전체도 휘청거렸다.

IMF.

저게 뭔지는 몰라도 나라가 부도났다는 건 알았다.

그래서 공장도 사정이 나빠졌던 건가 싶었다.

더 큰일인 것은 나빠진 사정으로 잠시 휴업을 택한 것이 아주 그만두게 생겼다는 것이 큰 걱정이다.

절벽 끝에 매달린 기분이다.

내가 일을 할 수 없으니 애들을 책임질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보기 싫든 좋든 남편을 닦달해서라도 상황을 이겨내야 했다.

그렇게 겨우 겨우 몇 년을 버텼다.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 둘째가 대학 입시를 준비 중이다.

가진 재주가 그림이다 보니 미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마음으로 응원만 하고 있는데 첫째가 대학을 졸업하고 공장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둘째 학원비를 지원해주고 있나 보다.

겨우 3개월을 목표로 최선을 다해 준비 중인 애한테 남편은 학원비 지원은 못해 줄 망정 뱉지 않아야 할 말을 한 것이다.

내가 외출한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


"미술 해서 뭐할라고?"


"언니가 공장에서 일해서 학원비 대주고 있는데 왜요? 학원 다녀서 대학 갈 거예요!"


"대학은 왜 가는데?"


분노에 찬 둘째의 천금 같은 미술도구는 방에 던져진 채 어지러이 널브러졌다.


"아빠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데요? 아빠가 도박만 안 했어도 이 지경은 안됐을 거 아니에요?"


일 알아보려고 밖에 나갔다 오니 복도에서부터 큰 소리가 들려온다.
애들과 남편이 한바탕 싸우고 있다.
무슨 사달이 났구나 싶어 문을 벌컥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눈을 부라리며 때릴 자세로 다가오는 남편이 말한다.


"니가 말했드나?"


애가 도박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자 죽일 기세로 다가온다.


"니가 애들한테 도박 얘기했나? 어? 미쳤나? 애들한테 무슨 말을 한거고?"


둘째가 내 앞을 막아선다.


"엄마 때릴 거면 나부터 때리세요!"


한 번도 대들지도 않고, 살뜰하게 아빠를 챙겼던 둘째는 그렇게 내 앞을 막아섰다.

늘 다정했던 막내의 분노에 그제야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야말로 온 집안이 살얼음판이다.




돌아가신 엄마가 꿈에 나왔다.

내가 늘 누워 자는 자리에 엄마가 눕는 꿈.

조용히 내 잠자리에 엄마가 대신해서 누워 주무시는 꿈을 꿨다.

마음이 이상했다.

그리고 이상한 예감은 적중했다.


이혼하자.


지옥 같던 그날을 겪었어도 다시 이 악물고 참았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운 돛단배 위에 앉아있는 신세라도 버텨야했다.

개인택시는 받자마자 매매할 수 없기 때문에 몇 년의 인고의 시간을 숨죽이고 기다렸다.

재산이라고는 달랑 개인택시 하나.

하지만 그만큼의 빚이 쌓여갔기 때문에 처분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그 기간 동안이라도 남편이 열심히 일해서 자기가 만든 빚을 다 갚았으면 개인택시를 지킬 수 있었겠지.

그러나 천성이 어딜 가나.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빚은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일수로 생활을 이어가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질 못하니 결국 본인에게도 영광과 같았던 개인택시를 팔아넘겼다.

그리고는 며칠을 또다시 밖을 돌더니 집에 와서는 나에게 던진 말이 이혼하자였다.

내가 말해도 시원찮을 말을 본인이 알아서 내뱉네?

옳다구나, 올 게 왔다 싶어 당장 말했다.


"그래? 이혼하자."


그렇게 20년이 넘게 참아온 나의 결혼생활은 결국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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