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주인공의 사랑일기
폴 토머스 앤더슨(이하 PTA) 감독의 <펀치 드렁크 러브>는 내가 사랑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영화다. PTA교 신자를 자처하지만(영화계에 한정하자면 내가 믿는 종교는 많다. PTA교, 코엔교, 쿠로사와교 등등...) <매그놀리아>, <마스터> 같이 꽤나 난해하고 초현실주의적 연출을 선호하지 않음에도, <펀치 드렁크 러브>는 정석적 연출과 PTA만의 특징이 절묘하게 섞인 명작이다.
그리고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아니, 사랑하는 이유는 연출적 특징 때문만이 아니다. 주인공 ‘배리 이건’이라는 캐릭터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PTA를 비롯한 위대한 작가들이 만든 작품에는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등장인물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탁월하게 녹아들어 있지만 주인공 ’배리‘는 장치를 넘어서 마치 거울을 보는 듯이 느껴졌다. 관객이 주인공에게 몰입할 수밖에 없는 영화는 그만큼 사랑스러울 수밖에. 게다가 ’펀치 드렁크‘ 상태에 처한 상태로 늘 소극적이던 주인공이 자신의 마음을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는 서사까지 완벽하다!
주인공 ‘배리’는 사회적으로는 작은 사업체의 사장이지만, 개인사에 대해서는 늘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른 사람들, 특히 누이들이 묻는 말에 대해 계속해서 얼버무린다. 여주인공 레나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도 영화 중반까지 애써 아닌 척을 계속한다.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가 나오면서 홀로 'bye bye'를 되뇌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마치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을 다짐하듯이.
배리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자신을 압박하는 누이들의 행동이 싫지만 단호하게 싫다고 얘기할 수가 없다. 일하는 도중 끊임없이 걸려오는 누이들의 전화를 피하려다가도 끝끝내 받는 모습은, 자신을 압박하는 누이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음에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칠 수 없을 때, 동물은 생존본능이 발동하면서 공격적으로 변한다. 가족 모임에서 누이들에게 ‘게이꼬마’라는 조롱 아닌 조롱을 들은 끝에 배리가 끝내 유리창을 부숴버리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다.
배리 스스로 정신과에 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정신과 상담보다는 폰섹스 업체에 전화하는 것을 택한다. 여기서도 배리의 도망치려는 성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배리는 정신과에 내원하는 자신의 모습 그 자체와, 그곳에서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 두 가지 모두를 부정하고 피하려 한 것이다. 배리는 폰섹스 업체를 상대로도 개인정보가 보호되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는데, 의사나 상담가와 마주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은 싫지만 누군가는 들어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리가 개인정보보호에 집착한 것에 대해 업체는 배리가 부정한 일을 저질러 놓고 그것을 가까운 누군가에게 숨기려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실체는 자신의 진짜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배리의 유아틱한 모습이라는 점이 소소한 웃음 포인트다.
이렇듯 영화 중반부까지 배리는 자신의 진짜 감정을 남에게 드러낼만한 상황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친다. 그것은 오랫동안 쌓여온 가족관계에서의 감정적 억압, ‘펀치 드렁크’ 때문이다. 배리는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기고, 도망치는 게 익숙하다. 배리는 사회적으로는 그것이 드러날 일이 잘 없지만 내면의 감정이 드러날만한 상황이 찾아오면 일단 피하고, 피할 수 없으면 유리창을 깨거나 식당 화장실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등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배리는 감정을 드러내고 이해받고 싶다는 아주 기초적 욕망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현해야 할 것인지 모르는 미성숙한 주인공이다.
깡패는 배리에게 ‘너의 집 주소를 안다’고 말한다. 그래서 배리는 자신을 협박하는 깡패들로부터 도망쳐도 소용이 없다.
배리가 전화했던 폰섹스 업체는 사기업체다. 다음날 아침 폰섹스 상대, ‘조지아’로부터 연락이 와서 돈을 뜯어내려고 한다. 배리가 거부의사를 내비치자 조지아는 있지도 않은 배리의 여자친구에게 폰섹스한 사실을 알린다고 협박까지 한다. 사실 경찰에 신고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배리는 늘 그래왔듯이 숨기고 도망치려고 한다. 멀쩡하게 잘 있는 정신과를 가지 않고 대체재로 폰섹스를 택했다는 사실이 몹시 부끄러웠을 테고, 협박까지 당하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못하며 쩔쩔매는 자신에게 ‘게이꼬마’라고 조롱하는 누이들의 힐난이 귓전에 어른거렸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기업체는 깡패들을 고용해 배리에게 5백불을 뜯어낸 뒤, 더 뜯어내려는 수작을 부린다. 이렇듯 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시련‘이 찾아온다. 배리는 이미 돈을 뜯겨놓고서 밤거리를 질주하며 도망치지만 도망칠 곳은 없다. 깡패들은 차를 타고 달리는 배리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이 과정에서 여주인공 ‘레나’가 끼어든다. 레나는 배리의 사업장 옆에 위치한 자동차 수리소에 차를 맡기러 왔다가 그를 만나게 되었는데, 배리는 첫눈에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그것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레나가 저녁 약속을 먼저 제안한 뒤에야 응할 정도이다. 배리는 레나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라디오 채널과 항공사 마일리지를 쌓기 위해 한 트럭 사다 놓은 푸딩에 대해 얘기하다가 화장실에 들어가 별안간 박살을 내놓는다. 자신의 진심이 레나에게 드러났고, 이미 내뱉어진 자신의 감정 섞인 말에 대해 주워 담을 수 없어 ‘감정을 드러내는 상황’으로부터 더 이상 도망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배리는 익숙치 않은 상황에 대한 자신의 대처를 돌이켜보다가 레나로부터 자신의 과거를 상기시키는 말을 듣게 되자 두려움에 사로잡히며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레나라는 여자를 믿을 수 있을까?’, ‘내가 진심을 드러낸다면, 누이들처럼 나를 조롱하지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레나는 배리를 조롱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그의 말에 공감하고 웃어주거나, 그저 들어줄 뿐이다. 레나의 그런 태도 덕분에 배리는 조금씩 변해간다. 하와이로 여행 간다는 레나의 말에 겉으로는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너무나도 따라가고 싶어 한다. 배리는 ‘레나를 사랑한다’는 자신의 진심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도망치지 않기로 결심한다. 영화의 첫 시퀀스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듯, 배리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사랑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배리는 레나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달린다.
이번에는 도망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진짜 감정을 향한 뜻깊은 달리기다.
배리는 하와이행 티켓을 위한 마일리지를 쌓기 위해 푸딩을 더더욱 사모은다. 하지만 이벤트 주관 업체는 마일리지 지급은 시간이 걸린다며 바로 줄 수 없다고 답한다. 배리는 당장 하와이로 떠나고 싶어 했기 때문에 더 이상 푸딩에 연연하지 않고 하와이행 티켓을 끊는다. 그리고 레나에게 연락해 그녀와 만나 포옹한다.
이 장면에서 나는 거의 울 뻔했다. 이 숏은 단순히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넘어 배리가 늘 도망치던 스스로를 극복한 장면이다. ‘피하지 않고 마주 보면서,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라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구름처럼 흩어져버렸던 나라는 어느 관객의 신념이 영화 속 한 장면이 되어 관철되는 순간이었다. 닥쳐온 문제를 피하기만 하면 막다른 곳에 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맞서면, 비로소 전진할 수 있다.
배리가 늘 도망치는 성향을 보인다고 말했지만, 영화 초반부부터 그는 나름대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극 중에서는 내내 그 차림이지만) 난데없이 파란색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하거나, 치과의사 매부에게 정신상담(?)을 받으려고 한다. 그의 회피 습관은 오래된 것이라 쉽사리 고쳐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무엇이 문제인지는 스스로 인식하고 고치려는 태도는 갖추어둔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준비를 해두었기에, 버려진 오르간을 주울 수 있었고, 레나와의 사랑도 이룰 수 있었으며, 자신을 협박하는 사기 폰섹스 업체 사장을 찾아가 그만 협박하라고 직접 따질 수 있었다. 피하지 않으려는 아주아주 작은 노력이 피하지 않고 맞서는 것만큼 중요한 셈이다.
영화를 가능하면 세 번 이상 보려고 하지 않지만, <펀치 드렁크 러브>는 몇 번이고 다시 본다. 중학생 시절 처음 이 영화에 빠져든 뒤 11년 조금 넘게 지난 지금까지 최소 6개월에 한 번씩은 본 것 같다. 러닝타임이 짧아서 생각보다 부담이 없는 덕이기도 하고, 배리의 ‘펀치 드렁크’로부터 벗어나는 이야기가 내가 지금 유지하고 싶은 삶의 태도를 응원해 주고 보듬어주며, 희망까지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정말 많이 감상한 덕분에 참치 해체쇼를 하듯이 프레임이나 숏 단위로 분석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이 영화는 어쩐지 감성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다. 분석을 한다면 <펀치 드렁크 러브>를 좋은 영화다!라고 규정지으며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는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좋은 영화’라는 두루뭉술한 언어 속에서 남겨두길 원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피할 수 없는 사건들은 부정적인 감정으로든, 긍정적인 감정으로든 우리를 인도한다. 물론 대부분은 고통스러운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를 인도해 준 그 사건과 감정을 온전히 품은 채,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맞이하는 것이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기에, 나는 이렇게 브런치에서 얻게 된 글을 쓸 기회를 피하지 않고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용기를 불어넣어 준 <펀치 드렁크 러브>, 주인공 배리, 이 영화를 만든 PTA, 그리고 이 글을 읽을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