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약을 먹어도 몸에 밴 습관은 여전히
닷새 전 손을 다쳤다.
조울증 약을 먹고 있는 덕분에 좋아진 편이긴 하지만 조증 삽화가 찾아올 때면 여전히 기분이 들뜬다.
이렇게 되면 별 것 아닌 일에도 신남과 분노 사이 어딘가에 놓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그렇게 아무런 제어 없이 움직이다가 딱딱한 책꽂이에 손을 세게 부딪혔다. 손등이 까지고, 약지와 새끼손가락, 그리고 손바닥 일부가 조그맣게 멍들었다.
조증은 빠르게 가라앉았지만 손에 남은 상처는 그대로였다. 멍든 부분은 바르는 소염진통제로 해결하면 됐지만 까진 부분은 너무 쓰라렸다.
그렇게 며칠 동안 아침에 이불을 갤 때면 이불이 손등에 스쳤고, 따가움이 밀려오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빨간약을 발랐다. 문제는 빨간약이 이불에 묻으면 흉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손등이 쓰라린 것을 조금 참고 이불을 갠다음 빨간약을 발라야 하는데, 나는 이불을 개다가 아프니까 빨간약을 바르고 이불에 묻으면 안 되니까 다시 물로 씻은 다음, 이불을 다 개고 나서 다시 빨간약을 발랐다.
사실 ADHD 약을 먹기 전에는 거의 모든 일을 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처리하긴 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려면 필통이 필요한데, 필통을 잊고 집에다 두고 왔다. 필통을 가지러 집에 가면 어질러진 방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방을 정리하고 씻은 뒤 집을 나선다. 도서관에 다 와갈 때쯤 집에 두고 온 필통이 다시 생각난다...는 식이다.
아무튼 약을 복용한 뒤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줄었지만 며칠 동안 이불을 개는 것과 빨간약을 바르는 일을 교차해서 수행하는 것을 보니 희미하게 남은 ADHD적 습관은 여전히 몸에 남아있는 듯했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보면 내가 봐도 웃긴 슬랩스틱 코미디쇼가 따로 없다. 애니메이션 <패트와 매트>가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이런 귀여운 수준의 코미디는 나 스스로는 용납해 줄 만 하지만(?) 다른 일에서 그 습관이 무심코 튀어나올지도 모르니 의식해서 고쳐야 할 것 같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서도 새는 법이라고 했나. 잘못된 행동 하나를 조금이라도 용인한다면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 무심코 그런 행동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아쉽지만 쇼는 종영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