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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 Sep 21. 2023

도망치듯 포기한 모유수유

내 특징은 한번의 행동에 거창한 의미를 둔다는 것이다



(계속) 내 특징은 한번의 행동에 거창한 의미를 둔다는 것이다.


이번 한번 예외를 둔다는 것이 앞으로도 모든 계획에 있어 예외를 허용하는 핑계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쉽게 계획을 깨지 못한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내가 쭉 못할 것 같은 계획은 애초에 세우질 않는다.


조리원에서는 모유수유가 어렵지 않았다. 당연했다! 여차하면 간호사님이 각도를 잡아 주시고, 먹다 잠들면 데려가서 분유로 보충해주시고, 하루종일 ‘몸조리’에만 힘쓰다가(=쉬다가) 낮에만 몇번 전화 주실 때 가서 엄마놀이를 하면 되니까! 심지어 조리원에서는 밤에는 수유콜을 안 준다!


그런데 퇴소하고 난 후, 모유를 먹여보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틀도 못가 포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좀더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항상 내 결정의 중점은 이 질문이었다.


‘내가 이걸 쭉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질문에라면 내 대답은 무조건 ‘놉’이었다.


왜냐하면…….


일단 신생아라 먹는 양이 너무 적기 때문에 거의 한시간마다 먹여야 했다. 물론 퇴소할 때 조리원에서 써준 신생아 인수인계서(?)에는 ‘1회에 60~80ml씩 2~3시간 간격으로 먹었습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요령 좋은 간호사님들이 줄 때의 얘기였다.


나는 당장 배고프다고 울어제끼는 아기를 두고 얼른 소파에 앉아서(울기 전에 미리 준비하면 되지 않겠냐고도 하겠지만 1시간마다 먹이기 위해 내가 24시간 내내 앉아 있을 수는 없잖은가), 수유쿠션을 얼른 내 허리에 둘러 올리고, 발판을 내 발밑에 갖다놓고 발을 올리고, 아기를 들어서(여기서 이미 귀는 마비되어 있다), 수유쿠션 위로 눕혀야 한다.


다 된 것 같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기의 입이 내 가슴쪽으로 닿도록 옆으로 눕히고 자세를 맞춰야 하는데(여기서 이미 아기는 모유 냄새는 맡았으나 당장 입으로 들어오지 않아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마음처럼 쏙 물 수 있는 자세가 잘 안 된다.


위치와 높이와 각도, 3차원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변수가 문제가 된다. 나는 얼추 된 것 같은데 제가 물고 싶은 각도가 또 있다. 어떤 날은 한번에 되는데 어떤 날은 아무리 고쳐 안아도 안 되고 울기만 한다. 물었다가 잘 안 물어지면 입을 홱 빼버린다. 다시 울기 시작한다.


한참을 자세를 맞추느라 씨름을 하고 나서, 드디어 아기가 딱 먹기 좋게 자세가 됐다? 그럼 내 허리와 목이 S자와 C자 사이의 이상한 모양으로 굽어있다. 1분은 참을 수 있는데 그 다음부터는 꼬리뼈쪽부터 신경이 찌릿찌릿 울린다. 하지만 자세를 바꿀 순 없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각도 씨름을 또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데 더 미치겠는 건, 이 과정에서 이미 지쳐버린 아기가 얼마 안 먹고 잠에 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조리원의 간호사님들은 ‘깨워서 먹여야 해요’라고 하셨지만 초보 엄마에게는 깨우는것조차 일이었다. 기저귀를 갈아주라는데 기저귀 갈아주는 동안 깼던 아이는 다시 속싸개를 싸는 동안 잠들어 있다. 아직 세상의 자극에 둔한 아기는 아무리 시끄럽게 소리를 내 봐도 안 일어난다.


조금 먹었으니 또 1시간이면 깨서 밥 달라고 운다. 먹이는 게 15분인데, 트림 시키는 게 또 10분인데, 사실상 40분이 채 안되는 간격이다.


기분은 순식간에 사람을 덮치는 것이라, 한번 그 씨름을 하고 나면 머리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고 넋이 나가버린다. 폐가 다 떨려온다. 울고 싶어서.


그러고 있으니 작은 일에도 짜증이 치솟았다. 초보 엄마와 초보 아빠는 아기가 울면 왜 우는지를 모르니 쩔쩔매는데, 그때 서로 하는 말이 다르다. 남편은 ‘배고픈 거 아니야?’라고 하고, 나는 최대한 ‘배 고픈 건 아닐 거야’라고 하고 본다. 결국 모유를 줘야 하는 것은 나니까!


남편은 가정적인 사람이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남편과 결혼한 거지만, 남편은 언제나 내가 우선이고 임신과 출산과 육아 내내 나를 서운하게 한 적이 한번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배고픈 거 아니야?’라고 하면 순간적으로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고 말았다. 내가 정말 어디 이상한 건가 싶을 정도로.


이 육아를 지속가능할까, 생각해보았다.


물론 하다보면 적응이 된다지만 그 적응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건 정말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한 자세로 꼼짝없이 있어야 한다는 몸의 아픔, 그리고 유축을 해서 주더라도 결국은 아기의 끼니를 책임지는 건 무조건 나뿐이라는 압박감과 신경질……. 그걸 몇 개월이라도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짓눌리는 것처럼 막막했다. 앞으로 육아 스트레스의 80%가 모유수유에서 오는 것일 것 같았다.


새삼 주위의 ‘완모’ 했다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주변에는 1년을 했다는 친구도 있고, 6개월 목표했다가 너무 힘들어서 3개월 만에 포기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첫째는 ‘완모’했는데 허약해서 둘째는 ‘완분’했다는 선배도 있었고, 어떤이는 ‘완모’했더니 아기가 너무 엄마를 좋아하고 건강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중 어디에도 ‘첫째부터 일주일 만에 포기’했다는 이는 없었다.


그래서 괴로웠다.


하지만 또 같은 질문으로 돌아왔다. 이걸 내가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당장 내일은 하겠지만 내일 모레도, 그 모레도 해야 한다면 나는 정말 우울증이라도 걸려버릴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산후 도우미님이 그나마 계시던 일주일만 모유수유를 하고, 도망치듯 포기해버렸다.


지금도 그 결정에 후회는 없고, 그 과감한 결정(=빠른 포기)이 우울함 없이 나를 살렸다고 생각한다.


모유수유와 분유수유주의자가 가끔 인터넷 댓글에서 싸우는 모습을 본다. 어느 한쪽을 폄하하는 것은 안 좋지만, 모유수유의 희생은 정말 인정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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