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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 Sep 24. 2023

J형 아내와 P형 남편의 육아

MBTI 얘기 질리는 건 안다



MBTI 얘기 질리는 건 안다. 나도 질린다고 생각했다.


모든 답을 MBTI에서 찾으려는, 또는 ‘그냥 이상한 성격’을 MBTI로 포장하며 위안을 받는 사람은 너무 별로니까.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다른 사람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나도 내가 ‘J의 육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친구가 말해줘서 깨달았다.


“애기가 언제 울지 몰라서 너무 조마조마해. 일상이.”


어느날 내가 육아 고충을 토로했을 때, 친구가 말했다.


“그것 때문에 J들은 진짜 힘들 것 같아.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힘들어하니까.


“오, 맞아. 그래서 힘든 거였구나. 남편은 별 동요 없이 달래거든.”


그제야 나는 아기가 울 때 나와 남편의 반응이 다른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조금의 위안도 되었다. 나는 내가 ‘그냥 이상한 엄마’인 건 아닐까, 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 참이었으니까.


내가 그렇게 별로라고 생각했던 ‘MBTI로 포장하며 위안을 받는 사람’이라고 해도 할말은 없다. 어려운 육아생활에 MBTI의 존재가 상당한 위안을 준 건 사실이니까.


나는 ESFJ, 남편은 ISFP다. 두 글자가 같고 두 글자가 다르다. 그중 외향과 내향을 구분짓는 E와 I는 그렇다치고, 마지막 글자인 J와 P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J는 소위 판형, P는 인식형이라고 알려져 있다. 상황을 ‘내가 판단’하려고 하는 J와 ‘상황을 인식 후 반응’하려는 P.


J는 체계적인 계획에 맞춰서 일을 진행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P는 벌어지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일을 진행한다. J는 기존 계획에서 어긋나는 상황을 어려워 하고, P는 모든 계획이 빡빡하게 짜여진 상황을 불편해 한다.


확실히 나와 남편은 다르다.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1. 처음 가보는 콘서트장을 갈 때.

나는 지하철 출구 번호와 거기서 어디로 걸어나가야 하는지를 로드뷰로 미리 확인한다. 남편은 일단 나와서 사람들이 많이 향하는 쪽으로 따라간다.


2. 바닥에 종이 한 장이 떨어져 있을 때.

나는 그걸 잘못 밟으면 다칠까봐 얼른 치운다. 남편은 그냥 조심한다. 그걸 누가 다치냐고 한다. 그말이 맞긴 맞다. 자주 걸어다니는 길목도 아니고 그걸 밟아서 다칠 확률이란 거의 없다. 그래도 나는 ‘혹시 다칠 가능성’을  견딘다.


3. 뭔가 계획을 세울 때.

난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계획은 아예 안 세운다. 만약 오늘 피곤해서 10시에 졸릴 것 같다면 10시까지만 계획을 세운다. 못 지키면 심란하니까. 그런데 남편은 일단 12시까지 계획을 세우고 본다. 10시에 자는 한이 있어도(?)


심지어 이걸 이렇게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나와, 내 글을 읽고 ‘내가 이래?’라고 말하는 그. 우리는 이렇게 성향이 다르다.


그대로 우리집 거실 풍경으로 가지고 들어가보자.


아기가 운다. 그럼 나는 생각부터 한다. ‘아니, 기저귀도 갈아줬고, 분유도 잘 먹였고, 잠도 잘 자놓고 도대체 왜 우는 거야…….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우는 건가……. 잠이 모자란가? 밤에 안 자도 어떻게든 더 재워야 하나……?’


남편은 행동부터 한다. 곧바로 일어나 안아주고 달래준다.


그렇게 나는 앉아있고 남편은 일어나 아기를 달래고 있는 상황이 되면 나는 조금 민망해진다. 바로 안아주지 않은 게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미안해지기도 하고. 확실히 좋은 엄마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괜히 말한다.


“아…… 얘 진짜 어떡하냐…….(잔뜩 )”


“왜?(ㅇ_ㅇ)”


하지만 남편은 언제나 이런 반응이다. 항상 맹물 같은 반응으로 내 진한 심란함을 묽게 만들어버린다.


“아니, 잘 자더니 왜 또 이래…….


“자기 밸런스가 깨졌나보지~”


아기가 울면 향후 3년쯤을 걱정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항상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이런 일은 자주 있다.


“아…… 얘 이번에 분유를 200ml나 먹었어. 어떡하지?”


내 뜻은 ‘평소에 우리는 항상 160ml씩만 타 줬는데 지금은 200ml나 먹었으니, 우리가 그동안 너무 적게 준 걸까? 분유량을 늘려야 되나? 라는 건데, 남편은 다시 이렇게 반응한다.


“왜?(ㅇ_ㅇ) 그냥 오늘 배가 고팠나보지~”


한결 같은 남편의 반응은 육아에 자꾸만 곤두서게 되는 내 긴장을 한번에 허물어버린다. 마음이 훨씬 편해진다.


육아 안하고 자꾸 잠을 자는데 애도 같이 재우니 딱히 할말은 없다

P의 동지가 없으면 J는 어떻게 육아를 할까 싶다.


자꾸만 한번의 문제를 크게 받아들이는 나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이 육아가 너무나 어렵고 무섭다.


“얘 또 울면 어떡하지……? (1분 1초가 무서움)”


“왜?달래주면 되지~”


이렇게 또 우리집 육아는 무사히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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