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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 Sep 20. 2023

이게 무슨 모유라떼람

내게는 많은 육아 선배들이 있다



(계속) 내게는 많은 육아 선배들이 있다. 친구들도 하나둘 아기를 낳아 키우기 시작했기도 하고 회사에도 많았다. 육아 선배들이 한 얘기는 거의 다 같았는데, 그중 가장 공통적인 건 아래 두 가지였다.


1. 출산의 고통은 잠깐이다

2. 산후조리원은 천국이다


조리원 천국. 그중에서도 마사지가 제일 좋다는 건 거의 정설이었다. 그때가 아니면 언제 비싼 마사지를 매일매일 받아보겠냐며. 나름 기대가 컸다. 좋다는 말만 들었으니까.


그래서 전혀 두려움 없이 훌훌거리며 갔다가 혈관을 얇게 쥐고 꼬집는 아픔에 기겁을 했다. 조리원에서 제일 처음에 받는 마사지는 전신 마사지가 아니라 가슴 마사지였다. 일명 ‘모유 길 뚫는 마사지’라나.


어쩐지. 시작 전부터 자꾸만 ‘내가 기가 막히게 잘 뚫으니까, 여, 걱정 말고 앉아예.’라고 하시더니……. 그런 뜻인 줄 꿈에도 몰랐다.


처음엔 이게 마사지구나, 마사지가 원래 양면이 있는 건가, 하며 참았다. 하지만 점점 잡고 꼬집는 부위가 얇아졌다. 고통이 점점 뾰족하게 다가왔다. 가슴은 그냥 주물러도 아픈데 핀셋으로 집어 으깨는 것 같으니 더는 참기 힘들었다.


“아…… 너무 아파요. 그만요. 그만…….”


그러자 마사지사님과 내 옆에서 마사지를 받던 둘째를 낳았다던 산모가 동시에 그러는 거다.


“옛날엔 다 울면서 짰는데.”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왔다. 이게 무슨 ‘모유라떼’람……? 울면서 왜 짜야 하죠……?


순식간에 나는 모유 회의론자로 다시 돌아섰다. 정확히 내가 상상했던 순간이었다. 일단 해보고 힘들면 굳이 고수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나는 내 몸도 중요하기에, 나는 일하는 커리어 우먼이기에, 지속 가능한 육아만 하겠다고 다짐했었던 그런 순간!


그런 거대한 결심 뒤엔 일단 지금의 아픔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솔직히 더 컸다.


끝내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마사지사님께 침착하게 물었다.


“가슴 마사지는…… 흐읍(고통 참는 중)…… 언제까지 해요……?(순전히 아파서인 것 티 안내려 포커페이스 중)”


“이틀예.”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입술도 꽉 물었던 것 같다. 이틀이나 이걸 참아야 한다고! 그 와중에도 가슴에서는 따끔함이 진동처럼 울려퍼졌다.


“봐봐예, 나오지예? 나오네!”


허스키한 부산 사투리로 외치는 마사지사님의 축하에도 웃을 수 없었다. 뭐라고 반응해야 한단 말인가. 감사하다는 말은 진짜 안 나왔다.


“아…… 신기하네요.”


“그치예? 이래 잘 뚫는 게 첫번째가 어의사(의사의 사투리), 두번째가 ○○(기억 안 난다), 세번째가 우리.”


자부심 넘치시는 농담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뒤끝이 남았던 것일지도) 아직도 억양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참고로, 기억 안나는 저 두 글자의 억양은 ○↗○이었다. 세번째 단어 ‘우리’의 억양 또한 같았다.


어쨌든 약 40분의 지옥 같은 가슴 마사지가 끝났고,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내일까지만 버틴다고 생각하면서. 모유 수유가 이렇게 아픈 거라면 난 절대로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내가 임신, 출산, 육아를 겪으면서 또 한번 깨달은 것은 ‘함부로 뭘 단언하지 말자’라는 거였다.


막상 바로 다음 수유콜 때, 이제 정말로 뭔가 나오는지 아기가 눈에 띄게 의욕적으로 잘 먹는 걸 봤을 때의 또 애틋해지는 기분이란…….


그리고 이틀째의 마사지마저 견뎌내고 이제 막 자신감과 사명감이 생기려고 할 즈음, 4일만에 아기가 자꾸 묽은 변을 봐서 엉덩이에 발진이 심하니 모유 주는 횟수를 좀 줄이자는 말을 듣고 왠지 우울해진 기분이란…….


그때부터 차츰 따갑게 젖몸살이 돌기 시작한 내 기분이란……. 아기가 고개를 파묻고 입을 앙앙 벌리는데 분유밖에 줄 수 없는 내 기분이란…….


내가 이렇게 순간의 기분들에 흔들리는 사람인지 정말 정말 몰랐던 것이다. (계속)


한때 모유수유를 꿈꿨던 수유원정대. 수유쿠션과 도넛방석, 손목보호대까지 단단히 야심찬 하룻강아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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