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수중전!

축알못의 축구보기(5)

by 도리

저번주 평일이었다. 요즘은 여름이라 저녁 7시에 경기를 한다. 저녁을 먹고 있었나? 어쨌든 평일이고 해서 경기가 있다는 걸 깜빡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무심코 네이버 스포츠란을 넘겨보다가 까암~짝 놀랐다. 아니 아직 전반인데 모든 경기가 몇 골씩 들어가 있고 난리가 난 게 아닌가.


0대0, 1대0으로 끝나는 경기도 허다한데 무려 골이 8개나 나왔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싶어 부랴부랴 중계를 틀었다.

출처: 네이버TV 캡쳐

맞다, 밖에 비가 오고 있었지. 관중들은 모두 우비를 쓰고 있었고 선수들은 수중 축구를 하고 있었다. 화면 속 하늘은 우중충했고 선수들은 머리가 다 젖어 있었다. 비가 와서 잔디도 물을 먹고 앞도 잘 안 보이다보니 서로 골을 많이도 주고받은 모양이었다.

경기 결과는 더 새통이었다. 하루만에 도대체 몇 골이 터진 거야. 5+1+5+6=17이다. 와,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그리고 주말에도 비가 왔다. 우리 수원은 상주와의 원정 경기였다. 상주에는 비가 꽤 온 모양이었다. 난 또 한발 늦었다. 전반 5분 쯤에 한석희의 데뷔골이 들어갔다고 한다. 1:0인 상에서 뒤늦게 중계화면을 틀었다.

핸드폰 공기계로 축구 보기

아니 틀었는데, 이게 뭐. 저 골대 앞에 허연 게 뭔가 했더니 물웅덩이가 아닌가! 경기 직전에 갑자기 많은 비가 내려서 수습을 할 수가 없었단다. 선수들은 첨벙거리며 미끄러졌고 공은 구르지도 않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난 공이 어디로 안 굴러가고 그대로 철썩 주저앉아버리는 건 처음 봤다.


SPOTV 중계 캡쳐
SPOTV 캡쳐

이 무슨... 축구에 빠진지 1년 남짓인 나로서는 실로 진풍경이었다. 워터파크 아닌가요. 도대체 물이 얼마나 고여 있길래 저런 장면이 펼쳐지냐는 말이다. 믿을 수가 없는 홍수 경기장. 그라운드가 전체적으로 물바닥이었다. 선수들이 밟는 모든 곳이 첨벙댔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굳이 따지자면 우리 수원이 유리했다. 양쪽을 보시라. 왼쪽이 수원 진영이고 오른쪽이 상주 진영이었는데, 수원은 골대 바로 앞에 물웅덩이가 있고 상무는 페널티라인 바깥에 물웅덩이가 있다. 상주 선수들은 도무지 우리 골대에 골을 넣지를 못했다. 골대 앞에만 오면 우수수 넘어졌다.


물웅덩이의 크기도 수원꺼(?)가 훨씬 크고 넓었다. 게다가 골대 앞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 그 자체가 수비벽 역할을 했다. 상주꺼는 비길 깜냥도 안 됐다. 타가트는 사뿐사뿐 저 웅덩이를 넘어 한석희의 골에 도움을 선사했다.


해설위원은 '물웅덩이가 골대 앞에서 연계플레이를 잘 해주고 있다'고 표현했다. 정말 그 말이 딱 맞았다. 와, 비가 오는 게 무조건 나쁜 게 아니구나. 우리 팀에 좋은 영향을 주니까 신이 났다. 그리고 이윽고 내 짧은 생각은 현명하게 돌아섰다.


"아, 후반전 때는 진영을 바꿔야 되지."


그런데 후반전에도 수원이 한 골을 넣었다. 어떻게 넣었을까? 아예 골대 쪽을 안 가고 넣었다!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튕겨나온 공을 바로 차 넣은 타가트(흰색 유니폼)

노동건 골키퍼가 길게 하프라인을 넘겨 차 준 공을 바그닝요가 받았고, 고민 없이 그 자리에서 장거리 슛을 날렸다. 상주 골키퍼가 민첩하게 쳐냈지만 튕겨나온 공을 타가트가 다시 차 넣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후반전에는 전반전 때보다 물웅덩이도 많이 작아져 있었다.


나중에 기사를 읽어보니, 수중전 때는 장거리 슛이 유리하다더라. 공이 가속도가 붙어서 골키퍼가 평소였으면 잡을 수 있는 공도 순간적으로 쳐 낼 수밖에 없다고. 그럼 세컨드 볼(골이 안 되고 튕겨나온 볼) 기회를 노릴 수도 있다는 거다. 타가트는 딱 좋은 지점에 서 있었다. 공이 튕겨 나오자마자 반박자 빨리 달려가 골로 연결시켰다. 타가트는 위치선정능력이 좋다고 주워들었었는데 그게 이런 것이었나보다.


처음 보는 수중전의 묘미는 굉장했다. 우리 팀에 도움이 안 됐다면 불평불만을 한참 했겠지만, 악조건처럼 보이는 것도 때로는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함에 새로운 재미를 느꼈다. 이로써 우리 수원은 올시즌 첫 3연승을 거뒀다.


P.S. 그리고 이 날은 보스니아 국대 미드필더 사리치를 보내주게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데려온 거냐며 '수원 프런트의 실수'라고 불릴 정도였던 선수라 얼마 못 있을 줄은 알았지만, 막상 보내자니 꽤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사리치의 이적이 또 우리에게 어떠한 악조건을 가져다줄지, 또 다른 반전을 가져다줄지 궁금하다. 축구는 정말 뭐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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