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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드레스의 효용에 대하여.

결론은 사줘라.

아주 야무진 짝꿍을 만났다. 천성이 게으름뱅이해야 할 때면 저~기 심연에 꼭꼭 숨겨진 또 다른 자아의 머리 끄댕이를 잡아채와야만 겨우 해내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태어나길 야물딱지게 태어난 여성이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영끌을 하여 핫한 지역에 집을 샀을 뿐 아니라 그 대출금의 원리금을 상환하는 내 유일한 지인이었다. 향후 몇 년 안에 대출을 다 갚는 계획을 세운 그녀는 절약하는 세상의 모든 방법을 섭렵하고 있었고 가끔 같이 출장을 나가는 날엔 그 팁을 내게 공유하기도 했다.


예쁜 얼굴을 믿어서인지 화장품이나 옷 등 본인에게 쓰는 돈은 최대한 아끼는 편이었는데 그녀가 유일하게 사치하는 곳이 있었으니 다섯 살배기 어린 딸네미의 머리핀이었다. 점심에 사무실 근처 옷가게에 가끔 들러 만원도 채 안 되는 한 움큼 핀을 사고는 그렇게 행복해하곤 했다.  와중에 엄마와 아이 커플 옷 중에 엄마 것 만 살 수 있는지, 예쁜 밀짚모자의 어른 사이즈가 있는지 물으며 내 물건 살 궁리에만 혈안이 된 나의 철없 대한 낯뜨거움은 내 몫이었다.


어느 날은 그녀가 핀이 아니라 엄마딸 커플 원피스코너를 휘적휘적 보고 있기에 드디어 본인 옷을 사려나 보다 하고 내 죄의식을 덜어줄 그녀의 구매에 펌프질을 해줘야겠다 싶어 다가갔다.


왜 자기  사게? 아니 내 꺼 아니라  이거 소율이 꺼.

이때부터 김샜지만 대화는 마무리해야 하므로.


이쁘네 사줘.

우리 소이 어린이집에 매일매일 공주치마를 입고 왕관을 쓰고 오는 애가 있어서. 어린이집여자애들 사이에서 바람이 불었대. 공주드레스 입고 오는. 근데 여름에 이런 쉬폰 겹겹이 붙은 거 너무 덥잖아. 분명 몇 번 못 입을 거 같고. 원에서 미끄럼틀 타고 그네 타고 그러는데 얼마나 불편하겠어. 그리고 내 눈엔 너무 촌스러운데 이걸 5만 원이나 주고 사줘야 하나 싶은 거지.


사줘. 사줘야 돼. 애들 다 입고 다니는데 본인만 못 입으면 얼마나  속상하겠어. 그리고 애들 눈엔 이게 이쁘다고. 본인이랑 친구들이 예쁘다고 하면 와따지 엄마 눈이 뭐 중요해? 덥고 불편한 것도 본인이 입고 느껴야지. 엄마가 설득해 봐야 설득이 되겠냐고. 그냥 원망 듣지 말고 사줘.


이건 팔닥팔닥 살아있는 내 경험에서 나온 얘기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이었나. 어느 날엔가 아빠가 시장에 데려갔었다. 뭐가 사고 싶냐고 묻기에 레이스가 덕지덕지 달린 내 눈에 예쁜 옅은 민트색 드레스를 가리켰다. 아빠는 두말없이 동생 것과 내 것 두벌을 사줬고 엄마는 당연히 못마땅해했다. 비쌌고, 더웠고, 거추장스러웠으며 촌스러운 원피스를.


 엄마는 현명한 본인이었으면 절대 사주지 않았을 에 아빠가 쓸데없이 낭비한 것에 몹시 화가 났지만 실용성과 돈 때문에 내 마음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 드레스를 입고 행복했다. 까맣고 깡마른 내가 그 드레스가  어울릴리 만무하고 예쁘지도 않았겠지만 스스로는 처음으로 공주 같다고 느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 드레스는 어쩌면  아빠가 나를 사랑하긴 한 것 같다는 어린 내가 수집한 몇 안 되는 증거였다.  쩌면 내 삶을 관통하는 우울함의 제일 큰 원인이 되었을 아빠의 행동들, 술을 마시고 물건을 부수고 엄마를 때리던 수많은 밤들을 겪고도 어떻게든 사랑을 받고 싶었던 어린 날의  나에게 그 드레스 드물고도 몹시 꼬질꼬질한 아빠의 사랑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으므로.


그러므로 혹시 아이의 공주드레스를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면 사시라. 부모를 어마어마하게 사랑는 아이들은 그런 사소한 일로도 부모를 용서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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