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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공부는 언제 해야 해요?

내 새끼 천재설 검증기

나도 내 새끼가 천재인 줄 알았다. 유난히 뒤집기를 빨리했다 느꼈을 때부터였나? 말을 못 할 때부터 내게 손짓발짓으로 원하는 것을 찰떡같이 전할 때부터였나? 여하튼 천재의 끼가 있다고 느낌이 팍! 왔다. 마침 휴직도 했겠다 녀석의 천재성을 꽃피우게 해주고 싶었다. 똑똑하면 남들이 몇 날며칠 고민할 일도 발로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나와 달리 녀석은 인생을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한글 조기교육은.


글자의 조기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지만 또 찾아보면 창의성과 이른 문자습득과는 관계없다는 반대의견도 많다.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고 당시만 해도 복직을 곧 앞두고 있어서 마음이 조급했다. 빨리 한글 떼기를 해내서 나 없이도 스스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으면 했다.


그리하여, 첫아이 두쯔음, 말도 못 하는 애를 잡고 한글 교육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신기한 한글**, 구* 등 방문선생님이 오신 건 아니었다. 육아서는 엄마와 재미진 놀이로, 통글자로 시작해야 부작용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노오란 대왕 포스트 잇에 아이가 좋아하는 물건들의 이름을 크게 크게 적어 붙이고 엄마가 말하는 낱말 찾아 오기를 시작했다, 아이는 이걸 놀이라고 생각했는지 예상보다 훨씬 호응이 좋았다. 인터넷에 많이 나오는 자석으로 물고기 낱말 카드를 낚는 한글 낚시 놀이도 꽤나 좋아했다. 책 제목을 손으로 짚어가며 읽어주는 일도 꼬박꼬박 했다. 그러나 노력이 무색하게 이 녀석은 한참이나 읽지 못했다.  지쳐서 때려치울까 싶었던, 1년이 지난 무렵 **부동산이란 간판을 읽던 녀석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내가 읽어줬던걸 기억한 건가? 아니었다. 이 녀석은 한글을 읽게 되었다. 맞다 이 녀석은 천재였던 다.

말도 잘 못하는 애를 붙잡고 한글교육을 한다고 나를 정신 나간 극성엄마쯤으로 여기던 남편은 내가 수립한  '내 자식 천재'가설에 합류했다. 그렇게 맏아들은 우리 집 엘리트 코스(?)를 차분히 밟아나갔다.


다음스텝. 둘째 어린이도 때가 되었다. 비슷한 유전자를 타고났을 테니, 동일방법을 사용해 봤다. 내 예측은 빗나갔다. 이 녀석은 다른 종자였다. 글자에 관심이 없었다.  엄마의  응큼한 속내를 진즉에 파악했는지 아무리 놀이를 가장해도 한글놀이에 폭빠지지 않았다. 이 자식, 보통 똑똑한 게 아닌데? 필살의 한글 낚시 놀이에도 자석에만 굉장히 빠져가지고 내가 목이 터져라 외치는 카드 속  '고등어', '오징어'에 관심이 없었다. 에라, 떼려 치웠다. 이게 다 되는 게 아닌갑다. 서낭당처럼 벽에 잔뜩 붙은 노랑포스트 잇은 다 갖다 버렸다. 한글낚시놀이용 자석도, 클립도 꼴 보기 싫었다. 그래도 아쉬워서 유아의 집이라면 하나씩 있다는 가나다라 벽보만 하나 남겨뒀다.


유치원에 다니고 좀 지난 어느 날 둘째가 가나다를 읽기 시작했다.  어어!! 이게 무슨 일이람. 둘째는 한글을 유치원에서 조금씩 배웠고 집에 붙은 벽보에 가나다라마바사를 매일 한번 소리 내어 읽었을 뿐인데 한글을 떼버렸다.

너무나 기뻤으나 순간, 나는 어린 큰애를 붙잡고 일 년을 뭘 한 건가 생각이 스쳤다. 이리도 자연스럽게 한글을 떼는데 나는 왜 일 년을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결연했을꼬.

세월에 익으면. 때가 오면 이리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되는 것을 고작 일이 년을 빨리 가보겠다고. 남들을 앞서 가겠다고  왜 아이 끌고 그리 흔들었을까.


큰 아들 12살 작은 아들 10살. 내 새끼 천재설은 과학적인 가설이 아니라 모든 부모가 앓는, 그저 고질적인 병임을, 이 병엔 세월 밖에 약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아이를 처음 키워 초보엄마의 가설확인실험에 이리저리 휘둘렸던 3살에 한글을 뗀 어린이나 자연스레 5살에 뗀 어린이나 굉장히 평범한(?) 학교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실험에 부작용은 없었는지 무난하게 잘 지내고 있다.


유아를 기우는 후배들이  가끔 아이들 한글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하냐고 묻는다.  신기한 한글**는 어떤지 궁금해한다.  나는 쓸데없는 짓 말고 잠자리에서 책이나 많이 읽어주라고 말한다. 어떤 아이는 자연스럽게 떼기도 하고 조금  도움이 필요한 아이도 있지만, 기특하게도 결국 다들해내니깐 말이다. 자연스럽게. 자기의 때에 맞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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