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넨미사키 공원

막연한 동경이 현실로 된 순간

by 본격감성허세남

예전에 아이패드로 정기 구독했던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에서 오키나와와 관련된 한 장의 사진과 글을 본 적 있다. 눈부시게 파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공원의 사진이었는데 왠지 멋져 보여서 캡처를 해놨었다. 언젠가 내가 오키나와에 간다면 그곳에 꼭 가고야 말리라. 그렇게 막연하게 동경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오키나와에 오면서 정말로 가게 됐다. 오키나와에서의 둘째 날, 본격적인 일정의 시작은 바로 치넨미사키 공원이었다.


oki.png 마음 속에 간직해 온 사진 한 장


10월 중순인데도 날씨가 무척이나 뜨겁다. 기온은 30도 정도인데 햇빛이 워낙 뜨거워서 조금만 오래 있으면 머리가 빨갛게 타버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렌트를 했으니 다행이지 만약에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한 그런 날씨다. 역시 에어컨 잘 나오는 차가 최고다.


치넨미사키 공원은 오키나와 본 섬의 최남단 쪽에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은 아닌 것 같았는데 현지에서는 꽤 유명한 곳인지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운 좋게 한 자리를 차지했는데 곧 대기하는 차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공원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지 않던데, 대체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건지 의문이 생겼다. 주변에 어디 다른 좋은 곳이 있는 건가? 아무튼 우리의 목적은 오직 사진에 나왔던 그곳이니 상관없긴 하지만.


더위를 뚫고 조금 걸어가다 보니 드디어 그곳이 나왔다. 마침 날씨도 완벽했다. 적당히 구름이 있어 더 예쁜 푸른 하늘 아래 눈부신 바다, 그걸 바라볼 수 있는 작은 곶 형태의 전망대, 그리고 하늘엔 어디선가 날아온 패러글라이딩. 보는 순간 나와 아내는 탄성을 질렀다.


"와! 짱이다!"


일부러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막연하게 품고 있었던 동경이 현실로 되는 순간, 가슴속에서 뭔가 벅차올랐다. 오키나와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 곳이었다. 바다가 더 멋진 곳은 있지만 아무래도 오래전부터 상상했던 곳이니까 더욱 기억에 남았다. 주차장까지는 조금 시무룩했던 수인이도 엄청 신났다. 엄마 손을 잡고 얼른 뛰어가다가 바다를 보며 "어, 어"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수인이를 안고 바다를 보며 이것저것 알려주기도 했다.


"수인아, 저기 바다 색깔 봐봐. 정말 예쁘지? 여러 색깔이네."

"저기 하늘에 사람이 날아온다. 우와. 나중에 수인이도 크면 아빠랑 같이 날자."


'완벽한 순간'이란 바로 이런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사진 2016. 10. 16. 오전 11 27 36.jpg 눈부셨던 풍경, 치넨미사키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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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6. 10. 16. 오전 11 42 49.jpg 수인아, 좋은 것은 많이 많이 보렴


치넨미사키 공원을 나와 가다가 오지마 섬 입구에 있는 유명하다는 튀김집에서 튀김으로 점심을 먹고(정말 짱이었지!) 국제거리 쪽에 가려고 했다. 오키나와에 왔으니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류보 백화점으로 향했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주차장조차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른 주차장을 안내하는 판도 있었는데 거기를 가도 자리는 없고, 조금 돌아다니다가 그냥 깔끔하게 포기했다. 오전에 그렇게 좋은 경치를 봤는데 국제거리쯤이야. 깨끗하게 포기할 수 있었다.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대신 호텔로 돌아온 후 호텔의 수영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수인이가 아주 신났다. 물놀이를 점점 더 좋아하는 우리 딸. 앞으로 수영장 있는 호텔만 찾아가야 하려나. 비록 혼자서 놀지는 못하지만 아빠 엄마가 잡아주니 어찌나 좋아하는지. 몇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지치지도 않니, 애들의 체력은 정말 신기하다. 관광지 한 곳에 더 가는 것보다 이렇게 어디에서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보람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느낀다. 아마 우리끼리 왔다면 둘 다 수영을 그리 즐기진 않으니 어떻게든 주차 공간을 찾아봤겠지? 확실히 아이와 함께 다니다 보면 포기가 좀 더 쉬워지고, 의외의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이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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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어제 놓쳤던 선셋비치에 다시 도전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실패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일찍 도착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미 해가 거의 다 넘어간 뒤였다. 우리와 같은 생각으로 노을을 보려고 모여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하는 그런 때. 그렇지만 의외로 그 순간이 굉장히 좋았다.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여유롭게 그 순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자연스럽고 은근히 로맨틱했달까. 비록 원하던 노을은 못 봤지만 그 순간의 분위기가 무척이나 푸근해서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마음에 여유가 있으니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이날 하루 여러 가지를 포기해도 이렇게 넉넉했던 이유는 첫째가 오전의 치넨미사키 공원 때문이요, 둘째는 역시 수인이 때문이었다. 수인이는 한국에서보다 더 잘 노는 것 같다. 수인이가 잘 노니까 우리 역시 만사에 관대해진다. 여행 체질인 우리 딸이 참 고맙다. 덕분에 아빠 엄마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숙소로 돌아와서 수인이를 재운 후 맥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어제와 다른 새로운 맥주다. 어떤 여행지를 가도 그 나라 또는 지역만의 맥주는 있게 마련이니 좋다. 오키나와의 오리온 맥주는 특별히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깔끔하면서 괜찮네? 맥주 맛을 알아서 다행이야. 덕분에 적당히 알딸딸하고 기분 좋았던 오키나와에서의 두 번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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