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 여행 마무리
이번 오키나와 여행에서는 특별히 맛있었던 것들이 많았다. 3박 4일 동안의 짧은 오키나와 여행을 마무리하며 오키나와에서 맛본 음식들, 그리고 우리 가족이 느낀 오키나와라는 곳의 맛을 적어보고자 한다. 이럴 때 보면 한국어가 참 재미있다. '맛'이라는 단어 하나로 음식과 소감을 모두 표현할 수 있으니.
1. 호텔 근처의 허름한 일식집에서 먹은 음식들 (うみちか食堂)
우리가 묵었던 Laguna Garden Hotel 근처에 허름한 일식집이 하나 있었다. 의외로 사람들 평가가 굉장히 좋기에 반신반의하며 가봤는데 굉장히 맛있었다. 역시 정보가 넘치는 시대, 사람들이 많이 가고 평이 좋은 곳이 괜히 그런 것이 아니다.
특히 맛있었던 것은 야끼소바와 카레. 계란 노른자까지 어우러진 야끼소바는 한국의 어디서 먹었던 것보다 더 맛있었고, 카레는 일본 카레 특유의 진한 맛이 일품이었다. 가격도 매우 저렴해서 떠나기 전까지 2번이나 찾아갔던 곳. 허름한 분위기 때문에 지나쳤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지금도 가끔씩 생각난다. 사이드 메뉴로 간단한 볶음밥도 시킬 수 있었는데 양도 적당하고 맛도 좋아서 수인이도 굉장히 잘 먹었던 곳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참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곳.
맥주를 함께 곁들이지 못해서 아쉬울 따름이다. 렌터카 여행의 가장 큰 단점은 역시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기 어렵다는 점이다.
2. 소박한 가정식 소바 (日本そば新富)
비셰자키에서 스마트폰 때문에 수인이와 한참 씨름한 끝에 지쳐서 찾아갔던 곳이다. 식당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그런 곳에 있어서 과연 내가 맞게 가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 처음에 두드렸던 집은 가정집이었다. 그 주인 분이 바로 옆집이라고 알려준 덕분에 미안하다고 하고 옆집으로 향했다.
규모는 정말 작았고, 주방장과 점원은 노부부 두 사람이 전부였다. 수인이가 잠에 든 덕분에 우리는 여유롭게 오키나와식 소바와 메밀 소바, 그리고 튀김을 시켰다. 평일 점심이라 그런지, 아니면 늘 그런지 모르겠지만 손님은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주문한 뒤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곧 음식이 나왔다. 한눈에 봐도 정갈한 모습이었고, 면은 직접 만든 것 같은 느낌을 확실하게 주었다. 그리고 맛은 훌륭했다. 소바라는 음식이 그렇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하고 왠지 푸근한 느낌이랄까. 이 곳의 음식들이 딱 그랬다. 함께 시킨 튀김 역시 훌륭했다. 재료의 식감을 잘 살려서 신선한 느낌이었다.
덕분에 비셰자키에서 수인이와 있었던 실랑이를 잊고, 이후 좋은 기분을 안고 코우리 섬으로 향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화려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기에, 화려한 레스토랑보다는 이런 소박한 곳이 더 좋다.
3. 토니 로마스 (Tony Roma's)
지금의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우리는 토니 로마스에 자주 갔었다. 아웃백, TGI 등 다른 패밀리 레스토랑은 싫어했지만 유독 토니 로마스만큼은 마음에 들어서 자주 갔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토니 로마스 매장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예술의 전당점, 도곡점, 광화문점까지 모두 사라져서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그곳, 가끔씩 그 맛이 그리웠다.
그런데 오키나와의 아메리칸 빌리지에 토니 로마스가 있었다. 본 순간 우리는 당연하게도 그리로 향했다. 늘 먹던 립을 시키고, 그 외 요리를 더 시켰다. 이 때도 수인이는 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와의 여행에서는 이런 순간이 참 소중하고 고맙다. 우리만의 여유 있는 저녁 식사라니, 게다가 우리가 그리워하던 토니 로마스. 맛은 역시나 훌륭했고, 추억 덕분에 더욱 만족스러웠다. 우리에게 새로운 음식이 아니기에 사진 한 장 없지만, 오랜만에 먹어서 더욱 맛있었던 곳이다.
4. 한국으로 돌아오다
늘 그렇듯이 마지막 날엔 특별한 일정이 없다. 근처 슈퍼마켓에 가서 쇼핑을 조금 하고, 렌터카 업체로 가서 렌터카를 반납하고, 비행기를 한참 기다렸다가 탔다. 운 좋게도 자리가 남아서 수인이 역시 한 자리를 얻었다. 올 때는 계속해서 안고 오느라 힘들었는데 돌아갈 때는 자리가 있으니 확실히 편했다. 수인이는 이제 곧 24개월이 된다. 때문에 이번 오키나와 여행은 저렴하게 가는 마지막 여행이었다. 앞으로는 수인이도 좌석을 사야 하겠지? 새삼스레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는 실감이 났다.
오키나와는 더웠다. 돌아오니 한국의 가을 날씨가 적응되지 않을 정도로 무더웠다. 아이와 함께 하기엔 추위보다 더위가 확실히 낫긴 하다. 감기 걱정도 없고, 두꺼운 옷이 필요 없기에 짐도 줄어들고, 아이 역시 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10월에도 30도일 정도로 덥고 습하면 활동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렌터카에서 빵빵하게 나오던 에어컨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만족도가 확실히 떨어졌을 것이다. 오키나와에서 렌트를 해야 하는 이유는 날씨 때문이기도 하다.
오키나와는 여유로웠다. 볼거리를 찾자면 다양한 곳이지만 반대로 한없이 여유롭게 있을 수도 있는 그런 곳이었다. 호텔 수영장은 너무나도 쾌적하고 좋아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이용했고, 렌터카를 이용해서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도 있었다. 덕분에 그 어느 여행지보다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수인이 컨디션도 굉장히 좋았다. 우리 딸이 편안하면 우리 모두 편안하다. 아이와 함께 있기에 많은 것을 포기했지만 그만큼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기에 전혀 아쉽지 않았다. 전에 말한 대로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다 보면 포기하는 것에 점점 더 익숙해지는데, 오키나와는 그 포기가 더 편안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곳이었다. 맛있는 것 먹고, 산책하고, 바다만 봐도 참 좋은 곳이었으니까. '휴가'라는 말이 참 어울리는 곳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수인이와의 여행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10개월 아이를 데리고 한 달 동안 다녀온 독일 여행이 가장 쉬웠던 것 같다.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하지만 그때는 우리의 의지대로 잘 움직여줬으니 조심스러운 점이 많긴 해도 최소한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인이에게 점점 생각이 생기고 고집도 강해지면서 설득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어려웠던 것이 비셰자키였을 뿐, 그 외 사소하게 어려웠던 순간은 많았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우리 딸, 얼른 말해서 의사 표현이라도 분명하게 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은 습관적으로 어딘가를 찾아 떠날 거다. 비록 어려움은 계속 있겠지만 그런 어려움을 넘을 큰 즐거움이 있을 테고, 오키나와 역시 그랬다. 여행을 다녀오면 수인이가 아빠와 확실히 더 친밀해진 것 같은 느낌이다. 하루 종일 같이 생활하다 보면 아빠가 더 좋아지나 보다. 우리 가족이 계속해서 함께 여행을 떠나는 중요한 이유기도 하다. 한국이라는 일상에서 떠나오면 우리 가족 서로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가끔 수인이가 없었던 때처럼 우리 부부 둘이서만 여행을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랬으면 오키나와는 어땠을까? 아마도 지금보다 재미없었겠지? 아니, 오키나와라는 곳에 아예 안 오지 않았을까? 수인이와 함께 하기에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여행이 되는 느낌이다. 비록 말 못 하는 그 여행 파트너는 특별히 하는 것이 없고 아빠 엄마가 하나하나 다 챙겨줘야 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딸바보 아빠다. 다음에 떠날 여행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