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과 다른 상황들과 마주하기
오키나와에서의 셋째 날. 차를 타고 북쪽으로 다녀오기로 했다. 오키나와 본 섬도 은근히 커서 하루에 섬 전체를 돌아다니기엔 쉽지 않다. 게다가 아이까지 있으면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해 더더욱 조심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둘째 날엔 남쪽을, 셋째 날엔 북쪽을 가기로 일정을 짰다. 많은 사람들이 오키나와는 북쪽의 바다가 아름답다고 했다. 때문에 전부터 굉장히 기대했던 날이 이 셋째 날이었다. 어제 갔던 남쪽의 바다, 특히 치넨미사키 공원이 워낙 좋았으니 기대감이 더 커졌음은 물론이었다.
차 타고 달리면서 보는 바깥의 풍경은 좋았다. 차가 막히는 구간을 빠져나오니 차도 없어서 한가하고, 날씨는 여전히 무덥고 좋았다. 오늘의 첫 일정이 오키나와 하면 언제나 사진으로 등장하는 '만좌모'였는데 여기서부터 살짝 꼬이기 시작한 것 같다. 대기까지 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찾아간 만좌모는 예상과 달리 너무나도 별로였다. 일단 사람이 너무너무 많아서 사진 한 장 찍기 힘들었고, 무더운 날씨 때문에 유모차에 앉아있는 수인이도 힘들어했다. 그늘 하나 없는 곳에서 고작 코끼리 모양 하나 보겠다고 더위를 참아가며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그런 상황. 가볍게 포기해버리고 일찍 떠났다. 원래 사람 많은 명소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수인이와 다니기 시작한 뒤로 이런 성향이 더욱 강해진 것 같다. 장소 중심의 여행이 아닌, 함께 하는 시간이 중요한 사람 중심의 여행으로 바뀌었달까.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은 빨리 떠나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다음 목적지는 더 북쪽에 있는 '비셰자키'. 스노클링을 하러 많이 가는 곳 같던데 우리는 아이와 함께라 아직 스노클링은 못 하지만 그냥 물에 발만 넣어도 물고기가 보인다기에 일부러 찾아갔다. 수인이는 물고기를 참 좋아한다. 한국에서 마트에 가더라도 가장 좋아하는 곳은 물고기가 있는 어항이다. 가끔 TV에 바다가 나오면 "어, 어"하며 어찌나 감탄을 내뱉는지. 이런 물고기를 눈앞에서 직접 보여줄 수 있다는 큰 기대를 가지고 비셰자키로 향했다. '후쿠기 가로수길'이라고 이름 붙은 숲길을 지나(모기는 덤...) 쭉 걸어가면 잔잔한 바다가 나온다. 가까이 가니 정말 물고기들이 눈 앞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파도가 없이 잔잔해서 그런지 물고기들이 정말 많았다.
"수인아, 여기 물고기들이 많아! 파란 물고기도 있네. 와 저기 저 물고기는 크다!"
그렇지만 물고기고 뭐고 아무 의미가 없었다. 가로수길 초입에서 우리 부부가 번갈아가며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수인이가 하도 심심해하기에 잠깐 스마트폰을 쥐어줬었다. 그러다가 금방 빼앗고 달래 가며 해변까지 왔는데 그때 빼앗긴 것이 정말 억울했나 보다. 아무리 달래도 해도 수인이는 뾰로통한 채로 울기만 했다. 결국 한참을 실랑이하던 우리는 포기하는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줘버렸다. 아이는 뜨거운 햇볕 아래에 앉아서 스마트폰만 보고 있고, 대신 아빠와 엄마만 물고기 보며 좋아하는 그런 이상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럴 거면 오지도 않았지. 아빠 엄마가 너 물고기 보여준다고 일부러 신발도 샌들로 신겨서 왔는데. 휴.
아이가 커갈수록 고집도 늘고 어려움도 많아지는데 그중에 참 어려운 것이 스마트폰이다. 안 주는 것이 좋다고 모두들 말하지만, 그리고 우리도 잘 알지만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아빠 엄마가 자주 보게 되는 것이 스마트폰인지라 그 모습을 본 아이가 자연스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아예 안 보면 모르겠지만 요즘 세상에 그게 가능한가. 게다가 외식을 하거나 여행을 갈 때면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더 많이 주게 된다.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호텔 조식 뷔페에서 책, 장난감 등 여러 가지로 수인이를 유혹해 봤지만 결국 스마트폰을 주고 나서야 우리 모두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몇 번 이렇게 되다 보니 수인이도 예상이 되는지 당연하게 기대를 한다. 이제 2돌도 안 된 아기가 본인 사진, 유튜브 등을 백버튼까지 써가며 얼마나 자유자재로 보는지 신기하기도 하면서 걱정도 된다. 게다가 오늘처럼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스마트폰을 본다고 떼를 쓸 때는 더욱 난감하다. 스마트폰을 없애버릴 수도 없고, 갈수록 스마트폰으로 할 것들은 많아지고, 아이는 아무리 해도 달래지지 않고, 정말 딜레마다. 앞으로 더욱 커질 이런 딜레마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음으로 갔던 코우리 섬 쪽에 있는 해변에서는 잘 놀았다. 그야말로 눈부신 바다였다. 오키나와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꼽으라면 단연코 코우리 섬 대교와 그 근처 해변을 꼽겠다. 푸른 하늘 아래 에메랄드빛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안에서 수인이는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 다녔다. 파도가 살짝 칠 때면 옷을 적실만큼 물이 튀었는데 수인이가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 순간에 우리 모두 정말 행복했다. 스마트폰 같은 것 없이 이렇게 잘 놀면 얼마나 좋니. 덕분에 기억에 더욱 아름답게 남아있는 그런 바다다.
오키나와 여행의 실질적인 마지막 코스는 츄라우미 수족관이었다. 역시나 물고기를 좋아하는 수인이를 위해 일부러 찾아간 곳이다. 처음에 놀라며 반응을 보이던 수인이는 워낙 많아서 그런지 곧 관심이 시들해졌다. 아직 마트의 작은 수족관이 더 좋은 걸까. 대신 아빠 엄마가 더 신이 났다. 특히 큰 고래 상어가 먹이를 먹는 대형 수족관은 정말 압권이었다. 수인이는 물고기엔 관심이 별로 없는 상태로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덕분에 우리는 번갈아가며 수인이를 쫓아다녔다. 그래도 좋았다. 신기하게도.
"수인이는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참 좋다. 그치?"
"응. 저 고래 상어 진짜 신기하네. 수인이도 잘 보면 좋을 텐데."
이렇게 멀리 와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니, 그것 만으로도 얼마나 좋은가. 게다가 수인이는 건강하게 잘 뛰어다니고.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참 긍정적으로 변했다.
츄라우미 수족관을 나오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뒤쪽의 해변은 사람이 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수인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그 주변을 잠시 산책했다. 확실히 수인이가 점점 커가는 것을 느낀다. 이전에는 아빠 엄마가 가는 대로 늘 따라다녔다면 이제는 생각이 확실한 여행 동반자가 된 느낌이다. 대신 말은 못 해서 답답한 여행 동반자다. 덕분에 여행이 조금은 더 어려워졌다. 얼른 말을 해서 아빠 엄마와 서로 이야기하며 다녔으면 좋겠다. 싫으면 울지 말고 싫다고 말하고,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언제쯤 그런 날이 올까?
어둠이 짙게 내린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 뒤에서는 아내와 수인이가 자고 있고 나 혼자 깨서 낯선 도로를 운전하면서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가슴이 조금은 뭉클해졌다. 이렇게 멀쩡하게 다니면서 이번 오키나와 여행도 무사히 마쳤고, 이제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니까 얼마나 행운인지. 스마트폰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은 앞으로 꾸준히 잘 해결해 나가면 되니까.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해서 앞으로도 계속 이런 기회가 있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어딘가로 보냈다. 비록 종교는 없지만 신이 정말 있다면 누군가는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따뜻하게 마무리된 오키나와에서의 셋째 날.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예상과 다른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그런 상황들과 마주하면서 나도 많은 생각들을 하며 조금씩 커가는 것 같다. 30이 넘었지만 아직도 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