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적으로 떠나는 여행

오키나와 여행의 시작

by 본격감성허세남

어느 날 문득 오키나와로 가는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고, 10월이 되어 오키나와행 비행기를 탔다. 4월에 후쿠오카와 유후인에 다녀온 이후 약 6개월 만에 다시 일본이다. 오키나와는 사실 일본이라고 보기엔 너무 떨어져 있긴 하지만 아무튼 일본. 특별히 휴양지에서 휴양을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예전부터 오키나와에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습관적으로 여행이나 한 번 갈까 하고 여기저기를 물색하다가 오키나와가 눈에 들어왔다. 이유는 2가지다. 아이와 함께 가기에 적당한 비행시간과 가격, 깔끔한 환경. 이 정도면 한 번 경험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독일에 다녀온 뒤로 완전히 자신감이 생겨서 이제는 수인이가 태어나기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행에 부담감이 거의 없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늘 습관적으로 어딘가로 향한다. 그곳이 국내든, 국외든. 이런 아빠를 만나서 수인이도 좋을 것이라고 믿는다. 자주 웃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아서 다행이다.


오키나와에 내리자마자 후끈한 날씨에 비로소 떠나왔다는 실감이 났다.


"더워! 여긴 아직 여름이구나."


일본보다는 대만에 가까운 곳, 그래서 엄청 무더운 곳. 10월이지만 낮기온이 30도 정도다. 황급히 수인이 옷을 가볍게 만들어주고 우리도 오키나와에 맞는 복장으로 변신했다. 더위를 굉장히 싫어하는 우리 부부지만 그래도 서울을 떠나오니 기분이 좋다. 역시 여행은 사람을 관대하게 만들어준다.


사진 2016. 10. 15. 오후 4 41 20.jpg 여행 내내 우리의 발이 되어준 닛산의 큐브


이번에 처음으로 외국에서 차량을 빌려봤다. 첫 국외 차량 렌트인데 하필이면 장소가 우리나라와 모든 것이 반대인 일본이라니. 그래서 처음에 굉장히 긴장했다. 주행 방향도 반대, 방향 지시등과 와이퍼 작동도 반대, 좌회전과 우회전도 반대, 익숙하지 않은 차, 이 모든 것들이 한 번에 몰려오니 마치 처음 운전했을 때처럼 긴장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깜빡이 동작한다고 와이퍼도 한번 켜보고, 잠시 몇 초간 역주행도 해봤다. 그런데 예상보다 금방 익숙해졌다. 덕분에 여행 내내 큰 어려움 없이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잘 돌아다녔다. 수인이와 함께 늘 대중교통만 이용했었는데 확실히 편하긴 하다. 앞으로도 다른 여행지에 가서 적극적으로 이용해야겠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한국에 귀국 후 인천공항에서부터 운전해서 집으로 가는데 이번에는 한국의 자동차가 헷갈렸다. 불과 며칠 동안이었지만 그게 금세 몸에 익었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라구나 가든 호텔>. TV 프로그램에서 추성훈과 사랑이가 가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명한 호텔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로비에서부터 한국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우리는 수인이 방송 이외에 거의 TV를 보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그래도 유명인이 예약해서 갈 정도면 좋겠거니 하고 왔는데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보통 일본 본토로 여행을 가면 숙소가 가격에 비해 굉장히 좁다. 땅값도 워낙 비싸고 물가도 비싸고 하니 그러려니 하게 마련인데 오키나와의 이 호텔은 달랐다. 무엇보다도 방이 엄청 넓었다. 수인이가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가격은 도쿄보다 저렴하니 얼마나 좋은가. 오키나와의 다른 호텔은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에게 오키나와의 첫인상은 매우 좋았다.


숙소의 창문을 여니 눈앞에는 눈부시게 맑은 하늘과 멋진 바다가 펼쳐졌다. 오래되어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야구장이 분위기를 더해줬다. 휴양지로 잘 다니지 않기에 우리의 여행에서 이런 오션뷰는 처음이다. 수인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무조건 가성비가 좋은 호텔로 다녔기 때문에 이런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 방에서 보이는 바다가 얼마나 중요하겠어하는 생각이었지만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감명 깊었다. 매일 아침 이런 탁 트인 기분이라니. 수인이 덕분에 또 새로운 경험을 한다. 수인이도 즐거운지 계속 웃으면서 뛰어다녔다. 네가 웃으면 아빠 엄마는 덩달아 좋단다. 많이 웃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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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6. 10. 15. 오후 3 57 31.jpg 가슴이 탁 트이는 바깥 풍경


체크인을 하고 정리를 하다 보니 금방 늦은 오후가 되어버렸다. 호텔 주변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무얼 할까 하다가 첫날은 노을이나 보며 가볍게 마무리하고자 아메리칸 빌리지 쪽에 있는 선셋 비치로 향했다. 지도에 표시되는 거리가 얼마 되지 않기에 충분히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차가 막혀서 결국 노을은 보지 못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다 진 뒤였고, 선셋비치는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본 건 불빛이 휘황찬란하게 밝혀진 아메리칸 빌리지의 모습뿐. 뭐 어떠랴. 노을이야 오늘 못 보면 다른 때 보면 그만인 것을. 숙소도 마음에 들고 여유도 있으니 어찌 됐든 좋았다. 여행에서의 이런 느긋한 기분으로 매일매일 일상을 보낸다면 조금 더 행복할 텐데. 서울에서는 그게 불가능하기에 자꾸 어디로든 떠나는 것 같다.


사실 선셋 비치가 아니라면 수인이와 함께 있는 우리가 아메리칸 빌리지에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소품 쇼핑을 할 것도 아니고, 맥주를 마실 것도 아니니까.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나온 후 근처 슈퍼마켓 쇼핑을 잠깐 했다. 그리고 차를 타고 이동해서 조금 큰 약국 쇼핑을 했다. 쇼핑을 싫어하는 수인이가 유일하게 조금이나마 참아주는 곳이 바로 슈퍼마켓이나 약국이다. 약국이라 하면 우리나라의 올리브영 같은 이른바 '드럭스토어'. 그런 곳에서는 수인이 역시 얻을 것이 있기 때문에 잠잠한 건 아닌가 싶다. 본인이 좋아하는 음료도 얻을 수 있고, 치즈도 얻을 수 있으니. 이런 영리한 것! 어찌 됐든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슈퍼마켓 쇼핑만큼은 마음껏 할 수 있으니 잘 된 일이다. 특히 일본의 슈퍼마켓에는 재미난 것들이 많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가면 늘 산다는 동전파스를 비롯한 한국인 시리즈들, 다양한 과자들, 한국에서는 비싸서 잘 못 사 먹지만 일본에서는 저렴해서 대용량을 구입한 <오후의 홍차> 등등. 고마워 수인아, 이렇게 재미난 것들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게 해줘서. (이런 긍정적인 생각이야말로 아빠의 필수품이지)


사진 2016. 10. 15. 오후 6 28 10.jpg 노을 대신 즐긴 아메리칸 빌리지의 야경
사진 2016. 10. 15. 오후 6 50 53.jpg "아빠, 여긴 어디냐."


별로 한 건 없지만 한국에서 이동해 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피곤했는지 수인이는 예상외로 금방 잠에 들었다. 서울에서는 보통 오후 늦게 낮잠을 자면 한참 동안 자지 않아서 늘 애를 태웠는데 오늘은 아메리칸 빌리지에서 늦게 깼음에도 불구하고 10시 조금 넘은 시각에 잠이 들었다. 덕분에 우리는 평소보다 여유로운 밤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루의 사진도 함께 리뷰하고, 다음날 일정을 정하고, 맛있는 곳은 없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수인이가 함께 있을 때는 여행에서 굉장히 일상적인 이런 것들을 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생각보다 많이 없다. 때문에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이 참 고맙고 소중하다.


처음 경험한 오키나와, 첫날은 굉장히 좋았다. 수인이가 일찍 자는 건 엄밀히 말하면 오키나와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아무튼 그것도 좋고, 밤에도 쾌적한 숙소도 참 좋고. 이 좋은 기분이 남은 일정 동안에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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