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서의 하룻밤

가볍게 다녀온 영월 여행

by 본격감성허세남

조카의 돌잔치가 있어 전남 여수를 다녀오는 길에 왠지 그냥 서울로 복귀하기가 아쉬워서 영월에 들렀다가 오기로 했다. 국내 여행은 이렇게 충동적으로 언제든지 떠날 수 있어서 좋다. 우리 가족의 해외 여행이 언제는 충동적이지 않았나 싶긴 하지만 국내 여행은 그 부담이 훨씬 덜하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붐비는 금요일과 토요일을 피해 피해 일요일~월요일 일정으로 다녀온 영월 여행은 참 여유로워서 좋았다.


영월은 강원도이긴 하지만 충청북도 제천과 경계를 맞대고 있기에 영월로 향하기 전에 우리가 좋아하는 리솜 포레스트 리조트에 또 들렀다. 숙박을 할 처지는 안 되지만 그곳의 스파만 이용해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곳이다. 특히 수인이가 놀만한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더욱 좋아하는 곳, 역시 리솜 포레스트 리조트는 최고다.


수인이는 물을 참 좋아한다. 아이들은 물을 다 좋아한다고 하지만 수인이는 특별히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집에서 목욕을 할 때도 욕조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난리인 아이니까 워터파크에서는 오죽할까. 11월이라 바깥 날씨는 이미 쌀쌀했지만 그런 날씨를 무시한 채 야외 스파와 실내 워터파크를 여러 번 오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혹시라도 다치거나 할까 봐 같이 놀았더니 어찌나 피곤하던지. 수인이가 잘 노니까 마음은 즐겁지만 솔직히 몸은 힘들다. 휴, 역시 육아는 쉽지 않다. 누가 그랬나, 딸이 잘 놀면 몸도 힘들지 않고 잘 먹으면 배도 고프지 않다고. 그렇지는 않더라.


오후 늦게 영월로 향했다. 제천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이면 된다고 나왔다. 우리가 미리 예약한 곳은 <소소정>이라는 한옥 펜션. 내비게이션을 따라서 가면 쉽게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거의 다 와서 엄청 무서웠다. 근처에 도착해서 내비게이션 안내는 끝났는데 주변에 펜션은 보이지 않는 상황. 표지판이 있긴 했다. 그런데 그 표지판은 논밭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주변은 이미 어둡고 가로등도 없어 길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일단 왔으니 들어갔지만 여전히 주위는 깜깜했다. 꽤 들어가도 계속 안 나오니까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논두렁에 빠지면 긴급출동을 불러야 하나, 돌아서 나가려 해도 돌릴 방법이 없네 등등 여러 생각을 하던 찰나에 오아시스와 같은 불빛을 발견했다. 그 불빛을 따라 어렵게 들어가니 우리의 목적지가 있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우리는 소리를 질렀다.


"이야!"


사고 없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 그리고 눈앞의 펜션이 생각보다 훨씬 더 멋진데서 오는 놀라움이 섞인 그런 감탄이었다. 깜깜한 밤에 불이 켜진 기와집은 그 자체로 그림 같았다.


사진 2016. 11. 6. 오후 7 31 33.jpg 카페로 쓰이는 건물
사진 2016. 11. 6. 오후 7 54 18.jpg 이 방 중에 한 곳을 우리가 이용했다.


여행의 성수기가 지난 늦가을, 일요일 저녁. 투숙객은 우리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용하고 더 좋았나 보다. 수인이는 마당이 좋은지 열심히 뛰어다녔다. 일단 방에 짐을 풀고, 커피나 한 잔 하고자 카페로 향했다.


"고구마도 구워놨으니까 익으면 꺼내서 먹어요."

"어, 먹어도 돼요?"

"그럼요. 귤도 좀 줄테니까 방에 가지고 가서 먹어요."

"우와 감사합니다! 사람이 늘 이렇게 없지는 않죠?"

"일요일은 좀 없는 편이고, 어제까지만 해도 가득 찼었어요. 여름에는 아예 전체를 빌려서 주기적으로 오는 단체들도 있고."


주인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둘러보니 숙소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한옥의 정취를 간직하면서 방 안에 화장실도 있고, 와이파이도 되고, 깔끔한 방이 좋았다. 한눈에 반했달까. 흔한 펜션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고구마도 정말 맛있었다! 이렇게 직접 난로에 구워서 먹는 고구마 참 오랜만이네. 따뜻하게 대해 주시고 고구마도 무료로 주시고 해서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여행은 사람이 없을 때 여유롭게 해야 한다. 그래야 묵는 사람도, 주인도 모두 좀 더 너그러워지니까. 좋다.


한옥이지만 TV도 잘 나오고, 심지어 IPTV를 통해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로보카 폴리>도 볼 수 있었다. 수인이는 신났다. 폴리를 틀어놓고 들썩들썩 춤도 추고, 방 안을 뛰어다니다가 귤도 얻어먹고, 기분이 좋은지 계속 웃기도 하고. 서울에서는 어떻게든 TV도 덜 보여주고 스마트폰도 덜 보여주려고 하는 편이지만 여행에 와서는 우리도 그런 것에 조금 너그러워진다. 수인이도 일탈의 기분을 맛봤으려나. 아무튼 좋은 세상이다. 한옥의 정취와 현대 문물의 편리함을 모두 누릴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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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잠도 잘 잤다. 숙소 참 마음에 든다. 아마도 다음에 다시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숙소 안녕, 친절했던 주인아주머니도 안녕!


둘째 날의 첫 목적지는 시장이다. 영월에 왔으니 맛있는 걸 먹어보자 하고 서부시장으로 향했다. 전부터 말 많이 들었던 닭강정도 맛있었고, 시장은 아니지만 근처의 유명하다는 찹쌀떡과 꽈배기도 정말 맛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메밀 전병이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맛본 형형색색 예쁜 메밀 전병. 원래 가려던 곳이 문을 닫아서 주변에 다른 곳에서 먹었지만 맛있었고 만족스러웠으니 못 가본 것이 아쉽지는 않았다. 역시 시장의 인심! 이맛에 시장에 들르지! 옆에서 수인이는 이것저것 얻어먹으면서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래, 많이 봐라. 이럴 때 많이 보지 언제 보겠니. 여행 끝날 때까지는 일탈 많이 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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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복귀하기 전에 단종 유배지였던 <청령포>에 들렀다. 역사 키드였던 시절, 단종의 이야기를 글로 읽다가 어린 단종의 상황에 감정 이입돼서 탄식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문에 언젠가 꼭 한 번 가봐야지 했던 곳이 이곳 청령포였는데 30살이 넘어서야 드디어 와봤다. 설명을 읽어보니 실제로 여기서 단종이 여생을 모두 보낸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죽었다나. 아무튼 쓸쓸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월요일 오후라 사람이 거의 없어서 더 쓸쓸했는지도 모르겠다.


들어가려면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수인이는 배가 재미있는지 처음에는 잠깐 울더니 금방 익숙해져서 물을 보며 "어, 어"하고 감탄을 내뱉었다. 언제나 말을 하려고 하니. 감탄사를 낸다는 건 좋다는 뜻이겠지? 역사책에서 보던 곳에 실제로 오니 감회가 깊긴 했지만 솔직히 아이와 함께 오기엔, 특히 유모차를 끌고 오기엔 적절치 않은 곳이었다. 배를 타러 내려가는데 유모차를 들고 가야 하고, 배를 탈 때도 접어야 하고, 섬에 도착해서는 깊이 들어가기까지 한참 동안이 자갈밭이라 유모차를 끌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조용하고, 여유도 넘치고, 소나무도 좋고 해서 참 좋았는데 그것이 조금 아쉬웠달까. 그래도 우중충한 하늘 아래 가을이 내린 청령포는 가을 같아서 좋았다. 도심에 있을 때는 잘 못 느끼던 가을이 이곳에 있었다.


사진 2016. 11. 7. 오후 1 16 05.jpg 단종 유배지까지 가려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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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퇴근 시간에 걸리지 않기 위해 서둘러서 서울로 올라왔다. 길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서울까지 거의 3시간 가까이 걸렸다. 300킬로가 넘는 광양까지 3시간 40~50분이면 가는데 200킬로도 안 되는 영월이 3시간 가까이 걸리다니... 제천이나 영월이나 가볍게 여행 다녀오기에 참 좋은 곳인데 교통이 애매해서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않는 것 같다.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다가 오기에 좋은 곳. 특히 월요일이라서 더욱 여유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수인이는 잘 잤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언제나처럼 다시 활발하게 뛰어놀았다. 어쩌면 우리 딸에게는 장소는 중요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든 잘 노니까. 여전히 잘 다녀줘서 다행이다. 다음 여행을 또 꿈꿔도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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