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로 이동
예행연습으로 다녀온 교토 여행을 매우 잘 끝냈지만 솔직히 떠나는 날까지 걱정이 많이 되긴 했다. 수인이 때는 혼자였으니까 그나마 수월했는데 이제 둘이 되니까 그 먼 유럽을 넷이서 잘 다녀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출발이 다가올수록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원영이가 부쩍 크면서 여기저기 배밀이를 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하니 더욱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 되기까지 했다. 그래서 준비를 하면서 특별히 더 신경 쓴 게 비행기와 숙박이었다. 가뜩이나 비싼 바르셀로나와 파리 숙박비를 감안해도 무조건 편히 잘 수 있고 취사도 잘할 수 있으며 공항이나 기차역에서 이동이 그렇게 길지 않은 아파트들을 빌리는 게 1순위, 그리고 긴 비행시간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갈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해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을 구하는 게 2순위. 이윽고 출발 날이 왔다. 우리 가족 4명, 완전체의 유럽 여행 시작.
짐은 줄이고 줄이고 또 줄였다. 어딜 가나 애들은 있고 다들 잘 크니까 부족한 건 현지에서 사면된다. 혹시 모르니 전 일정 준비한 건 원영이의 분유와 기저귀가 전부. 그렇게 해서 수하물 2개와 유모차 1개가 됐다. 여행을 다니면서 매 순간 완벽할 필요는 없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것도 여행을 통한 배움의 하나. 누나도 그렇게 컸으니 원영이 너도 그렇게 크거라. 현지 물 먹고, 현지 과자 먹고, 현지 식재료들 활용해서 밥도 해 먹고. 스페인과 프랑스의 것들을 마음껏 누리고 와야겠다.
비즈니스 클래스는 생각보다 훨씬 더 편했다. 이거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니. 출발 전에는 라운지에서 원영이를 먹이고 기저귀도 갈고 수인이도 먹이고, 이륙 후에는 편하게 누워서 잘 수 있었으니. 우리 가족이 비즈니스 클래스를 탄 건 처음이었는데 자본주의의 힘을 정말 실감했다. 돈 많이 벌어야겠다...
인천에서 바르셀로나까지 약 12시간의 비행. 걱정했던 원영이는 이륙 직전부터 자기 시작하더니 중간에 잠깐 깨서 먹고 놀기도 하며 총 7시간 정도는 잔 것 같다. 스튜어디스가 이렇게 순한 아기는 처음 봤다며 감탄했다. 우리도 이럴 줄은 몰랐어요! 우리 순둥이, 효자. 아빠 엄마의 걱정을 말끔하게 없애 주는구나. 수인이도 잠깐 자기도 하고, 비행기의 엔터테인먼트를 활용해 요즘 꽂혀 있는 각종 만화 노래들(터닝메카드, 헬로카봇, 미니특공대X)을 듣기도 하고, 비행기에 비치된 각종 책자들을 몇 번씩 다 훑어보며 수월하게 왔다. 혹시나 필요할까 봐 유튜브 프리미엄을 가입해서 평소에 수인이가 좋아하는 동영상을 200개가량 다운로드하여 왔는데 하나도 안 봤다. 자기도 기특한지 내리면서 이렇게 외쳤다.
"아빠! 수인이 핑크태삐 하나도 안 봤어요!"
"우와 진짜 잘했어. 하이파이브!"
우리 딸이 좋아하는 컨텐츠를 딱 갖춰놓다니, 게다가 만화는 잘 안 보고 노래만 좋아하는 성향을 어떻게 그렇게 딱 맞췄는지. 칭찬해 대한항공. 여행의 시작부터 느낌이 참 좋았다.
바르셀로나 공항의 입국 과정도 상당히 부드러웠다. 걸어가고 있는데 아이가 있으니 여기로 오라며 바로 줄을 당겨줘서 누구보다 빠르게 입국 심사도 마쳤고, 비즈니스 클래스다 보니 짐도 굉장히 빨리 나왔다. 앱으로 택시를 불러 숙소에 가면서 전화를 해보니 하필 이 날이 카탈루냐 지방의 휴일이라 숙소 체크인을 하려면 멀리 떨어진 사무실로 와야 한단다. 일단 내려서 택시를 또 불러야 하나 하고 걱정했는데 친절한 택시 기사가 기다려 주겠다며 하고 오라고 해서 체크인 후 숙소 이동까지도 순식간에 끝냈다. 바르셀로나 첫인상이 상당히 좋은데? 이렇게 모든 것이 부드러웠던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 숙소도 사진에서 보던 것처럼 쾌적하고 원영이 아기 침대까지 잘 준비되어 있어서 더욱 만족했다. 잠깐 혼자 나가서 마실 물 좀 사 오는데 왠지 피곤하지도 않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긴장의 끈이 풀어지니 비로소 마음도 편안해지고. 잘 부탁합니다 바르셀로나.
한국과 스페인의 시차는 7시간. 한국 시각으로 보면 이미 새벽. 그래도 수인이와 원영이는 조금 놀다가 곧 잠에 들었다. 이제 두 아이가 시차 적응만 잘해주면 그야말로 완벽인데.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커지는 저녁이었다. 지난 2015년, 수인이가 10개월이 지났을 때 왔던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이 생각난다. 그땐 기차역에 딸린 호텔에 묵었는데 처음이라 모든 것이 긴장됐었지. 그 뒤로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여행을 했는지, 덕분에 이제는 크게 불안하지는 않다. 가장 걱정이었던 비행도 잘 마쳤고.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 부부도 많이 나이 들고 변했다. 좋은 말로 보면 성숙해졌다고 할까. 뭐 원영이도 다 잘 이겨내겠지. 수인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남은 것은 편하게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
수인이와의 독일 여행을 마치고 막연하게 혹시 둘째가 생기면 또 유럽 여행을 와야겠다는 이야기를 아내와 함께 했었다. 그때는 둘째 계획도 없었고, 정말 가능할지도 몰랐는데 이렇게 완전체가 되어 다시 잘 왔다. 인생은 어떻게 될지 정말 모르는 법이다. 시작을 잘했으니 남은 기간 동안 욕심 버리고 무리하지만 않으면 아마 큰 문제없이 즐겁게 여행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