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욕심의 결과

그래도 놓칠 수 없었던 오르셰 미술관

by 본격감성허세남

수인이와 함께 여행을 다닌 이후로 실내에서 이뤄지는 어떤 행동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운동 경기는 물론이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조차 알아서 으레 가지 않았다. 쇼핑몰조차 지루해서 금방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니까 오죽하랴. 대신 다른 것들에서 많은 즐거움이 있었기에 아쉽지는 않았는데 파리에 와서는 처음으로 미술관에 도전했다. 그것도 이번에는 2명의 아이나 데리고. 그래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오르셰였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파리에 오면 꼭 봐야겠다고 말한 2가지가 바로 에펠탑과 오르셰 미술관인데 그 2가지 중에 하나이니 무리를 해서라도 꼭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아침부터 오르셰에 도전했지만... 예상대로 역시 무리는 무리였다. 아마 앞으로도 이제 다시는 당분간 미술관에 도전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이날은 출발부터 문제였다. 숙소가 파리 지하철 7호선 근처라 그곳으로 지하철을 타러 갔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파리에서 유모차와 함께 지하철을 타기에 좋은 노선은 오로지 14호선 뿐이다. 그 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그 많은 계단을 유모차를 계속해서 들고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갈아탈 때는 에스컬레이터라도 있지, 바깥으로 나가는 출구엔 엘리베이터가 없다. 아무리 오래된 지하철이라지만 너무하다. 유모차 시설이 잘 되어있던 바르셀로나와 매우 다른 모습. 힘들게 오르셰 미술관 기차역에 도착했는데 엘리베이터가 있길래 "럭키!"를 외쳤지만 고장이었다. 결국 오르셰까지도 유모차를 들고 올라야 했다. 부쩍 큰 원영이가 무거운데 아내는 수인이를 챙겨야 하니 결국 나 혼자서 감당할 수밖에. 파리엔 유모차를 들고 가면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다. 아이와 함께 다니기에 파리는 정말 별로인 도시다.


오르셰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에 짐 검사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아이 있으면 이리 나와서 여기로 서세요." (서툰 영어로)


이런 말을 생수 파는 사람이 우리에게 했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다가 혹시나 하고 나와서 문 앞으로 가봤는데 정말로 줄을 생략하고 바로 들어가게 해 줬다. 파리에서 아이와 함께 다니면서 유일하게 배려받고 기분 좋았던 때가 바로 이때였다. 그 외에는... 더 이상은 생략한다. 우리 부부의 파리에 대한 인상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 때가 바로 이날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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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르셰 미술관의 그림들은 참 좋았다. 나는 2번째 왔는데도 처음보다 감동적이었다. 아마 그동안에 더 많이 알게 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오기 위해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부터 수인이에게 많은 것들을 보여줬다. 명화 전집에 있는 그림들 중에서 오르셰 미술관에 있는 것들을 골라서 많이 보여주고, 엽서로 된 것들도 일부러 오르셰 그림들만 따로 빼서 수시로 보여줬다. 결국 똑똑한 수인이는 대부분의 그림들의 화가와 이름을 외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수인이는 간혹 관심을 보이며 좋아했다. 자기가 아는 그림이 나오니 아빠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피아노 치는 소녀!"

"별 책 그림 보고 싶은데... 후애애앵."


수인이가 매일 밤 자기 전에 보며 좋아했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은 없다면서 울기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빠 엄마가 그림을 좀 자세히 볼라 치면 빨리 움직이자고 난리였고, 금방 지루해져서 "힘들어요."를 반복했다. 원영이는 입장 때부터 자더니 거의 2시간을 잤다. 그리곤 깨서 배고프다며 보챘다. 그 와중에 기저귀도 갈고, 분유도 타서 먹이고, 수인이는 원영이가 자던 유모차를 빼앗아서 본인이 앉더니 잠에 들고, 하필 계단이 있는 일부 구간을 이번엔 수인이를 태운 채로 내가 들고, 원영이는 어쩔 수 없이 아기띠에 계속 안고 다니고, 수인이가 1시간 조금 넘게 잔 후에 일어난 뒤로는 다시 원영이와 바꾸고 수인이는 또 유모차에 앉겠다고 보채고. 정말 이때만큼은 유모차를 하나 더 사고 싶었다. 아니 유모차 스스로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이번에 유럽 와서 자꾸 원영이 것에 앉겠다고 보채니 수인아. 어휴.


그렇게 힘들게 오르셰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꿋꿋하게 끝까지 다 본 우리 부부가 얼마나 대단한가. 이날만큼은 스스로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래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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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이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나중에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뒤에 아내와 수인이가 동네 도서관에 갔을 때였다.


"엄마 책 빌려주세요."

"뭐 빌려줄까?"

"오르셰 미술관 책."

"그건 집에 오르셰 미술관에서 사 온 책이 있으니까 그럼 거기 있는 그림을 그린 화가 책을 빌려줄게."

"폴 고갱?"

"그래. 그리고 반 고흐?"

"반 고흐는 집에 있잖아."

"그래. 그럼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그렇게 지루해하더니 그래도 많이 남긴 남았나 보다. 신기한 녀석.


아무튼 그땐 너무나도 지쳐서 오르셰 미술관에서 나온 후에 곧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조금 쉰 후에 근처 공원 놀이터로 갔다. 첫날 발견한 이후로 마지막 날까지 계속 갔던 바로 그 놀이터다. 이곳이 숙소 근처에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으면 파리에서의 우리의 시간이 훨씬 더 힘들었을 거다. 완벽했던 숙소와 1층의 모노프리 슈퍼, 길 건너의 빵집, 그리고 놀이터. 파리의 좋은 기억은 그 어느 랜드마크도 아닌 바로 이 네 가지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이렇게나 다르다.


우리에게 구세주와 같았던 놀이터


놀이터에서의 수인이는 오르셰에서의 수인이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이렇게 표정이 밝고 활기차다니. 늘 가는 놀이터인데 그렇게나 좋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물 만난 고기처럼 열심히 뛰어다녔다. 덩달아 원영이도 신이 나서 연신 웃어댔다. 덕분에 지켜보던 우리 부부의 얼굴에도 드디어 웃음이 피어났다. 그래, 앞으로 무리하지 말고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야지. 힘든 일을 하면 우리만 손해다.


나중에는 웬일인지 공원 문을 닫겠다며 관리인이 돌아다니면서 나가라고 했다. 그것에 좌절한 수인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지만 그때까지 정말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 종알종알하며 이것저것 참견하며 열심히 놀았다. 심지어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기구에서는 백인, 흑인, 황인 이렇게 세 인종의 아이가 함께 놀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이 나타나면 금방 도망가곤 하던 우리 딸이 웬일일까. 정말 재미있긴 재미있었나 보다.


"흐아앙. 문 닫는데요?"

"응 아저씨가 돌아다니면서 이야기하는 거 보이지? 내일 또 오자."

"네. 흐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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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겐 역시 놀이터지!


숙소로 돌아온 후 아이들은 씻고 금방 잠에 들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에겐 드디어 평화로운 시간이 돌아왔다. 밤 10시경, 조용한 가운데 숙소 창 밖으로 본 노을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잊을 수 없는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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