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희로애락
파리는 참 애증의 도시다. 여행이라는 것이 어느 시기에 가느냐에 따라 다르고,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다르다지만 그 경험이 이렇게나 크게 달라지는 도시라니. 혼자 왔을 때의 파리는 낭만의 도시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꼭 다시 오고 싶은 도시였지만, 아이와 함께 온 파리는 극단적인 도시로 바뀌었다. 특히 이 날은 더욱 그랬다. 희로애락 중 3가지인 '희로락'을 모두 극단으로 맛 본 날. 사실 여행 와서 특별히 슬플 일은 없으니 '애'가 있을 리는 없다. 나머지 3가지 감정은 흔히 있긴 하지만, 이날은 그 3가지가 각각 너무나도 컸다.
숙소에서 아침을 대충 먹고 나간 후 기분 좋게 점심을 먹었다. 스테이크에 디저트까지 나오는 런치 메뉴가 고작 14.9유로! 게다가 맛도 상당히 괜찮았다. 원영이도 함께 나온 바게뜨를 열심히 얻어먹었다. 우리 먹보 아들은 참 잘 먹어서 더 예쁘다.
오후에는 오랜만에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하는 시원하고 여유로운 시간도 보냈다. 유럽에 와서 정말 아쉬운 것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물론 요청을 하면 얼음을 조금 주기도 하고,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같이 주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여름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필요하다. 그나마 바르셀로나에서는 스타벅스라도 많았는데 파리엔 스타벅스가 왜 이리 보기가 어려운지. 게다가 구글맵에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정작 없었던 경우도 두 번이나 됐다. 좀처럼 그런 일이 없는 구글맵이 파리에서만 유독 그랬다. 그래도 이날은 다행히 개선문 근처에서 조금 걸어가서 스타벅스를 발견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수인이는 오렌지 주스를, 그리고 원영이는 옆에서 구경. 미안해, 다음에 먹을 수 있게 되면 많이 사줄게.
에어컨과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조합 덕분에 한결 너그러운 마음으로 카페에 30분 넘게 있었던 것 같다. 잘 먹고, 잘 쉬고, 애들도 잘 놀고.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는 이런 소소한 기쁨이 참 소중하고 좋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참 단순하다. 굳이 큰 거 없이 이런 사소한 걸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오늘의 목표는 샹젤리제 거리 완주, 개선문, 그리고 에펠탑! 지하철을 타고 내려서 샹젤리제 거리 중간에서부터 개선문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내리자마자 디즈니 스토어가 있길래 잠깐 들러서 구경하면서 수인이에게 예쁜 공도 하나 사주고, 걸어가다가 전날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먹었던 라뒤레 마카롱도 또 사 먹으며 여유 있게 샹젤리제 거리를 즐겼다. 거의 다 와서는 수인이의 떼쓰기 3콤보가 다시 발동됐다.
"걷기 싫어요."
"안아주세요."
"업어주세요."
원영이는 유모차에서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런 원영이가 수인이는 얼마나 부러웠을까. 그래도 길 끝에서는 거대한 개선문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개선문! 파리 하면 떠오르는 2가지 중 하나! 역시나 멋졌다. 사진으로만 많이 보던 개선문을 보니 좋은지 수인이도 어느새 떼쓰기를 멈추고 신이 났다. 아이들과 함께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는 건 역시나 포기했다. 이렇게 멋진 것을 아래서 봐도 좋은데 올라가지 않아도 어떠랴.
"우리 무릎 관리 잘해서 나중에 많이 늙기 전에 다시 와서 저기 꼭 걸어서 올라가 보자."
개선문을 떠나며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부디 꼭 지킬 수 있기를.
그리고 대망의 에펠탑! 파리에 온 이유! 유럽의 랜드마크! 샤이오 궁에서 바라본 에펠탑은 멋지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감탄 그 자체였다. 그래, 이거 하나만으로도 파리는 와볼 만하다. 내가 본 사람이 만든 모든 건축물 중에서 에펠탑이 가장 멋지다. 역시나 사람이 참 많았지만 한참 동안이나 바라봤다. 요리조리 피해 가며 가족사진도 찍고. 이런 곳에서는 꼭 가족사진을 찍어야지.
파리에 다녀온 뒤로 아내는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이라는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 원래 파리 곳곳이 배경으로 나오니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수인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함께 보기 시작했지만 아내가 수인이보다 더 빠져버렸다. 그걸 따라서 보던 수인이도 완전히 빠져서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로 그 만화만 본다. 순전히 풍경 때문에 만화를 볼 정도로, 그리고 랜드마크들로만 만화의 배경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파리의 랜드마크는 충분히 멋지다. 특히 샤이오궁과 개선문, 에펠탑이 백미였다.
하지만 졸린 수인이의 짜증이 결국 폭발했기 때문에 곧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 상태를 감당할 수 없어서 우버를 불러서 편하게 왔다. 잠깐 쉬었다가 야경을 보러 다시 오기로 하고. 그때는 그 대가가 그렇게 클지 상상도 못 했지.
계획대로 집에서 10시가 다 돼서야 나섰다. 야경을 제대로 보려면 어쩔 수 없다. 해가 워낙 늦게 지니까. 돌아와서 바로 재울 수 있도록 밥도 먹고 아이들은 미리 다 씻겼다. 에펠탑을 보러 가는 길은 참 좋았다. 시원하고, 버스에 사람도 많이 없고, 충분히 쉰 덕분에 아이들의 컨디션도 참 좋았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는 샤이오 궁이 아닌 반대쪽에서 에펠탑의 야경을 즐겼다. 낮보다 더욱 멋진 에펠탑. 우리 가족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낮에는 짜증을 그렇게 내던 수인이도 완전히 신나서 거의 놀이터에 온 것처럼 표정이 완전히 펴졌다. 하긴 세계의 국기와 랜드마크를 좋아하는 우리 딸이 가장 먼저 안 것도 에펠탑이니 그럴 만도 하겠지. 중간에 에펠탑이 반짝반짝 빛날 때는 그곳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과 우리 가족 모두 함께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아마 그 순간의 기쁨과 아름다운 풍경은 평생 못 잊을 거다.
돌아오는 길은 지옥이었다. 바르셀로나와 파리의 모든 일정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고작 이때의 약 1시간일 정도였다. 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파리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
먼저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12시가 다 된 시각, 지하철에는 뭐 그렇게 사람이 많은지. 플랫폼이 가득 차서 열차를 보내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밖이 아무리 시원하면 무엇하랴.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파리 지하철 내부와 파리 열차 내부가 사람 덕분에 엄청나게 더워졌는데. 우리 부부도 숨이 막힐 정도였으니 유모차에 타고 있던 원영이와 졸리다고 하던 수인이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물론 사람들이 양보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자리 양보는 부담스러우니 우리도 바라지 않지만 최소한 유모차를 탈 수 있는 공간 정도는 비켜줘야 하는 거 아닌가. 유모차가 본인들 몸에 닿는다고 불쾌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필이면 에펠탑은 우리 숙소와 멀어서 한참을 가야 했다. 하필이면.
이렇게 스트레스가 넘치는데 계속해서 유모차를 들고 오르락내리락 하니 힘듦이 배가 됐다. 대체 이 나라의 장애인들이나 애기가 있는 사람들은 지하철을 어떻게 타지? 아예 타지 않나? 아름다운 인도의 모습은 류시화의 책 안에만 존재한다는 말처럼, 파리의 똘레랑스는 홍세화의 책 안에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숙소 근처 역에 내려서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오니 거의 1시가 다 됐다. 너무 힘들어서 말 그대로 우리 모두 방전이 돼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유모차 바퀴에 실이 언제 끼었는지 바퀴마저 헛도는 현상이 발생해서 숙소에 와서도 한참 동안이나 그걸 빼느라 고생했다. 에펠탑 야경은 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