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by 본격감성허세남

출근길에 날씨가 너무 추워서 헤드폰을 꺼내 들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라기보단 순전히 귀마개 대용이다. 근데 또 견물생심이라고 헤드폰을 오랜만에 착용하고 보니 음악이 듣고 싶다.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클래식 선택. 오늘의 선곡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이다. 첫 시작부터 바이올린 독주가 강렬하게 다가오는 바로 그 곡. 순간 주변이 달라진다. 늘 보는 특별할 것 없는 그런 강남대로인데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고, 춥긴 한데 왠지 야외 공연장에 있는 것 같고,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듣는 바이올린 협주곡 선율 때문에 살짝 소름도 돋았다. 이건 추워서 돋는 소름은 아니다 분명히. 다행이야, 이런 음악을 좋아해서.


클래식 음악을 처음 좋아했던 건 아마도 대학생 때였던 것 같다. 바흐의 2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 그 계기였다. 클래식이라는 음악이 이렇게 풍부하고 아름다웠던가? 그 뒤로 이것저것 좋아하는 음악들이 많이 생겼다. 비가 올 땐 브루흐, 봄에는 비발디, 왠지 우울할 땐 라흐마니노프, 언제나 좋은 바흐. 덕분에 순간순간이 전보다 저 반짝반짝 빛났던 것 같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한참 동안 어쿠스틱 콜라보의 '묘해, 너와', 가을방학의 '근황', 양요섭의 '첫눈', 박정현의 '소나기'에 빠져서 한참 동안 반복해서 들었었지. 갑작스럽게 이렇게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취향이 생긴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지! 경험이 쌓이고 쌓여야 취향이라는 것도 생기니까. 그러고 보면 나이를 먹는 건 좋은 점이기도 하다.


옛날에 처음 유럽여행을 갔을 때 탄산수를 처음 마셔보고 엄청난 충격을 먹었었다. 이게 물이라고? 이걸 왜 먹지? 그 후 가장 먼저 배운 독일어가(프랑크푸르트로 갔었다) 탄산 없는 물을 고르는 거였을 정도였으니. 근데 지금은 산 펠레그리노를 주기적으로 시켜 먹는다. 솔직히 한국 탄산수들은 너무 인위적이라 좀 맛이 없고, 페리에는 맛있지만 좀 강하고, 산 펠레그리노가 딱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서 좋다. 염도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적절하고.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마시고 있더라. 이제는 유럽에 가면 다양한 종류의 탄산수가 저렴하게 많아서 좋을 정도니. 여름이나 샤워하고 난 후에 마시는 탄산수는 얼마나 꿀맛인지.


하루하루가 쌓이고, 좋고 싫음이 생기고, 좋은 건 더 좋아하게 되고. 취향이 생긴다는 게 새삼스레 참 기특하다. 역시 나이를 먹는 게 나쁜 것만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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