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기간이라 기본 공제를 챙기다 보니 아빠가 내 부양가족으로 있는 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게 작년 1월. 기본공제 조건에 따르면 사망한 날짜의 전날 기준 연도 공제까지 가능하다고 하니 올해가 마지막은 확실하다. 이렇게 또 하나의 흔적이 사라진다. 1년이나 지났지만 다시 새삼 슬퍼진다. 내년부터 부양가족 목록에 아빠가 없다니... 나라로부터 확인사살받는 느낌이다.
갈수록 사람들과 더 많이 연결되고 그런 만큼 무언가를 더 많이 남기는 세상이다 보니 동시에 지워야 할 흔적들도 그만큼 많다. 핸드폰도 끊기고, 카카오톡에서도 사라지고, 여러 가지 명의들도 변경하고, 이제는 연말정산에서까지. 그럴 때마다 그립고, 살짝 우울해지곤 한다. 오래 아프셨으니 이제는 고생 안 하시겠다 싶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이제 세상에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전에는 상상해 본 적 없는 현실이 더 크다. 죽음을 마주하니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아. 어릴 때는 시간이 영원한 줄 아는 법이니까.
정말 가까운 사람이 처음으로 돌아가신 건 할머니였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늘 우리 집에 함께 사셨고, 심지어 고등학교 때 학교가 멀어서 집에서 나가기 전까지 할머니와 나는 같은 방에서 자기도 했다. 일하러 나가신 엄마와 아빠를 대신해 늘 학교에서 돌아온 날 맞아주신 것도 할머니였다. 그런 분이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펑펑 울었었는데, 그 뒤로도 지금까지도 할머니 생각이 문득 나는데, 아빠는 확실히 할머니와도 다르다. 아무래도 내가 아빠가 되어서인가 보다. 아이들에게 내가 없는 세상이 언젠가 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빠는 우리를 두고 가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정신은 멀쩡하지만 말은 못 하게 되셨기에 더 알 수 없었고 그래서 더 궁금했다. 나는 그때가 되면 무슨 생각을 할까? 아무리 병상에 누워계신다 해도, 날 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은 못 하신다 해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았었는데 이젠 그럴 수 없다. 아무리 모든 사람에게 피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슬픔마저 적어지지는 않더라.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 중에 이 가사를 좋아한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잊혀지나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없던 일이 되나요
수많은 세월이 더 많은 시간으로 덮혀도
변하지 않는 것들 잊혀지지 않는다는 건
시간이 갈수록 아빠의 흔적들은 하나하나 지워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아빠는 더 잊혀지지 않는 것 같다. 잊혀질리가 없지. 가끔 내 핸드폰 속 아빠 연락처를 본다. 거기서 만큼은 아빠가 변하지 않고 계속 예전 모습으로 남아있다. 예전에 나랑 함께 찍었던 그 사진 그대로. 앞으로 나도 계속 늙어 가겠지만 그래도 여기서만큼은 여전히 젊은 모습의 아빠 아들이라 다행이다. 더 이상 전화는 안 되지만 무슨 상관이랴. 나에게는 영원히 그 번호로, 그 목소리로 남아있는 걸. "니 맘대로 해라."라고 자주 말씀하시던 그 목소리가 생각나서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