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당신의 문장의 마지막은 어떤가요?

by driftoralone


잔나비-초록을 거머쥔 우리는


오월의 하늘은


푸르던 날들로 내몰린 젊은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해 본 사람들처럼

꼭 그렇게 웃어줬네.

— 잔나비, 「초록을 거머쥔 우리는」



요즘, 좋아하던 노래의 이 구절을 자주 떠올리곤 한다. 나는 아직 이 노래를 웃으며 듣지 못한다. 어딘가 옛날 라디오를 틀면 나올 것 같은 반가운 리듬에 그렇지 못한 내 마음이 겹쳐져 있기 때문일까.

가끔,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던 노래 한 줄에

문득 멈춰 서게 되는 날이 있다. 사실 지금도, 그 순간들은 나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불쑥 찾아온다. 그 순간들은, 내가 겪는 상황 속 문장들이

끝나는 지점과 닿아 있곤 했다. 같은 문장도 온점, 물음표, 느낌표에 따라

의미나 해석이 완전히 달라질 때가 있다.


혼자서 누군가를 향해 품는 감정은 내 문장 끝에 놓일 부호들을 고르고,

그 결과를 온전히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기대와 현실이 가장 멀어진 지금, 이 세 가지 부호들이 가져다준 감정은 ‘혼란’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내 곁에 머문다.


감정은 결국,

내게 문장 끝에 어떤 부호를 찍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다가왔다.

물음표일지, 느낌표일지, 조용한 온점일지.

혹은 아직은 마침표를 붙이지 못할 문장일 수도 있다.

나는 요즘, 그 부호들을 고르기 전 커피 한잔을 마신다.


오늘 다룰 감정은 어쩌면 한 없이

부정적이고 조금은 아플 수 있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독자들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시럽이 들어간, 달달한 커피 한 잔을 권하고 싶다.

혹은, 이 씁쓸한 감정에 그대로 휩쓸리는

아메리카노도 괜찮겠다.

세상은 가끔,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봄보다

스스로 견뎌낸 계절 끝에 번져오는 푸른빛이

더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온오프가 극단적인 나는,

일상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 자체가

버거울 때가 많다.


그래서 자주 멈춘다.

남들에겐 아무 일도 아닌 순간에도

나는 쉽게 발이 걸리고, 그 자리에서 오래 머문다.


그 덕분에,

앞만 보고 달렸다면 놓쳤을 풍경을 자주 마주한다.

그 풍경 안에서—

나는 그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이게 내가 선택한 오늘의 커피다.

누군가에겐 달달하고, 또 누군가에겐 한없이 씁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혼란 또한 그저 하나의 감정일 뿐이다.

어쩌면 이 짝사랑 자체가

처음부터 ‘혼돈의 카오스’였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처음엔,

‘이 사람을 향한 감정이 정말 온전한 사랑인가?’라는

물음표로 마주했다.

친구가 어느 날 던진 질문 하나 때문이었다.

“나는 이 사람이 온전히 좋아서 이 짝사랑을 지속하는 건

아닌 거 같아. 근데 이것도 사랑인가?”


‘짝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 정의되는 상황들은

그 과정을 뜯어보면,

마치 다문화 사회만큼이나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의 조합일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그 감정 안에서 허우적이다가

잠시 물가로 나와 숨을 고르며 묻는다.

“이건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일까?”

“아니면 외로움, 보상심리, 내 안에서 비롯된 결핍일까?”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물음표에서 시작한 나의 문장의 끝은 온점이었다.

이 온점의 근거는, 내 중심이 생기기 전의 이야기다.

흔들리기 쉬운 시절이었지만

나는 내 인생에서 미래를 그릴 때도

가장 먼저 그를 떠올렸다.

아니, 사실 그는 어떤 순간에서든 일 순위였다.


어쩌면 어린아이가 하는 막연한 말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진심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중심을 알고, 열심히 세우고 있는 지금도

내 목표에 보이지 않는 그가 함께 하는 건 변치 않는다.

물론 이제는 안다.

앞으로의 계획 속에 그가 함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내가 무엇을 하든,

그가 나에게 반응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그런 나를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비워둔 문장의 마지막에 온점을 찍었다.

사랑의 모습은 다양하고, 정답은 없다.

어떤 문장은 아직 끝맺음이 없을 수도 있다.

짝사랑이 혼자만의 감정이라 해도 사람인지라..

그가 내 모든 길 위에 함께 있는 듯하면,

문득 돌아보게 되고, 나 혼자만의 마음을

자꾸 오해하게 된다.


이 짝사랑은 언제 끝나는 걸까.

나 혼자 끝내버릴 수도 있고,

우연처럼 함께가 되어 자연스레 마무리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엔 아직, 전자에 머문다.


그는 내가 본 사람들 중

가장 조심스럽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예전에, 마음만 앞서서 그와 말을 놓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그러다 그가 십 년을 알고 지낸 사람에게도

말을 놓지 않았단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이제 그와 함께가 되기보다,

조금 더 편해지기를 먼저 바란다.

이렇게 중요한 문장의 끝을 비워두는 게,

가끔은 혼란함을 잠재워주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내 온도대로 그를 대했던 날들의 혼란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고민이 될 때면,

그의 온도에 맞춰

아메리카노와 바닐라 라떼를 번갈아 마신다.

그리고 그와 커피 이야기를 나눌,

어쩌면 기약 없는 그날을 조용히 바란다.


사실 커피의 온도나 종류, 마시는 횟수에 정답이란 없다.

나는 그가 마셨던 커피를 따라 마셔보기도 하고,

적절한 날엔 내게 잘 맞았던 커피를

추천해 줄 상상을 해본다.

혹은 그마저 어려운 날엔,

말없이 혼자 기억한다.


그날 내가 마신 커피의 맛, 온도, 습도— 그리고 그날의 나.

이 과정에서도 혼란스러움은 존재한다.

기대하던 날,

같이 마시고 싶은 커피를 준비했는데,

결국 혼자 쓴 맛 만을 느낀 적도 많았다.

그래도 누구도 탓할 수 없다.

나 자신조차도.

이 상황을 수습할 사람은 결국 나뿐이니까.


나는 다양한 역할을 한다.

행복한 가능성을 상상하며 커피를 고르고,

그에게 조심스럽게 권해보기도 한다.

때론 그 커피가 싸늘하게 식어 돌아오지만—

그래도 커피를 고른 나를 다독이며,

‘오늘의 커피’와 그날의 기분을 메모장에 적는다.


그렇게, 닿지 않는 그를 바라보며

하루하루가 쌓여간다.

이 글이 어쩌면, 읽는 이에게는 조금 지치고

혹은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일 수 있다.

그를 사랑하려면 이런 과정을 다 감당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나는 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를 마주한다.

전엔 피곤함을 달래려 마시던 커피였지만,

이젠 그 안에 감정을 녹여본다.

나른한 날엔 일부러 따뜻한 커피를 고르고,

그 나른함을 쫓기보다 껴안아본다.

어느새 감정은 소모되지 않고,

따뜻한 커피처럼 나를 달래준다.

그렇게 혼란은, 나를 흔드는 감정에서

나를 알아차리게 하는 감정이 된다.

커피노트가 쌓일수록,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된다.

내가 뭘 원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그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 사람인지.

혼란은 어느새 안정감으로 바뀌고,

나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실,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그와 커피를 함께 나누고 싶던 마음은

여전히 닿지 않았지만—

내가 선택한 그날의 커피가,

그 가치를 가장 잘 아는 이에게 닿았다는 것.

그 순간, 이 커피는 그저 나 하나로 가득 찼다.


오늘도 문장의 끝에서 고민하고 있는 당신에게,

나만의 커피를 온전히 음미하는 시간을 조심스레 권해본다.

그 커피에서 느껴지는 맛과 온도, 순간의 공간이

어쩌면 당신 안의 감정을 가장 진하게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혼란’이란 세 가지 부호는,

때로는 한 잔의 커피에

조용히 안정을 찾아가기도 한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