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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Nov 13. 2020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아프리카 종단기 6. 르완다

마음 아팠던 고아 마을 방문과 소소하게 보낸 아프리카에서의 생일

모로코에서 남아공까지 100일:
세계일주 200일 차에 모로코를 통해 도착한 아프리카 대륙.
300일 차에 남아공에서 비행기를 타기까지, 딱 100일을 아프리카에서 보냈다.



기세니, 르완다


"나는 길바닥에서 발견됐어. 어머니는 그때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대."


르완다의 첫 목적지가 기세니가 된 것은 순전히 카우치서핑 호스트 엠마누엘 때문이었다. 르완다 일정을 고민하던 중, 그가 기세니라는 키부 호수 옆 마을에 고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우간다에서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엠마누엘은 본인도 어릴 적 르완다 대학살로 인해 부모를 잃고 마을에 버려져 고아원에서 자랐고, 이십 대 청년이 된 현재는 고아들을 돌봐줄 가족을 찾아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최근부터 르완다에서 고아원을 전부 없애고 있어 따로 고아원 설립은 못하고, 마을에 전부 모아서 사는 식이었다.


이 '고아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수십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나오더니 십여 분 내내 노래를 불러주고 박수를 쳐주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당황스러웠지만, 나쿠루처럼 소수 인원이 아니니 하나하나 같이 신경 써서 놀아줄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시내로 내려갈 때 여럿이 내 손에 매달려 맨발로 돌바닥을 걸어가는 게 마음을 쿡쿡 쑤셨다.

수많은 고아들이 모여 살고 있었던 엠마누엘네 마을


엠마누엘은 작은 유치원 겸 초등학교에도 안내해 주었는데, 여기는 대문을 열자마자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며 일제히 "무중구(외국인)! 무중구!"를 외쳤다. 고아들보다 훨씬 활달했던 이 녀석들은 서로 내 손을 차지하려고 다투었고, 머리카락을 만져대고, 품에 안기려고 파고들었다.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다 같이 배운 ABC 영어동요를 힘차게 불러주기도 했다.


일전에 나쿠루의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뭘 좋아할지 충분한 생각을 하고 가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 이번엔 미리 비눗방울과 매니큐어를 사 왔었다. 매니큐어를 발라주겠다고 하자 여자고 남자고 간에 온통 먼저 손을 불쑥불쑥 내밀어 대려고 난리가 났다. 겨우 선생님이 줄을 세운 이후에야 나는 몇십 명의 손톱을 모조리 칠해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무도 바르지 않을, 싸구려 핫핑크색 매니큐어였는데 다들 신기하다는 듯이 손가락을 자랑하며 뛰어다녔다.


푸근한 인상의 교장선생님이 오시자 그분의 손톱에도 나름 정성 들여 발라드렸는데, 나중에 헤어질 때쯤 되자 집에 가서 발톱에도 바르고 싶다며 은근한 눈치를 주더라. 그렇게 나는 교장선생님께 오백 원짜리 매니큐어를 삥 뜯겼다.

손톱 칠하기만을 기다리는 아이들


또 한 가지 특별한 경험이 있었는데, 래퍼 겸 가수라는 엠마누엘의 친구를 위해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것. 전부터 뮤직비디오 출연이 버킷리스트에 있긴 했는데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호숫가에서 조촐하게, 그리고 즉흥적으로 촬영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기억에 남는달까. 하지만 아쉽게도 나중에 파일이 날아가서 이 뮤비가 인터넷에 공개될 일은 다행히도(?) 영영 없을 듯싶다.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하핫...



키갈리, 르완다


8월 25일, 내 생일을 앞두고 고민이 많아졌다. 아무래도 의미 있는 곳에서 생일을 보내곤 싶은데 워낙 면적이 넓고 관광지는 적은 아프리카에서 마땅한 장소를 찾을 타이밍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생일 전날 키부예로 이동해서 아침에 키부 호수를 보고, 수도 키갈리로 곧장 넘어가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수도는 비교적 대도시니 조금 낫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키갈리에서는 소소하고도 아늑한 생일을 보냈다. 엄마가 생일선물로 잡아준 무려 4성급 호텔에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빨래였다. 그동안 카우치서핑을 하는 집마다 물이 부족해 미뤄둔 더러운 옷가지가 한둘이 아니었으니. 근사한 파티 대신 욕조 가득 물을 받고 한참 빨래를 하며 보내는 생일이 그렇게 행복할 줄은 몰랐는데. 간만의 빨래와 목욕 덕분에 기분이 상쾌해지자 한동안 찾기 힘들었던 와이파이에 연결해 약한 신호에도 만족스러운 휴식을 즐겼다. 창밖으로는 달동네 불빛이 은하수처럼 촘촘히 박혀 독특하고 인상적인 야경을 만들어냈다.

객실 창문을 통해 구경한 르완다만의 독특한 야경


르완다는 영화 <호텔 르완다>의 배경이 된 르완다 대학살이라는 아픔을 갖고 있는 나라다. 1994년, 서양 열강의 비합리적인 식민 정책의 결과로 부족 간 충돌이 일어나 약 80만 명에서 100만 명이 살해당한 사건. 영화를 워낙 인상 깊게 봤던지라 대학살 기념관을 방문했는데,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서 사람들이 여전히 지니고 있는 아픔이 생생히 다가와 더욱 충격적이었다. 어떤 남자는 당시 죽었던 소녀의 사진 앞에서 한참을 울다가 사진을 찍고, 또 한참을 울다가 같은 사진을 또 찍는 걸 반복했다. 그 조용한 모습이 너무 큰 울림으로 다가와서 마음이 시큰해졌다. 미국, 유럽 등 서양 강대국의 역사를 배우는 것도 좋지만, 왜 이런 끔찍한 사건은 역사 시간에 배우지 않는 건지. 그래야 비슷한 일이 미래에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텐데. 그리고 그런 과거를 이겨내고 서로 화합을 도모하고 있는 르완다가 새삼 대단해 보이기도.


한 가지 덧붙이자면 대학살이 일어난 지 불과 10여 년밖에 안 지났는데도 르완다는 폭풍 성장을 겪고 있다. 르완다에 들어서면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확연히 다른 광경이 보이는데, 바로 쓰레기가 길가에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현재 대통령이 거의 독재 가까운 정치를 하고 있는데, 쓰레기를 버리면 무지막지한 벌금을 물게 하였고 입국 시에도 철저한 짐 검사를 통해 비닐봉지는 전부 압수해 간다. 나는 운이 좋았던 건지 나만 검사받지 않았지만. 또한 우간다에서 애용했던 오토바이 '보다보다' 역시 여기서도 대표적인 교통수단인데, 차이점은 탑승 시에 기사들이 무조건 헬맷을 건네준다. 이런 사소한 부분들로부터 르완다가 환경이나 안전에 얼마나 신경을 쏟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몇 년 후엔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기대가 많이 되는 나라.

영화 <호텔 르완다>의 실제 배경이었던 밀 콜린스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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