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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Nov 17. 2020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아프리카 종단기 8. 잠비아

이틀이나 연착된 열차, 도착역 노숙, 기대에 못 미친 빅토리아 폭포

모로코에서 남아공까지 100일:
세계일주 200일 차에 모로코를 통해 도착한 아프리카 대륙.
300일 차에 남아공에서 비행기를 타기까지, 딱 100일을 아프리카에서 보냈다.



타자라 열차


다르에스살람에서 푹 쉰 후 잠비아로 가는 타자라 열차에 탑승했다. 아프리카의 시베리아 횡단열차라고 불리지만 1등석을 탔는데도 시설은 조금 열악했다. 바퀴벌레가 많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내 칸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다만 중간에 기차가 예고 없이 멈춰버리는 일이 있었는데, 그 덕에 이틀이나 연착되어 3일 일정이었던 기차여행이 5일로 불어나 버렸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모르고 현금을 조금밖에 안 챙기는 바람에 하루는 쫄쫄 굶기도. 게다가 열차 안엔 3일 치 물밖에 없었는지 마지막엔 단수가 되어버렸다.


기차 안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내 칸에만 해도 일본인, 케냐인, 영국인이 타고 있었고, 식당칸에서는 잠비아인도 많이 보였다. 일본인은 탄자니아로 파견 나온 내 또래의 봉사단원이었는데, 바나나를 한 무더기 사 갖고 타서는 열차가 정차할 때마다 밖에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던져주곤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열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신비했다. 저녁에는 아프리카의 유독 커다란 태양이 노을 지는 모습이 아름답게 비쳤고, 교과서에서만 보던 화전식 농업이 곳곳에서 행해지는 장면도 적나라하게 보였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밤에 정차했을 때 하늘에 끝없이 펼쳐진 별들을 올려다보던 것. 시베리아에서 본 것 다음으로 많은 별들은 추위에 떠는 나를 바깥에 붙잡아둘 만큼 아름답게 빛났다.

갑작스레 정차한 후 떠날 기미가 없자 이 틈을 이용해 인생 사진을 찍었다



뉴카프리음포시, 잠비아


이틀 연착된 타자라 열차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종착지인 뉴카프리음포시에 도착했다. 루사카로 가는 버스는 당연히 없을 시간. 밖에 돌아다니기도 위험하고, 승객 전원이 역 안에서 단체 노숙을 청하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해가 채 뜨기도 전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따라가, 시내에서 루사카행 버스를 잡으려고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버스는 잘 다니지 않고 택도 없이 비싼 택시 기사들만이 흥정을 시도할 뿐. 일본, 네덜란드 등 각지에서 온 다른 여행자들과 합세하여 간신히 버스를 찾을 수 있었다.

기차역에서 다른 사람들과 노숙을 청하는 중



루사카, 잠비아


수도 루사카의 카우치서핑 호스트 조나단은 사업을 3개나 운영하고 있는, 그 지역에서 상당히 부유한 사람이었다. 그의 두 아들은 중국 재단의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며, 멋들어진 교복을 입고 아침저녁으로 전용 기사의 픽업을 받았다.


뭐랄까, 아이들은 누구나 귀엽지만, 그동안 봐왔던 고아들과 비교될 정도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 꼬마들을 보며 현실이 조금은 씁쓸했달까.


아이들이 잠들면, 조나단과 그의 집에 장기간 머물고 있던 또 다른 카우치서퍼와 함께 와인을 마시곤 했다.


"케냐 여권은 아프리카에서 8위를 기록할 정도로 파워가 세다고."


"아니야, 잠비아 여권으로 더 많이 갈 수 있어. 검색 좀 해봐."


그 서퍼는 케냐에서 온 여자였는데, 그녀와 조나단은 각자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한껏 표출하며 끝없는 언쟁을 해댔다. 이웃 나라와 유치하게 경쟁하는 건 전 세계 어디나 똑같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여권 파워 세계 3위인 한국인은 그저 지켜만 볼 뿐.

전용 기사의 차 안에서 잠든 아이들



리빙스톤, 잠비아


리빙스톤으로 내려가서 마주한 빅토리아 폭포.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라서 기대를 은근 많이 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이 건기라서 볼 수 있는 건 쫄쫄쫄 빈약하게 흐르는 물줄기와 수많은 개코원숭이밖에 없었다.

전망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개코원숭이들


이 즈음이 여행의 고비였던 듯하다. 잘 풀리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었던 데다가, 딱히 '우와~' 할 만한 볼거리도 없었다. 성당, 궁전, 박물관에 진절머리가 난 이후로는 '관광'보다 '체험'을 더 좋아하게 된 나이지만, 아프리카에서 들른 많은 도시들은 유럽 관광지처럼 볼거리가 많은 게 아니라서 카우치서핑을 제외하면 하루하루가 무뎌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빅토리아 폭포에 상당히 기대를 걸고 왔는데, 그런 게 다 부질없어진 기분이랄까.

천지연 같은 모습에 실망스러웠지만 일단은 신나서 찍음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다가 웬 개코원숭이한테 과일주스를 강탈당했다. 몰래 옆으로 다가와 반쯤 열린 가방에서 빼내 간 것. 멀리 덤불 사이로 도망가더니 맛있게도 마시더라.

나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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