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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Nov 19. 2020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아프리카 종단기 9. 짐바브웨

드디어 제대로 본 빅토리아 폭포, 이후 레게머리 찾아 삼만 리

모로코에서 남아공까지 100일:
세계일주 200일 차에 모로코를 통해 도착한 아프리카 대륙.
300일 차에 남아공에서 비행기를 타기까지, 딱 100일을 아프리카에서 보냈다.



빅토리아 폴스, 짐바브웨


세계 3대 폭포인 빅토리아 폭포는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에 걸쳐 있다. 대부분은 잠비아에 소속되어 있지만 더 예쁜 광경은 짐바브웨에서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짐바브웨는 그 외에 딱히 볼 게 없기도 하고 비자비가 추가로 더 들어가니 대부분은 잠비아 쪽만 보고 돌아간다고 한다. 나는 잠비아에서 본 폭포가 너무 실망스러웠던 나머지 급히 일정을 수정하여 결국 비자비를 더 내고서라도 국경을 넘어 짐바브웨로 갔다. 그리고 이 선택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한 것 중 하나였다.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폭포는, 우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콸콸 멋지게 쏟아지고 있었으니. 물이 하도 많다 보니 무지개가 여기저기 끊임없이 떠 있는 곳이었다. 건기에도 이 정도로 멋진데, 우기엔 꼭 다시 와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좋았던.

무지개를 배경으로 빅토리아 폭포에서


빅토리아 폭포에서는 래프팅도 난생처음으로 도전해봤다. 오랜만에 100불이라는 거금을 쓰게 됐는데, 처져가던 여행에 좀 더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일환이었다. 번지점프와 래프팅 중 고민하다가 긴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래프팅을 택했는데, 아마 전 세계에서 이만큼 스릴 넘치는 코스는 없지 않을까 싶다. 잠비아의 리빙스톤에서 만난 호스트 케이제이가 래프팅 가이드였는데, 그의 바쁜 일정 탓에 우리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하다가 마지막 밤에서야 내가 래프팅에 도전하려고 한다는 걸 말해줄 수 있었다. 그는 못내 아쉬워하며 어떻게든 스케줄을 잡아주려고 했으나 가격이 너무 비싸서 그냥 짐바브웨에서 거의 반값에 하기로 결정했다.


"잠비아나 짐바브웨나 래프팅 코스는 똑같아. 하지만 너는 짐바브웨에서 하면 크게 후회할 거야. 최고의 래프팅 가이드인 나와 함께하지 못할 테니 말이지."


케이제이는 으스대며 말했지만, 반전으로 짐바브웨에서 한 래프팅은 세계 최고로 재미있었다. 우리 보트는 굉장히 능숙한 가이드를 만나서 단 한 번도 뒤집어지지 않았다.

이 사진과 같은 코스이긴 하지만 1인용은 아니고 7~8명이 한 보트에 타고 가이드와 함께 가는 식이었다


짐바브웨는 여러모로 특이한 곳이었다. 아니, 사실 빅토리아 폴스만 워낙 관광지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거의 유럽풍 나는 깨끗한 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고, 가격도 리빙스톤보다 월등히 비쌌으며, 모두들 영어도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할 줄 알았다.

잠비아 쪽 폭포와 확연하게 비교되는 스케일


그러다가 불라와요로 가는 내 인생 최악의 기차에 탑승해서야 다시금 깨달았다. 아, 아프리카는 아프리카구나.

기차를 타기 전까진 미소를 잃지 않았던 나



불라와요, 짐바브웨


짐바브웨에서 빅토리아 폴스만 보면 너무 관광지인 모습만 알고 갈 것 같아서, 제2의 도시인 불라와요로 향했다. 보랏빛 꽃나무가 9월, 10월에 만개한다는 이 도시에서는 카우치서핑을 통해 정말 로컬적인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얼마나 관광객이 없으면 길거리를 지나다닐 때마다 온 마을의 아이들이 빤히 구경하는 곳이었다.


호스트 놀리지와 그녀의 남편 템비는 짧은 기간 동안 여러 가지로 신경 써 주었다. 이를테면 화폐가치가 폭락해 버려 이제 미국 달러를 쓰는 짐바브웨에서는 ATM으로 돈을 못 뽑는다는 것과, 달러가 귀해서 50불 이상을 '본드'로 교환하면 값을 더 쳐 준다는 것 등. 마지막에는 기념 선물이라며 이젠 기념품이 되어버린, 가치 폭락 당시의 이십만 불 지폐를 건네주기도 했다. (길거리에서는 10조, 100조 달러 지폐도 심심치 않게 판다) 

불라와요의 트레이드 마크, 보랏빛 꽃나무


"레게머리 땋아주는 곳을 꼭 찾아줄게. 아프리카에서밖에 못 해보는 체험이잖아. 그러니까 네가 꼭 해봤으면 좋겠어."


이곳의 기억이 정말 특별했던 건, 에티오피아에서부터 벼르고 벼르던 레게머리를, 미용실도 아닌 옆집 현지인에게서 받았다는 것. 아프리카에서 일정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이곳을 떠나면 더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놀리지에게 할 만한 미용실을 아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머리 땋을 가격을 알아봐 주었는데, 이곳에서는 레게머리가 큰 유행이 아닌지 적당한 가격에 해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계속 허탕을 치자 내가 괜찮다고 만류하는데도 그녀는 꼭 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우겼다.

놀리지의 노력으로 성사된 레게머리 땋기


그러다가 옆집에 사는 아만다가 레게머리를 하고 있어서 7달러에 똑같이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몇 시간씩 머리를 땋으며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건네던 그녀는 남편 없이 홀로 갓난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내가 나이를 물어보자 그녀는 웃으며 말해주기 싫다고 답했다. 생각보다 너무 어려서 벌써부터 미혼모인 자신을 이상하게 볼 것 같다고. 조금 지나자 그녀는 결국 19세라고 순순히 털어놓았다. 한국에선 휴대폰이 얼마냐고 물어보길래 신제품은 900달러 정도라고 대답하자, 여기선 100달러인데도 한 달치 월급 수준이라 절대 못 산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그녀는 내 머리를 만지며 어떤 약품을 써야 이 정도로 기를 수 있냐고 물었다. 어리둥절해진 내가 그냥 자연스레 기른 거라고 대답하자 또 깜짝 놀라면서 축복받았다며 부러워하곤 했다.

보라색 브릿지가 인상적이었던 아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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