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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Nov 24. 2020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아프리카 종단기 10. 레소토

레소토의 이주민 필리핀 가족, 그리고 세계 최고난도 포니 트레킹

모로코에서 남아공까지 100일:
세계일주 200일 차에 모로코를 통해 도착한 아프리카 대륙.
300일 차에 남아공에서 비행기를 타기까지, 딱 100일을 아프리카에서 보냈다.



마세루, 레소토


불라와요에서 남아공을 거쳐 곧바로 레소토로 넘어갔다. 남아공에 완전히 둘러싸인 이 가난하고 작은 나라는 볼거리가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그저 지형적 위치 때문에 호기심이 동해 들르게 된 곳이었다. 느리디 느린 밴을 타고 도착한 이 곳은 온 나라가 사진처럼 양과 밭, 언덕으로 둘러싸인 자연 그 자체였다. 수도인 마세루조차도 도시 같은 느낌이 크게 없는 탓에 가난한 나라라는 티가 팍팍 났다. 여행자는 더더욱 없어서, 대형 마트에 가도 현지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 일쑤였다.


나라가 작아서 그런지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참 찾기 힘들었던 레소토. 원래는 최대한 현지인과 머무는 것을 선호하지만, 오죽 호스트가 없었으면 이번에는 필리핀에서 가족 전체가 이주해 온 닌요네 대가족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커다란 집에 닌요의 부모님, 형제 자매, 조카들까지 전부 모여 사는 곳이었다.


닌요는 내가 레소토에서 갈 만한 장소를 이곳저곳 물어보자 아무것도 볼 게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카우치서핑 호스트가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에 자부심이 없는 건 정말 보기 드문 일인데, 그는 아무래도 번화하지 않은 시골에 살며 심심해서 오만 정이 다 떨어진 듯했다. (그리고 조금 돌아다녀 본 결과 정말 별 게 없기도 했다) 그의 낙은 이따금 남아공의 대도시로 나가 밤새도록 노는 것이었다. 

레소토 말레알레아의 끝없이 펼쳐진 자연 광경


"신라면?! 이거 필리핀에서 엄청 인기 많아. 한국 라면으로 매운맛 참기 대결도 하고 그러는걸."


닌요의 가족이 매일같이 푸짐한 아시아 음식으로 대접해주고 여기저기 태워다 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케냐에서 구했던 신라면을 끓여주겠다고 꺼냈더니,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의 귀여운 조카는 국물도 없이 면만 가져가 먹는데도 맵다며 연신 호들갑을 떨었다. 그동안 다른 현지인 호스트들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보던 라면이 드디어 인기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불라와요의 호스트 놀리지만 해도 애초에 음식에 '국물'이라는 게 있다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으니. 아시아계 사람들과 만나면 이런 부분에서 확실히 공감대가 많이 형성된다.

국물 다 뺀 신라면을 먹으면서도 맵다며 헥헥거리던 닌요의 조카



말레알레아, 레소토


그래도 레소토에서 유명한 게 있다면, 곳곳에서 할 수 있는 포니 트레킹이었다. 뭔가 꼭 해야 한다고들 하니까 마음이 동해버렸고, 포니 트레킹이 가장 유명한 말레알레아로 가서 도전해봤는데, 확실히 내가 여태껏 해본 승마 중에 가장 험난한 코스로 다녀서 스릴 있었다. 돌로 된 오르막길을 말에 탄 채로 올라가는 걸 보며 말발굽이 부러지지나 않을까 가슴을 졸였는데, 어찌어찌 잘만 가더라. 마지막에 비가 오기 시작하자 험한 길 위에서 빠르게 달리기까지.

말레알레아 포니 트레킹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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