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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Jan 04. 2021

무작정 떠난 쿠바 여행 1. 첫인상

2018년 여름, 나의 가장 뜨거웠던 추억 이야기


'아, 여기가 진짜 쿠바구나-'

공항을 나서자마자 후덥지근한 열기가 나를 덮쳤다. 이미 익히 들어 예상은 했었던 색색깔의 올드카들은 막상 실제로 보자 비현실적인 신비함을 더했고, 나는 지금 쿠바에 있음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2018년 당시,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택시로 25달러였다. 로컬 버스로는 1.6센트(약 17원). 어김없이 저예산 배낭여행을 택한 나는 당연히 버스를 이용할 심산이었다. 쿠바인들만 바글바글 모여있던 정류장에 외국인이라곤 나 혼자뿐이었고, 자연스레 수많은 눈들이 나에게로 향했다.



잠시 기다리자 시내로 가는 P12번 버스가 도착했다. 줄줄이 탑승하는 사람들 맨 끝에 따라붙은 나는 기사에게 동전 여러 개를 쥔 손을 펴보였다. 버스비는 0.40모네다(현지 화폐, =1.6센트). 내 손에 있던 건 5센트짜리 동전 세 개와 50센트짜리 동전 하나. 기사는 뻔뻔하게도 50센트짜리 동전을 태연히 집어가서는 잔돈조차 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는 탓에 나는 동전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한 참이었고, 복잡한 쿠바의 이중 화폐 계산법에 아직 적응하기도 전이었다. 그렇게 나는 25명분의 버스비를 내고 탑승한 셈이 되었다.



버스에 있는 내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울컥했지만, 사실 25달러 대신 50센트로 시내까지 가게 된 건 어찌 됐건 이득이었고, 미리 준비하지 못했던 내 탓을 할 수밖에 없었다. 썩 달가운 시작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의 첫인상은 이렇게 나쁜 쪽으로 굳어지지는 않았다. 스페인어도 못하는 동양 여자애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선한 사람들 덕분에.



나중에 다시 묘사하겠지만, 쿠바의 로컬 버스를 타는 건 사실 엄청난 고역이었다.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그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무거운 배낭과 보조가방을 들고 서 있자니 머리가 핑 돌았다. 버스를 가득 채운 쿠바인들이 나를 흘끔흘끔 곁눈질하는 게 느껴졌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자리가 비어도 어차피 노약자에게 양보하는 게 문화라고 언뜻 들어서 선뜻 앉지 못하고 쭈뼛쭈뼛하는 나를 보았는지, 어떤 여자가 내리면서 자기가 일어난 자리에 날 끌어다 앉혔다.

그 외에, 버스에서 내려 숙소를 찾아 헤맬 때 문 앞까지 데려가 벨을 눌러준 길거리의 청년도, 영어를 전혀 못하는데도 꾸준히 환한 미소를 띠고 이것저것 설명을 해 준 숙소 주인아줌마도. 이런 현지인들의 따뜻한 환대에 쿠바의 첫인상은 마냥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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