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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Jan 06. 2021

무작정 떠난 쿠바 여행 3. 첫 쿠바 친구, 대니

쿠바인들의 월급은 얼마나 될까?


“내 월급이 얼만지 맞춰 봐.”

만난 지 1시간도 채 안 됐는데 대니는 민감한 질문을 꺼냈다. 괜히 어설픈 추측을 했다가 실례가 될까 봐 망설이는 나를 보며 대니가 흥미롭다는 듯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나는 정부 소속 기자야. 얼마 정도 벌 것 같아?”

내가 소심하게 아무 숫자나 제시하자 대니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씁쓸함을 감췄다.

“한 달에 25달러야.”

“…”

“그래도 정부 소속이니 이 정도 받지. 더 못 버는 사람도 있어.”

“더 못 버는 직업은 뭔데?”

“교사나 의사? 진짜 돈을 잘 버는 직업은 까사(민박) 주인이나 택시 기사야.”



그는 내가 2달러짜리 저녁을 주문해 먹는 동안에도 그 어떤 메뉴도 시키지 않았다. 밖에서 사 먹는 건 너무 비싸다며. 그는 부업으로 투어 가이드로 일하고 있었다. 워낙 월급이 적으니 웬만하면 다들 직업을 두 개씩 갖고 있단다. 우습게도 세 개부터는 불법인데, 대니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몰래 바텐더까지 세 탕을 뛰다가 탈진할 뻔했다고. 지금도 저녁까지 투어 가이드로 일하고 친구들이나 나 같은 여행자들을 만나 늦게까지 놀고 나면 두세 시간밖에 못 자며 생활한다고 했다.

“괜찮아, 그래도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면 즐거워서 안 피곤하거든. 다만 온종일 영어로 가이드하고 나서 또 영어로 대화하려니까 말이 잘 안 나오긴 해.”



대니는 나에게 쿠바를 제대로 알려준 첫 현지인이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그를 만난 건 정말이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제 뭐 할래?”

“그냥 평소에 쿠바인들은 뭐하고 노는지 보고 싶어.”

그는 내 대답에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나를 오토바이 뒤에 태웠다. 올드 아바나를 벗어나 한참을 달렸다. 이미 열한 시가 넘은 늦은 시각이라 길가엔 불빛 하나 없었고, 불안감에 슬쩍 지도 앱을 켜 보니 시내와는 멀찍이 떨어진 주거지역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문득 두려움이 스쳤다. 나는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을 뭘 믿고 인터넷도 안 되는 곳에서 오토바이 뒤에 타고 있지? 이렇게 깜깜한 곳에 딱히 어디 갈 만한 곳이 있을 리 없는데. 타고난 겁쟁이에 걱정쟁이인 이다예의 머릿속엔 이미 온갖 공포소설이 써지고 있었다.

마음을 다잡고 몇 시간 안 되지만 내가 봐온 대니를 돌이켜보았다. 도착하기 전부터 쿠바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주던 사람. 세상 선한 미소를 활짝 머금고 대화하던 사람. 내가 필요로 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 한 사람. 돈을 많이 들고 다니면 잃어버릴 수도 있다며 최소한의 금액을 제외하곤 놓고 나오라고 다시 숙소 앞에 데려다준 사람.

그래,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애초에 귀중품을 두고 나오라고 하지도 않았겠지.

나는 자유로운 영혼인 것 같아도 사실 뼛속까지 소심한 A형이라 특히 카우치서핑과 같이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만나야 할 때는 굉장히 신중해진다. 조금이라도 의심 가거나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다 걸러내고 고르고 골라 만난 사람이 대니였다. 그런 사람이 구경시켜주겠다고 오토바이까지 끌고 나와서 애쓰는데 나는 의심이나 하고 있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걱정이 많아도 한 번 믿기로 결정한 사람은 끝까지 믿기. 그게 내가 여행을 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끈끈한 우정을 쌓는 방법이었다.

생각을 하는 사이 대니는 이미 오토바이를 세우고 내가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아무것도 없는 듯한 어두컴컴한 건물들 사이, 2층에 홀로 환하게 빛나는 근사한 칵테일 가게가 있었다.



한 잔에 2달러밖에 안 하는, 내 인생 가장 맛있는 칵테일을 마시며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 이야기, 가족 이야기… 서로 이런저런 사진을 보여주며 웃음꽃을 피웠다. 조금 후 대니는 아바나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인 Fabrica de Arte Cubano에 데려가 주겠다고 제안했다. 클럽과는 영 맞지 않는 나였지만, 쿠바의 밤 문화엔 관심이 동했다. 특히 저곳은 미술관과 클럽, 영화관이 합쳐진 아바나의 명물이었다.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길었다. 이대로는 2시간은 꼬박 기다리겠구나 싶어 포기하고 돌아가려던 찰나, 대니는 그 클럽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근처에 산다는 그 친구는 5분 만에 달려 나오더니 클럽 직원들에게 언질을 주어 우리를 바로 들여보냈다. 현지인과 함께 다니면 역시 이런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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