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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Jan 07. 2021

무작정 떠난 쿠바 여행 4. 대니가 들려준 현지 이야기

올드카, 북한, 선거, 결혼, 그리고 한국 드라마에 관하여


다음 날 또 만날 줄 알았던 대니는 담당 투어 그룹의 사정으로 급하게 나와의 약속을 미뤘다. 우린 결국 일요일에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두 번째라고 한결 더 편해졌는지 그는 농담 따먹기를 즐겼다. 내가 한국 남부(=경상도) 출신이라 가족끼리 감정 표현을 많이 안 한다고 언급한 걸 갖고, 내가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면 “스카이, 네가 한국 남부 여자라서 그러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센 척 좀 그만해.”라고 놀린다든가, 이전에 한국인을 만난 적이 없냐는 질문에 “오, 물론 한국 남부 여자는 만나본 적이 없지.”라고 대답하는 식의 장난을 던지곤 했다.


우린 어김없이 칵테일을 마시다가 말레꽁 해변 도로에 앉아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그 사이 혼자 아바나를 돌아다니며 온갖 궁금증이 쌓인 나의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다.

“그… 진짜 바보 같은 질문인데, 인터넷이 안 되면 날씨는 어떻게 확인해?”

내 물음에 대니는 눈물이 날 정도로 웃어댔다.

“하루에 다섯 번 방송하는 TV 뉴스를 통해 확인하지. 그게 아니면 창문을 열고 하늘을 봐.”

“아… 그럼 다음 주 날씨는 알 길이 없겠네?”

“굳이 알아야 하나?”

나는 이미 쿠바의 일주일치 날씨를 구글링 해보고 동선을 짠 상태였다. 내가 아는 쿠바의 날씨 예보를 쿠바인들은 모른다는 게 괜히 이상했다.

“쿠바엔 올드카가 많잖아. 물론 새 모델도 종종 보이지만? 그게 최신 모델이 너무 비싸서 다들 결국 올드카만 사는 거야?”

“올드카도 엄청 비싸. 한 2만 달러? 기아자동차는 7만 5천 달러 정도. 한 달에 25불 벌어서는 둘 중 아무것도 못 사. 돈 많은 택시 기사들만 사는 거지.”



“북한 사람은 본 적 있어? 쿠바랑 친하잖아.”

“사실 나 대학교 때 북한 학생이 두 명 있었어. 엄청 똑똑했어, 스페인어를 전혀 못 했는데 독학해가며 수업을 들은 걸 보면. 근데 맨날 술 먹고 파티하더니 환송된 것 같더라.”

“아, 쿠바인은 흑인도 백인도 혼혈도 다 포함하잖아. 혹시 인종차별은 없어?”

“음… 일반인끼리 어울릴 땐 없어. 그렇지만 결국 정치가나 대기업 대표를 보면 전부 다 백인이야.”

“하지만 공산주의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쿠바는 공산주의가 아니야.”

대니는 딱 잘라 말했다.

“그건 이상적인 이론에 불과해. 여기서도 부자 동네에 가면 널린 게 벤츠인걸.”

“선거는? 투표할 수는 있지?”

“선거는 필수야. 특히 나처럼 정부 소속이면 투표를 했는지 안 했는지 다 검사하거든.”

“그러면 어느 정도 민주주의가 있는 거네.”

“그럴까? 후보가 늘 한 명 밖에 없는 걸.”

“...쿠바 사람들은 이게 부당하다는 걸 알아?”

“하하하, 그게 무슨 소리야. 쿠바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 가질 시간이 없어. 하루 종일 애도 봐야 되고, 요리도 해야 하고, 버스도 타야 하잖아. 나야 정부를 위해 일하니까 자세히 알고 있지만, 길거리 일반인들을 붙잡고 물어보면 아무도 네가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를 거야.”

“그래도 쿠바 와서 보니까 생각보다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느꼈는데…”

“술에 관해선 엄청 관대해! 이렇게 노상 까도 아무 말도 안 하고. 대신 술 빼고 모든 면에선 정부가 통제하지. 정치적으로 비난하는 발언을 하는 건 불법이야. 그래도 에어비엔비도 불법이다가 가능해지고, 점차 변하고 있긴 한 것 같아.”



“쿠바에선 결혼도 비싸서 많이 안 한다고 들었어.”

“맞아. 그리고 그나마 결혼하는 사람들도 고부갈등 때문에 많이들 이혼해서, 쿠바 이혼율이 중남미 1위야. 보통 여자가 남자 가족네 집에 그냥 들어와 살게 되는데, 이혼해도 재산 분할 같은 것 없이 그대로 나가야 해.”

이어지는 심각한 이야기에 마음이 울적해졌다. 대니는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또다시 환한 미소를 띠며 화제를 돌렸다.

“아, 재미있는 거 하나 알려줄까?”

“뭔데?”

“한국 드라마가 쿠바에서 완전 인기가 많거든. 이민호 하면 다들 껌뻑 죽어.”

“와, 인터넷이 잘 안 되는데 드라마는 어떻게 봐?”

“이건 비밀인데, 미국이 쿠바랑 가까이 위치해 있잖아. 그래서 정부에서 미국 시그널을 훔쳐와서 미드나 한드를 TV로 시청할 수 있어.”



어느덧 새벽 두 시가 되었다. 늦게까지 말레꽁 근처에 주르르 늘어앉아 수다를 떨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집에 갔는지 주변이 이미 고요했다. 대니는 어김없이 숙소 앞까지 날 데려다주고는 작별인사를 했다.

“다음에 또 봐!”

아쉽게도 그게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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