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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Jan 08. 2021

무작정 떠난 쿠바 여행 5. 캣콜링, 그리고 알렉스

쿠바 남자들의 과도한 캣콜링 속 맺어진 인연

“곤니찌와!”


또다시 들려오는 거슬리는 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거리 맞은편 작은 집 창문에 팔을 얹고 기댄 껄렁껄렁해 보이는 남자가 씩 웃음 짓고 있었다. 니하오, 곤니찌와는 밖에만 나오면 숱하게 듣는 말이라 가볍게 무시하곤 하는 나였지만, 이번엔 그새 스페인어에 재미를 붙여서였는지는 몰라도 굳이 그 말을 받아쳤다.


“쏘이 꼬레아나(난 한국인이야).”


“아~ 꼬레아나?”


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나보고 이리 건너오라며 손짓했다. 알렉스와의 첫 만남이었다.



쿠바의 캣콜링은 심하다면 심하다. 태어나서 예쁘단 말을 하루에 가장 많이 들은 곳이 바로 쿠바일 테니까.


처음에 공항에서 시내로 버스를 타고 올 때도 웬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목례를 하고 손에 입을 맞추는 행동을 자꾸 반복했는데, 나중에 대니에게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음, 네가 쿠바 남자들에 대해 꼭 알아둬야 할 게 있어. 그건 바로… 여자만 보면 작업을 거는 습성이 있다는 거야. 특히 동양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해. 쿠바 여자들은 심지어 아예 이어폰을 꽂고 다녀. 작업 멘트 듣기 싫어서.”



해질녘 즈음 말레꽁 해변 도로로 나가 산책을 하면 과연 열 걸음에 한 번씩 낯선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대곤 했다. 어떤 사람은 한국인 친구가 있다며 “안녕하세요”하며 말을 걸어오기도. 시내를 구경하다 보면 뜬금없이 셀카를 찍고 있는 쿠바 남자들도 종종 보이는데, 이들은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접근해서는 어김없이 그 후에도 말을 붙이려 했다. 단골손님처럼 따라붙는 문구는 “살사 출 줄 알아? 내가 가르쳐 줄까?”였다.


바라데로에 있을 땐 와이파이를 찾느라 돌아다니다가 어떤 작은 호텔 경비원에게 길을 물었는데, “남자친구 있어?” “혹시 쿠바인 남자친구는 필요 없니?”라며 집요하게 작업을 걸더라.


곤니찌와를 외친 이 남자, 알렉스도 그런 부류일 줄 알았다. 도로를 건너온 내게 그는 대뜸 듀오링고 앱을 보여주며 한국어도 배우려고 했다며 자랑스레 말했다. “안녕하세요”나 “만나서 반가워요” 등 기본적인 인사말을 눌러보며 나한테 발음을 확인받으려고 계속 되물어봤다.



나는 이 남자가 한국어에 얼마나 열성적인지엔 관심이 없었고, 사실 와이파이 카드를 어디서 사는지 몰라서 헤매는 중이었기에 이 참에 정보나 얻을까 싶었다. 그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기에 오프라인 구글 번역기 앱을 통해 대화해야 했다.


“와이파이 카드는 어디서 살 수 있어?”


내 질문에 그는 옆집 여자에게 도움을 청하더니 알아듣지 못할 스페인어로 이래저래 길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얼굴을 살짝 찡그린 채 갸웃거리자, 그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툭툭 털더니 선뜻 앞장서서 나보고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옳거니, 잘 됐다. 그는 몇 블록을 더 걷더니, 간판조차 없는 조용한 집 앞에 멈춰 서서 창 틈으로 주인을 불렀다. 나 혼자 왔다면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창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여자는 1시간짜리 와이파이가 2달러라고 말했다. 아직 둘째 날이라 와이파이 카드를 사 본 적이 없는 나는 인터넷에서 1~3달러 정도라고 본 게 다였기에 이게 괜찮은 가격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굿 프라이스, 굿 프라이스.”


알렉스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날 설득하더니 대뜸 본인도 돈을 내고 카드를 구입했다. 그걸 보고 안심이 된 나 역시 4장을 샀다. 한참 나중에 공식 판매점에 가보니 한 장에 1달러였다. 빌어먹을.


물도 좀 사고 싶다는 내 말에 알렉스는 또다시 앞장섰다. 어떤 기념품샵 옆에 딸린 매점에 들어간 그는 이번에도 본인 물까지 사더니 내 것까지 계산하고는 씩 웃으며 물통 두 개를 내 가방에 쓱 넣어주었다. 그러고는 대뜸 물었다.


“유 원 투 씨 마이 패밀리?”


이런 뜬금없는 제안 너무 좋아! 당장 할 것도 없었던 나는 냉큼 따라나섰고, 그는 조금 더 가더니 웬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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