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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떠난 쿠바 여행 5. 캣콜링, 그리고 알렉스

쿠바 남자들의 과도한 캣콜링 속 맺어진 인연

by 이다예

“곤니찌와!”


또다시 들려오는 거슬리는 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거리 맞은편 작은 집 창문에 팔을 얹고 기댄 껄렁껄렁해 보이는 남자가 씩 웃음 짓고 있었다. 니하오, 곤니찌와는 밖에만 나오면 숱하게 듣는 말이라 가볍게 무시하곤 하는 나였지만, 이번엔 그새 스페인어에 재미를 붙여서였는지는 몰라도 굳이 그 말을 받아쳤다.


“쏘이 꼬레아나(난 한국인이야).”


“아~ 꼬레아나?”


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나보고 이리 건너오라며 손짓했다. 알렉스와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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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캣콜링은 심하다면 심하다. 태어나서 예쁘단 말을 하루에 가장 많이 들은 곳이 바로 쿠바일 테니까.


처음에 공항에서 시내로 버스를 타고 올 때도 웬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목례를 하고 손에 입을 맞추는 행동을 자꾸 반복했는데, 나중에 대니에게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음, 네가 쿠바 남자들에 대해 꼭 알아둬야 할 게 있어. 그건 바로… 여자만 보면 작업을 거는 습성이 있다는 거야. 특히 동양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해. 쿠바 여자들은 심지어 아예 이어폰을 꽂고 다녀. 작업 멘트 듣기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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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즈음 말레꽁 해변 도로로 나가 산책을 하면 과연 열 걸음에 한 번씩 낯선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대곤 했다. 어떤 사람은 한국인 친구가 있다며 “안녕하세요”하며 말을 걸어오기도. 시내를 구경하다 보면 뜬금없이 셀카를 찍고 있는 쿠바 남자들도 종종 보이는데, 이들은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접근해서는 어김없이 그 후에도 말을 붙이려 했다. 단골손님처럼 따라붙는 문구는 “살사 출 줄 알아? 내가 가르쳐 줄까?”였다.


바라데로에 있을 땐 와이파이를 찾느라 돌아다니다가 어떤 작은 호텔 경비원에게 길을 물었는데, “남자친구 있어?” “혹시 쿠바인 남자친구는 필요 없니?”라며 집요하게 작업을 걸더라.


곤니찌와를 외친 이 남자, 알렉스도 그런 부류일 줄 알았다. 도로를 건너온 내게 그는 대뜸 듀오링고 앱을 보여주며 한국어도 배우려고 했다며 자랑스레 말했다. “안녕하세요”나 “만나서 반가워요” 등 기본적인 인사말을 눌러보며 나한테 발음을 확인받으려고 계속 되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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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남자가 한국어에 얼마나 열성적인지엔 관심이 없었고, 사실 와이파이 카드를 어디서 사는지 몰라서 헤매는 중이었기에 이 참에 정보나 얻을까 싶었다. 그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기에 오프라인 구글 번역기 앱을 통해 대화해야 했다.


“와이파이 카드는 어디서 살 수 있어?”


내 질문에 그는 옆집 여자에게 도움을 청하더니 알아듣지 못할 스페인어로 이래저래 길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얼굴을 살짝 찡그린 채 갸웃거리자, 그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툭툭 털더니 선뜻 앞장서서 나보고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옳거니, 잘 됐다. 그는 몇 블록을 더 걷더니, 간판조차 없는 조용한 집 앞에 멈춰 서서 창 틈으로 주인을 불렀다. 나 혼자 왔다면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창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여자는 1시간짜리 와이파이가 2달러라고 말했다. 아직 둘째 날이라 와이파이 카드를 사 본 적이 없는 나는 인터넷에서 1~3달러 정도라고 본 게 다였기에 이게 괜찮은 가격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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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프라이스, 굿 프라이스.”


알렉스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날 설득하더니 대뜸 본인도 돈을 내고 카드를 구입했다. 그걸 보고 안심이 된 나 역시 4장을 샀다. 한참 나중에 공식 판매점에 가보니 한 장에 1달러였다. 빌어먹을.


물도 좀 사고 싶다는 내 말에 알렉스는 또다시 앞장섰다. 어떤 기념품샵 옆에 딸린 매점에 들어간 그는 이번에도 본인 물까지 사더니 내 것까지 계산하고는 씩 웃으며 물통 두 개를 내 가방에 쓱 넣어주었다. 그러고는 대뜸 물었다.


“유 원 투 씨 마이 패밀리?”


이런 뜬금없는 제안 너무 좋아! 당장 할 것도 없었던 나는 냉큼 따라나섰고, 그는 조금 더 가더니 웬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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