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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Jan 09. 2021

무작정 떠난 쿠바 여행 6. 알렉스의 집에서 본 것들

나와는 180도 달랐던 그의 가족들의 삶, 그리고 공원에서 살사 추기

올드 아바나의 건물들은 색깔이 파스텔톤으로 예쁘게 입혀져 있긴 해도 다 굉장히 낡아서, 내가 머무는 까사 내부가 넓고 깨끗한 게 놀라웠는데, 이 건물은 겉보기와 실제가 완전히 같았다. 페인트조차 칠해지지 않은 것 같은 회색 벽에, 가구라고 할 건 하나도 없었고, 마치 한창 공사 중인 현장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곳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엔 어떤 할아버지가 신발을 들고 앉아있었고, 바로 옆에는 두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기가 기어 다니며 놀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10달러 20달러를 내고 널찍하고 깔끔한 숙소를 쓸 때, 쿠바인들은 이런 곳에 살고 있었다.



“우리 삼촌이야. 신발 가죽에 문양 새기는 일을 하셔.”

“올라, 엔깐따다.”

알렉스의 소개에 내가 어색하게 스페인어로 인사말을 건넸다. 할아버지는 간단히 눈인사를 하곤 다시 신발을 붙들었다. 나는 알렉스를 따라 방(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는 공간)으로 들어갔고, 거기엔 청년 둘이 무언가를 부지런히 만들고 있었다. 완성 후 줄줄이 쌓아 올린 걸 자세히 보니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담는 콘이었다.

“내 사촌들. 아이스크림 콘을 만드는 일을 해. 나는 레스토랑에서 일하지만 남는 시간엔 같이 이 일을 하고.”

그들은 낯선 이방인의 방문을 경계하는지 내게 눈길조차 주려고 하지 않았다. 머쓱해진 나는 다시 거실로 나왔고, 알렉스는 혼자 놀던 아기를 번쩍 들어 올렸다.

“스카이한테 인사해야지?”

나는 환하게 웃으며 그 꼬맹이와 비쥬(양쪽 볼뽀뽀: 쿠바식 인사)를 했다. 꼬맹이는 내가 신기했는지 자꾸 이리저리 만져보려고 애썼다. 알렉스는 또다시 껄껄 웃더니 집 밖으로 날 데리고 나왔다. 



조금 더 걷다가 모퉁이를 돌자 웬 꼬마 아이 네댓 명이 쪼그려 앉아 놀고 있었다.

“여기도 내 가족이야. 인사해.”

“아, 그냥 이렇게 길을 걷다 가족을 만나?”

나는 얼빠진 웃음을 지으며 알렉스를 따라 아이들과 차례로 비쥬를 했다. 활기 넘치는 아이들은 알 수 없는 스페인어 문장들을 나에게 쏟아냈고, 알렉스는 아이들의 머리를 번갈아 쓰다듬다가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방향을 틀며 말했다.

“이 옆에 있는 공원에 가자. 거기에도 내 가족이 있어.”

“그… 혹시 아바나 전체가 네 가족이니?”

그를 따라 도착한 공원은 화려한 아바나 길거리에서 벗어난 작은 휴양지 같았다. 커다란 나무 그늘엔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앉아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알렉스의 사촌이란다. 그는 여느 쿠바인답게 스피커로 노래를 틀고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었다.



우린 그늘에 앉아 구글 번역기를 동원해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알렉스는 이전에도 한국인 여행객을 만나 온종일 살사를 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아직 조작이 익숙지 않은 듯한 구형 스마트폰으로 메일함을 뒤지더니 그 여자와 주고받은 메일을 찾아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또, 잠시 후 레스토랑에 일하러 가야 한다며 명함을 내밀고 언제 꼭 놀러 오라고 당부했다.

“우리 레스토랑에선 랍스터도 팔아. 넌 내 친구니까 가격 걱정 말고 와.”

나중에 찾아보니 꽤나 고급스럽고 유명한 곳이었는데, 내가 오면 휴가를 내고 레스토랑에서 여는 라이브쇼에 맞춰 살사를 춰주겠다는 그의 말에 나는 그러마 약속했다. 다른 도시들에 갔다가 다시 아바나에 돌아오면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화거리가 떨어졌는지 알렉스가 시시콜콜한 단어를 스페인어로 가르쳐줄 때쯤, 그의 사촌이 벌떡 일어났다. 살사를 가르쳐주겠다며 날 일으키더니 음악을 데스파시토로 바꾸는 게 아닌가. 알렉스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날 부추겨댔다.

몇 스텝을 밟더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알렉스에게 나를 넘겼다. 기분 탓인지 ‘얜 구제불능 수준이니 내가 도저히 가르칠 수가 없다’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알렉스는 손을 툭툭 털고 일어나더니 차근차근 인내심을 갖고 내게 살사를 가르쳐 주었다. 점차 익숙해져 스텝이 빨라졌고, 우리는 끊임없이 웃었다. 공원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릴 쳐다보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그렇게 우린 지칠 때까지 춤을 추었다.

어느덧 알렉스가 일하러 갈 시간이 다 되어 우린 공원을 떠났다. 그와 보낸 시간은 전혀 계획에 없던 일정이었지만 뜬금없었기에 더욱 인상 깊었다. 내가 혼자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헤어질 때가 되자 그는 몇 번이고 내게 숙소로 가는 길을 확인해주고는 환히 웃으며 멀어졌다.

“다음엔 꼭 레스토랑에 놀러 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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