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겨드랑이의 향연 속에서도 행복했던 이유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겨드랑이를 코앞에서 본 건 아마 처음일 것이다. 그뿐인가. 찜통 같은 더위에 송골송골 맺힌 땀과 얼핏 보이는 때를 애써 외면하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쿠바의 버스는 그랬다. 다 낡아 녹까지 슨 버스가 무너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의 인원이 꽉꽉 들어차 서로 모공까지 보이는 거리로 마주 봐야 했던. 뒷사람 입김이 귀에 스치고 앞사람 머리가 눈에 붙는 꽤나 불쾌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
그런데 우습게도 난 버스를 타는 게 그렇게나 좋았다. 현지인들 틈바구니에 유일한 외국인으로 부대껴 가는 것은 관광객이 넘쳐나는 쿠바에서 로컬스러운 분위기에 푹 빠질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으니까.
구글맵으로도 확인할 수 없는 쿠바의 마을버스는, 확실히 외국인 관광객이 타기 편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택시를 타는 이유는 그런 환경에서 기반한 것일 테다. 대체 어디가 버스정류장인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었고, 그저 일러준 대로 찾아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엉거주춤 다가가서 아무나 잡고 “아끼, 아우토부스 뻬 도쎄? (직역: 여기 버스 P12번?)”라고 확인까지 받아도 도무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몇 분마다 오는지도 모르는 버스를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으면, 친절히 응답해준 그 사람들은 백이면 백 버스가 올 때마다 먼저 번호를 확인하고 내게 어느 걸 타야 하는지 알려주곤 했다. 그 호의에 감동받아 한껏 웃음을 띠고 버스로 향하다가 또 끝없이 늘어선 줄을 보고 좌절하기 일쑤였다.
‘이 인원이 대체 다 탈 수나 있는 건가…?’
놀랍게도 다 탈 수 있었다. 숨이 죄일 정도로 엉켜서 탑승하면 말이다. 얼마나 자리가 없었으면 버스 기사 바로 옆에 선 적이 있었는데, 자꾸 내 가방이 스틱을 잡은 기사의 손을 툭툭 치는 바람에 연신 “로씨엔또(미안합니다)”를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만원 버스라고 마냥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한 번은 짐을 다 들고 탑승해서 서 있었는데, 터질 듯한 가방을 멘 채 숄더백까지 들고 있느라 머릿속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앞에 앉아 있던, 살짝 험악한 인상의 할아버지가 나를 톡톡 건드렸다. 잔뜩 경계심을 품고 쳐다봤더니 활짝 웃으며 내 가방과 본인 무릎을 번갈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거리신다. 화들짝 놀라 이거 굉장히 무겁다는 몸짓을 마구 하며 손사래를 쳤는데, 기어코 가방을 빼앗아 무릎에 올려놓으셨다.
“그라씨아, 그라씨아(감사합니다; 쿠바는 마지막 s발음을 종종 생략함).”
한결 가벼워진 어깨에 기분이 좋아져 감사인사를 퍼붓자 할아버지는 연신 선한 미소를 지으셨다. 삐뚤삐뚤 난 치아가 그토록 예쁜 웃음을 그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미소를. 그러다가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숄더백마저 달라고 또 손짓하신다. 그렇게 내 짐을 하나씩 맡은 두 사람 앞에 내가 우두커니 서 있는 묘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내 가방이 무거운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미안한 마음으로 속이 타들어갔다.
조금 한적한 동네로 접어들자 자리가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만류하는 할아버지와 아주머니로부터 우기듯 가방을 돌려받고 맞은편 자리에 앉아 한참을 더 갔다. 버스가 번화가와 주택가를 지날 때마다 눈 앞에 한 떼의 겨드랑이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면서.
어느덧 내릴 때가 되어 가방을 메고 일어서자 누군가 내 팔을 툭툭 건드리는 게 느껴졌다. 돌아보니 그 할아버지가 또다시 그 선한 미소를 머금으며 손을 흔들고 계셨다.
“챠오!”
활짝 웃음을 띠고 버스에서 내려 간만에 시원한 바람을 쐬었다. 멀어지는 녹슨 버스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면서.